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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거장 근처 | 채만식
    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0. 23:43

    停車場近處


    1


    밤 열한점 막차가 달려들려면 아직도 멀었나보다. 정거장은 안팎으로 불만 환히 켜졌지 쓸쓸하다.


    정거장이라야 하기는 이름뿐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밤이니까 아니보이지만 낮에 보면 논 있는 들판에서 기차길이 두 가랑이로 찢어졌다가 다시 오므려 진 그 샅을 도독이 돋우어 그 위에 생철을 인 허술한 판장집을 달랑 한 채 갸름하게 앉혀놓은 것 그것뿐이다.


    그밖에 전등을 켜는 기둥이 몇 개 섰고, 절 뒷간처럼 쫓겨간 뒷간이 있고 쇠줄로 도롱태를 달아놓은 우물이 있고, 그리고 넌지시 떨어져 술집, 사탕 집, 매갈잇간, 주재소 그런 것들이 초가집, 생철집 섞어 저자를 이룬 장터 가 있고.


    그러나 그러는 해도 이 정거장이 올 가을로 접어들면서 굉장하게 번화해졌 다.


    금점판(砂金鑛[사금광])이 터져서 그렇다. 정거장 둘레로 있는 논바닥에서 요새도 날마다 수백 명씩 들이덤벼 금을 파낸다.


    그래서 차를 타고 오고 가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장터에는 사탕집이 더 생기 고 술집은 더 많이 늘고 전에 없던 이발소까지 생겨났다.


    덕쇠는 오늘밤도 막차를 보려고 정거장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


    그는 대합실로 섬뻑 들어가지는 못하고 옹송그려 팔짱을 끼고 밖에서 빙빙 돌고 있다.


    전엣 사람은 그렇잖더니, 갈리고 이번에 새로 온 역부는 덕쇠가 대합실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눈을 부라리고 발길로 툭툭 걷어차고 해 서, 그래 뒤가 걸려 덤쑥 들어앉지를 못하는 것이다.


    바람은 성이 잔뜩 나서 휘익 쌀눈을 몰아다가는 귀때기를 때린다. 그럴 때 면 옹송그린 데시기로 소름이 쪽 끼치게 눈이 휩쓸려 들어간다. 몸이 부르 르 떨린다.


    저녁을 굶어서 더 춥고 더 떨린다. 저녁 한 끼 굶은 거야 예사지만 속이 비어서 더 춥고 더 떨리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덕쇠는 닫힌 유리창으로 대합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 번째 굽어다보는지 모른다. 아랫도리가 시뻘겋게 불이 단 난로가 보기만 해도 뜨끈뜨끈해서 부 쩍 그러안아 보고 싶어진다.


    난로가에는 촌 영감이 혼자 담뱃대에 담배만 풀씬풀씬 피우고 무료하게 앉 아 있다.


    덕쇠는 돌아서서 잠깐 서성거리다가 이번에는 대합실 안의 시계를 들여다 본다. 그러나 시계는 아까부터 암만 보아도 바늘 두 개가 한일자로 쭉 뻗친 채 그대로 서서 있다. 꼼작도 아니한다.


    오늘 저녁에는 날이 이렇게 차고 바람이 불고 하니까, 혹시 막차가 오지 않지나 아니하려나? 그렇다면 괜히 추운 데 와서 고생을 하고 있지나 아니 하나. 그래 궁금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가만가만 대합실과 연달아 있는 사무실 옆으로 가서 불밝힌 안을 들 여다보았다. 금테박이 역장은 나오지도 아니했고 난로가에 멀찍이 역부가 걸상을 타고 앉아 졸고 있다.


    덕쇠는 잘되었다 싶어 냉큼 이편으로 돌아와 대합실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섰다. 들키면 욕 좀 먹고 한두 번 걷어차일 셈 잡아도 뜨뜻한 날로불에 몸을 녹이는게 훨씬 낫고, 요행 들키지 아니하면 더구나 좋고.


