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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 김동인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0:37
싸움, 간통, 살인, 도적,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 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제2위에 드는) 농민이었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이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 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 론 다른 집 처녀들과 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리를 돌아 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 에 대한 저픔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다섯 살 나는 해에 동리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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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왕자 | 방정환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0:36
옛날 옛적 아주 옛적, 어느 나라 임금 한 분이 잘 생긴 따님을 여러 사람 데리고 계셨었는데, 그 중에도 제일 끝에 막내따님이 어떻게도 몹시 어여쁘 고 곱게 잘 생겼는지, 그 따님이 방문 밖에를 나오면 세상이 더 환해지는 것 같아서 하늘에 계신 해님까지 부러워하는 터이었습니다. 임금님의 대궐 뒤에는 깊디 깊은 나무숲이 있고, 그 나무숲속 한가운데 커 다란 노목나무 밑에 조그만 샘물이 흘러서 깊은 웅덩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 그 어여쁜 막내 왕녀는 언제든지 나무숲 속으로 가서 그 샘웅덩이 옆 에 서늘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앉았다가 심심해지면 노오란 황금공 (黃金球)을 하늘로 치던지고, 밑에서 두 손으로 받는 장난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왕녀님이 치던진 공을 받다가 잘못하여 놓쳐서, 풀 위에 뚝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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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박사의 연구 | 김동인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0:29
“자네 선생은 이즈음 뭘 하나?” 나는 어떤 날 K박사의 조수로 있는 C를 만나서 말끝에 이런 말을 물어보았다. “노신다네.” “왜?” “왜라니?” “그새 뭘 연구하고 있었지?” “벌써 그만뒀지.” “왜 그만둬?” “말하자면 장난이라네. 하기야 성공했지. 그렇지만 먹어주질 않으니 어쩌나.” “먹다니?” “글쎄. 이 사람아, 똥을 누가 먹어.” “똥?” “자네 시식회에 안 왔었나?” “시식회?” C의 말은 전부 ‘?’였다. “시식회까지 모를 적에는 자네는 모르는 모양일세그려. 그럼 내 이야기해줄게 웃지 말고 듣게.” 이러한 말끝에 C는 K박사의 연구며 그 성공에서 실패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맬서스라나…… ‘사람은 기하학급으로 늘어나고 먹을 것은 수학 급으로밖에는 늘지 못한다’고 이런 말을 한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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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죽은 모나리자 | 채만식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0:15
농투성이(農民)의 딸자식이 별수가 있나! 얼굴이 반반한 게 불행이지. 올해는 윤달이 들어 철이 이르다면서 동지가 내일 모렌데, 대설 추위를 하느라고 며칠 드윽 춥더니, 날은 도로 풀려 푸근한 게 해동하는 봄 삼월 같다. 일기가 맑지가 못하고 연일 끄무레하니 흐린 채 이따금 비를 뿌리곤 하는 것까지 봄날하듯 한다. 오늘은 해는 떴는지 말았는지 어설프게 찌푸렸던 날이 낮때(午正)가 겨운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대로 더럭 저물어버린다. 언덕배기 발 가운데 외따로 토담집을 반 길만 되게 햇짚으로 울타리한 마당에서는 오목이네가 떡방아를 빻기에 정신이 없이 바쁘다. 콩 콩 콩 콩 단조롭기는 하되 졸리지 아니하고 같이서 마음이 급해지게 야무진 절구 소리가 또 어떻게 들으면 훨씬 한가롭기도 하다. 오목이네 이마에서는 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