    대합실 안은 후끈 더운 기운이 치닫고 촌 영감이 버선발을 쬐어서 그런지 고차분한 냄새가 물큰 치닫는다. 그러나 덕쇠한테는 되레 구수했다.


    덕쇠는 대합실 안으로 들어는 섰어도 난로 옆으로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 찍이 마룻전에 가 어설프게 반만 걸어 앉았다.


    촌 영감은 들어오는 덕쇠를 소 닭 보듯 멀거니 치어다보다가 한참 있더니 “이 옆으루 가까이 와서 몸을 녹히지 왜 그렇게 멀리 앉어서 그러우? 추 운디……”


    하면서 심심한 판에 이야기를 청한다.


    덕쇠는 미상불 그 말을 듣고 보니 기왕 들어온 판에 그럴 일이 아닌 것을 그랬구나 하고 히죽이 웃으면서 난로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어디까지 가우?”


    촌 영감은 침 흘러내리는 담뱃대 물부리를 입에서 뽑으면서 묻는다.


    “아무디두 안 가유.”


    덕쇠는 한 대 얻어 피웠으면 꿀처럼 맛이 있을 것같아 시장한 것은 잠시 잊어버리고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그럼 이 근처 사우?…… 불 쬐러 왔구만?” “아니유 짐 지러 왔어유.”


    대답은 건성으로 덕쇠는 담배 꽁초가 어디 떨어지지나 아니했나 난로 바닥 과 사방을 둘러보다가 좋아서 성큼 일어섰다.


    난로 바닥에 불쏘시개 자루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아니하는 놈이 한 개, 그 리고 저편 차표 사는 앞에는 제법 굵기는 해도 발로 싹 밟아 으끄린 놈이 한 개 있다. 그는 두 개를 주섬주섬 집어다가 풀어서 허리에 찬 곰방대에 넣으려고 하니까, 촌 영감이 물끄러미 바라다보더니 옆에 놓인 희연 봉지에 서 한 대 집어 손바닥에 놓고


    “옜소, 이놈 태우.”


    하고 웃는다.


    “아이 미안히여서……”


    덕쇠는 데시기로 손이 올라가 더북이 자란 막깎기 머리를 긁는다.


    “괜찮소 받우.”


    덕쇠는 허리를 굽실하고 두 손을 내밀어 한손으로 담배를 받는다.


    “미안히여서…… 헤……”


    누런 앞니가 드러나고 겨울에도 가실 줄 모르게 볕에 그을은 검은 얼굴이 헤죽이 흐트러진다. 고맙다는 치하요, 그리고 만족한 표정이다.


    오랜만에 보는 담배니 그렇지 아니할 수 없다. 돈이라고는 구경도 하기 어 려운데, 더구나 요새는 값이 올라 담배를 살 염도 내지 못하고 정거장에 나 와 권연 꽁초를 줍지 않으면 뽕잎을 피우는 판이다.


    “옛날은 제각기 담배를 심어 두구 제 맘대루 피더니, 요새는 무슨 개명


    (開明) 속인지 담배두 못 심어 먹게 히여서!” 촌 영감은 덕쇠가 빗밋이 돌아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가 탄식하듯 중얼거린다.


    “그러나마 자꾸 값만 더 올리는걸유!” “그러게 말이지.”


    이야기는 잠깐 그쳤다.


    “아, 요새 이 근처에 금점이 터져서 벌이가 좋다는디 그런 거나 허지, 이 춘디 밤으루 정거장 짐벌이를 허우?” 촌 영감이 심심한지 이야기 거리를 찾아낸다.


    “것두 제마닥 못헌대유.”


    “왜?”


    “츰 삼백 명을 모집(募集)허는디 이 근처서 어찧던지 한 천 명 뫼여들 었 는가버요.”


    “천 명!”


    “그렇지라우! 숭년은 들어서 먹구 살 것은 없구 그러닝개…… 허기사(허 기야) 풍년이 들어두 그 대중이지만.” “그리서 천 명은 다 일을 허우?”


    “아니유, 그중에서 삼백 명만 골라 뽑구 그 남저지는 다 낙방되었어라 우.”


    불이 달았던 난로 아랫도리가 식어가는 것을 보고 덕쇠는 일어서서 석탄을 퍼넣는다. 황황 소리가 나면서 난로불은 세차게 탄다.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소리가 요란한데 대합실 안은 딴 세상인 듯이 아늑하 다.


    덕쇠는 석탄을 한 아궁이 가득 지피고 나서 도로 제자리에 앉았다. 촌 영 감은 지르르하고 진이 끓는 담뱃대를 시멘트 바닥에 똑똑 털고 나서 어험 하품을 한다.


    “지리허기두 허다!”


    “노인은 어디까지 가세요?”


    “x x까지 가우…… 저 너머 딸네 집에 왔다가…… 에, 게 아예 겨울에 대 사(大事[대사]:婚姻[혼인]) 치를 것 아니여! 날은 춥고 모다 군색히여 서……원 이렇게 저물 줄 알었으면 붙잡는 대루 하룻밤 더 자구 갔지!” 촌 영감은 늙은이답게 혼잣말로 꿍얼꿍얼 꿍얼거린다.


    덕쇠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비로소 촌 영감이 옆에 놓고 앉은 동쳐맨 대사 리짝을 알아내었다.


    저 속에는 고기며 저냐며 떡이며가 하나 그득히 들어 있을 텐데 촌 영감이 아까 담배 한 대 주듯이 떡이나 무엇 좀 꺼내 주지 아니하나, 그래 헛침을 꿀꺽 삼키고 촌 영감을 치어다보았다. 그러나 촌 영감은 맨숭맨숭하고 있 다.


    덕쇠는 자꾸만 더 시장기가 들었다. 떡을, 떡도 큼직한 인절미를 노란 콩 고명을 묻힌 놈을 하나 어쨌든지 저 뜨끈뜨끈한 난로 위에다 올려 놓으면 그놈이 고소한 냄새가 나다가 부하고 떠올라오를 테니 그놈을 두손에 들고 쭉 잡아떼면 김이 물씬물씬 나고 하얀 속이 기다랗게 늘어나는 놈을 훅 불 어서 입에다 넣으면


    “엣 ! 뜨거 뜨거 !”


    덕쇠는 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촌 영감도 놀랐다.


    “왜? 듸었오?”


    “헤헤 아니유.”


    덕쇠는 무렴해서 웃어버렸다. 그러나 무렴한 것은 잠깐이요, 눈은 빨리듯 이 떡이 들어 있는 대사리짝으로 건너만 간다.


    촌 영감은 종시 떡은 먹으라고 줄 눈치가 아니다. 그러니 혹시 잊어버리고 그냥 차를 탔으면 좋겠다고 덕쇠는 은근히 그거나 바랐다.


    “정거장에 이렇게 와서 있으면 더러 벌이가 되우?” 촌 영감은 담배 한 대를 또 붙여 문다. 이번에는 덕쇠가 아까 주워 모은 권연 꽁초담배를 쟁이고 있어도 한 대 더 주지는 아니하고 이야기만 청한 다.


    “웬걸이유! 그저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돈 십 전씩이나 벌까말까허 지 별루 없어유.”


    “그걸 바라구 날마다 와서 왼종일 이렇게 기다리우? 차라리 다른 품팔이 를 드는 게 낫지……”


    “아니여유, 이 막차만 나와유…… 집두 멀구 또 낮차는 더군다나 짐이 없 으닝개……”


    옆 사무실에서 역장이 나왔는지 차가 올 때마다 나오곤 하는 순사가 나왔 는지 이야기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조금 있다가 땡땡 소리가 자주 들려오고 분주한 것 같더니, 망대(시그널)


    젖히는 소리도 들린다.


    오래잖아 차가 오게 되었다.


    촌 영감이 두루마기를 젖히고 주머니를 풀어 차표 살 돈을 몇푼 꺼낸다.


    덕쇠는 십 전만 주었으면 절을 백 번은 할 것 같아 연해 촌 영감의 손만 바 라다본다.


    철망을 조그맣게 쳐놓은 차표 파는 구멍이 덜커덩 열리더니 “차표 사시오.”


    한다. 뒤이어 역부는 덕쇠를 내다보았던지 “고랏 ! 이놈아!”


    소리를 친다.


    덕쇠는 얼핏 대합실 밖으로 나와 기대놓았던 지게를 걸머지고 멀찍이 물러 섰다.


    기적 소리가 가까이 울리더니 연통으로 불을 뿜어올리면서 차가 들이닿는 다. 차 탈 사람은 종시 아까 그 촌 영감 하나뿐이다.


    덕쇠는 촌 영감이 떡 든 대사리짝을 가지고 나왔다 아니 가지고 나왔나 보 려고 조촘조촘 가까이 갔다. 영감은 대사리짝을 무긋하게 쳐들어 들고 나섰 다.


    덕쇠는 혀를 찼다.


    차 탈 사람은 하나뿐인데 역장, 역부, 순사 해서 멀찍이 서서 있는 덕쇠까 지 네 사람이 대비를 하고 늘어섰다.


    덕쇠는 마음이 졸였다. 그동안 벌써 사흘째 헛걸음을 했고, 오늘 아침은 좁쌀죽을 한 보시기씩 먹었을 뿐 저녁은 고스란히 굶었다. 춥고 시장하고 한데 또 헛걸음이나 하면 어찌하나 지레 겁이 나서 나오기도 싫고 집엣 사 람이 말리기도 했지만, 무어 그게 밑천이 드는 거냐 헛걸음을 해도 밑질 것 은 없으니 나가본다고 나오기는 나온 것이다.


    그러나 벌지를 못하면 십리길을 덜덜 떨고 돌아가 그냥 자야 할 판이요, 그래도 행여 좁쌀 한 줌이라도 팔아오나 꼬박꼬박 기다리는 집엣 사람한테 미안하고 낯이 없을 판이다.


    차는 씨근거리며 들이닿았다. 덕쇠는 정신을 차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일일이 여새겨본다.


    촌사람이 셋 내렸다. 저편 뒤칸에서 조그마한 보따리를 든 색시를 데리고 안경 쓴 활량이 내렸다.


    덕쇠는 어쩌면 괜찮겠다 싶어 그 남녀를 기다렸다.


    차는 머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시 달아나버린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차에 가로막혀 기다리고 있다가 차가 떠나자 비로소 덕쇠가 목 지키고 서 있는 앞으로 해서 철둑을 건넨다.


    촌사람 셋이 웅숭그리고 앞서 가고 색시 데린 활량이 덕쇠 앞을 지나가다 가 힐끔 돌아보더니 무슨 말을 할 듯이 짯짯 치어다본다. 덕쇠는 한걸음 앞 으로 나섰다.


    덕쇠가 보매도 보따리는 그리 크지도 아니하고 해서 짐을 지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새 몇 달 두고 더러 보면 짐은 무겁지 아니해도 정거장에 서 집이 먼 사람은 호젓한 밤길을 혼자 가기가 안되었으니까 짐을 지우고 가는 수가 있었다. 그러한 자리면 가서 술잔도 얻어먹고 짐삯도 후히 받곤 했었다.


    덕쇠는 이 활량도 꼭 그런 거리거니 생각하고 속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그 활량은 무슨 말을 할까말까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휙 지나가 버 리고 만다. 그 사람이 실상은 짐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라 덕쇠를 알아서 알 은 체하려고 그래 주춤거렸던 것인데, 덕쇠는 벌이가 생겼다고 좋아하다가 그만 헛다리를 짚어버린 것이다.


    덕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철둑을 건너 나란히 가고 있는 남녀를 바라본다.


    뒤로 따라가서 짐을 지우라고 말을 해볼까 망설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지우지 않는다면?


    어때! 그만이지.


    덕쇠는 빈 지게를 덜썩거리면서 철둑을 건너 남녀의 뒤를 따랐다.


    장터로 들어서서 거진거진 뒤로 바짝 다가 말을 건네려고 하는 판인데 남 녀는 길 옆 술집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덕쇠는 그만 땅에 가 펄썩 주저앉고 싶게 안타까와 두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바람은 사정없이 쌀눈을 끼얹는다. 덕쇠는 기가 딱 질려 걸음도 느릿느릿 잘 걸리지 아니했다. 위아랫 이빨이 딱딱 맞히고 팔다리는 대 잡은 것처럼 떨리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는 가까스로 전주집이라는 국밥집 앞까지 당도했다. 무슨 의사가 있어서 그 앞으로 오기도 한 것이지만 술청에서 나오는 구수한 국 냄새에 그는 눌 어붙듯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술청에서는 아까 차에서 내린 촌사람 셋이 죽 앉아 술잔을 놓고 기다리고 있고, 전주댁이라는 안주인은 분주히 서두리를 하고 있다.


    열어놓은 술국솥에서는 소담한 김이 뭉게뭉게 오른다. 그놈이 냄새가 그렇 게 구수하게 나는 것이다.


    전주댁은 흰 사발에 찬밥 한 덩이를 담아가지고 국자로 솥의 국국물을 떠 부어 꾹꾹 누르다가 국물을 도로 솥에다 좌르르 따르고는 또 퍼붓는다.


    이렇게 서너 번 하다가 마지막 건데기 얼러 국을 소담스럽게 퍼부어 손님 들 앞 개다리소반에다가 통 하고 갖다놓고는 다시 다른 사발어치를 시작한 다.


    덕쇠는 왕방울 같은 눈을 끄덕거리지도 않고 전주댁의 손에서 노는 국밥 사발과 국자에 정신이 쏠려 목이 기다랗게 늘어난 것을 저도 모르고 있다.


    술청에서는 차례차례 말아다 놓은 국밥 한 사발씩을 차지하고 앉아 세 사 람이 술을 한잔씩 마신 뒤에 숟갈질을 시작한다.


    숟갈이 밥과 콩나물과 우거지가 뒤섞인 국밥을 듬쑥 떠서 국물을 질질 흘 리며 입으로 올려갈 때면 덕쇠는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린다.


    입을 그렇게 벌리고는 씹는 시늉을 해보나 맞히는 것은 위아래 이빨뿐이요 회가 동해서 걷잡을 수 없이 넘어오는 거위침이 입안에 그득 찬다.


    덕쇠는 말고 항우라도 더 참을 수 없는 고패다.


    덕쇠는 다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졌던 지게를 내동댕이치듯 훌렁 벗어버리 고 술청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막걸리유?”


    전주댁이 힐끔 돌아다보는 둥 마는 둥 저 할 일을 하면서 묻는다.


    덕쇠는 대답이 나오지 아니해서 입만 우물우물한다. 무어라고 대답해야 좋 을지 그것도 모르거니와 아가리뼈가 뻣뻣하게 굳어서 입을 놀릴 수도 없는 것이다.


    “벙어리 삼시랑(삼신)인가부네!”


    전주댁은 덕쇠가 아무 대답도 아니하니까 다시 돌아다보고 혼자 종알거리 더니


    “막걸리 잡숴라우?”


    하고 소리를 빽 지른다.


    국밥을 먹고 있던 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덕쇠를 멀거니 치어다본다.


    덕쇠는 겨우 입이 떨어졌다.


    “아니유…… 저, 술은 그만두구…… 그런디 저.” 하고 더듬는다.


    “그럼 국밥만?”


    “예 국밥만 주는디 저 거시기, 저 돈은 내일 드리께라우.” 손들은 또 덕쇠를 올려다보고 전주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짯짯이 바라보 다가 손에 들었던 국자를 솥전에 통 부딪치면서 “참! 재수없네…… 외상은 못 히여라우?” 하고 싹 돌아선다.


    덕쇠는 두말도 더 못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등 뒤에서 촤르릉 철소댕을 끌어다 덮는 소리는 그 푸짐한 국밥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 같아 그는 내 디디던 발을 멈칫했다.


    2


    철소댕 덮는 소리에 덕쇠는 죽을 힘을 내어서 도로 돌아섰다.


    전에 더러 막걸리잔도 사먹고 요기도 하고 해서 늘 다니는 줄 알고 있을 터이니 어떻게 잘 사정을 하면 줄는지도 모르고 또 애초에 이 집앞으로 돌 림길까지 해서 온 것도 그 짬을 대고 왔던 것이다.


    “저, 미안허지만 내일 꼭 갖다 드리께 오전어치만 주시유…… 오늘저녁에 짐을 못 져서 그러닝개 내일 저녁에 짐을 지면 꼭 실수 않구 갖다 드릴 게 라우.”


    “못히여라우.”


    전주댁은 들은 성도 아니하고 있다가 맵살스럽게 잡아떼어 버린다.


    덕쇠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왔다. 나오다가 아까 정거장에서 색시를 데리고 오던 그 활량과 마주쳤어도 몰라보았다.


    그 사람은 이런 데서는 보기 드문 구동색 세루 두루마기에 그 밑으로 삼팔 바지가 보이고, 반지르르한 구두를 신고 머리를 기름으로 갈라붙이고 한 말 쑥한 활량인데, 국밥집으로 들어오다가 덕쇠를 만나자 아까 정거장에서처럼 유심히 훑어보면서 지나친다.


    지나쳐놓고는 잠깐 무엇을 생각하더니 “거 덕쇠 아닌가?”


    하고 부른다.


    덕쇠는 누가 아는 사람이 있어 그렇게 친숙하게 부르나 하는 의심도 날 겨 를이 없이 지게를 짊어지다가 말고 돌아섰다.


    아까 정거장에서 보던 그 활량이다. 빙긋이 웃고 섰는 것이 알아도 잘 아 는 사람인 듯싶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덕쇠도 퍽 낯이 익기는 하나 누군지는 섬뻑 생각이 나지는 아니했다.


    “덕쇠지? 나 춘삼이네 춘삼이……” “어, 춘…… 춘…… 저 고……”


    덕쇠는 비로소 춘삼이를 알아내었다. 그래 그는 어! 하고 춘삼이라고 부르 려 하였으나 옛날의 춘삼이와는 너무 달라서 차마 춘삼이라고 불러지지가 아니했고, 그래 고생원이라고 부르려고 하였으나 그건 또 어쩐지 거북해서 그렇게 더듬더듬한 것이다.


    춘삼이는 그 속은 모르고 얼핏


    “응응, 고춘삼이여 …… 알겄는가?” 하고 다시 반가와한다.


    춘삼이는 한 동리에서 살던 사람이다. 한 동리에 살기는 했어도 춘삼이는 제 땅마지기나 있어 같은 농사꾼이로되 덕쇠 같은 알짜 생일꾼과는 먹는 길 이 달랐다. 그래 별로 상종도 없었고 동리에서 아침 저녁으로 만나야 그저 “밥 먹었는가?”


    “응 어데 가는가?”


    하는 입에 붙은 인사나 하고 지나칠 따름이었었다.


    그런 터라 한 십 년 전에 춘삼이가 땅마지기나 있는 것을 톨톨 팔아가 지 고 대처(都市[도시])로 장사를 나간 뒤에는 서로 만난 일도 없고, 요 며칠 전에 그 춘삼이가 돈을 많이 모아가지고 돌아와 정거장 근처에서 색시를 사 다 두고 술장수를 시작했다는 둥 그래 살던 동리를 찾아와서 돌아다니다가 갔다는 둥 그런 소문을 덕쇠도 듣기는 했지만,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로 듣 고 말았지 춘삼이를 생각해본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만 하더라도 춘삼이가 알은체하니까 덕쇠도 알아보고 인사를 한 것이지, 만일 춘삼이는 몰라보는데 덕쇠가 먼저 춘삼이를 알아보 았다면 덕쇠는 그냥 저게 춘삼인가 보다고 속치부나 했지 춘삼이처럼 알은 체는 아니했을 것이다.


    그러나 춘삼이로도 고향 동리에서 살던 때에 그리 탐탁하게 덕쇠와 정이 들었던 것도 아니요 하니까 그가 계획하는 일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몸 차림 새부터 이렇게 층이 지는 덕쇠 따위를 알은체도 아니했을 것이다.


    아까 정거장에서도 그는 첫눈에 덕쇠를 알아보았다. 그래 거기서 데리고 올까말까 망설이다가 에라 내일이고 모레고 또 만나게 되겠지 하고서 그냥 지나친 것이다.


    “나 지난 제 동리 들어가서 자네 소식은 들었네…… 밤으루 정거장에 나 와서 짐벌이헌다구…… 얼마나 고생을 허는가!” 춘삼이는 구변 좋고 붙임성 있게 인사를 늘어놓는다.


    “머 고생이랄 것 있간디……”


    덕쇠는 이 거북한‘친구’한데 하오를 해야 좋을지 하게를 해야 좋을지 몰 라 말끝이 흐지부지한다.


    “참 반갑네…… 나는 그렁저렁 밥술이나 먹구 살지만 동리 사람들을 만나 면 고생허는 게 여간 참 맘에 걸리지를 않는단 말이여 !…… 그레 시방 집 으루 가는 길인가?”


    “응.”


    “이 치운데 !…… 허! 거 참…… 가세. 우리 집에 가서 모처럼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 먹구 보아서 자구 가게 허소…… 방두 많구 머 술은 얼마든지 있구 또 색시들두 시글시글허네. 허허허허.” 덕쇠는 좀 귀가 솔깃하기는 하나 대체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벙벙하고 있 다.


    두 사람이 이렇게 수작하는 것을 술청에서 보고 있던 전주댁이 쏙 나서서 한마디 참례를 한다.


    “아따 고상, 그렇게 친허거든 술이구 색시구 다 그만두구 국밥이나 한그 릇 사서 대접허시유…… 시방 그이가 나더러 국밥 외상 달라든 판이라우.” “응? 그리어?”


    하고 춘삼이는 허겁을 피운다.


    “그럼 그러구말구…… 원 이 사람아 시장했던가 분데 그렇거들랑 진작 나 더러 그 말을 허지. 자, 이리 들어오소. 위선 여기서 요기나 허구 그러구 나서 우리 집으루 가세…… 우리 집에 가서 요기두 허구 술두 먹구 해두 좋 지만 우리 집에는 밥두 국두 다 떨어져서 나두 이 집으루 시키러 왔네, 허 허…… 자 어서 들어오소 이 사람.” 덕쇠는 술청으로 따라 들어갔다.


    “두 그릇 말어요?”


    전주댁이 벌써 사발에다가 찬밥덩이를 담으면서 묻는다.


    “응, 여기 두 그릇 주구 그러구 우리 집에 다섯 그릇만…… 손님이 와서 술을 먹다가 국밥을 청허구, 또 내가 아까 목포서 데리구 온 색시가 시장허 다구 허구, 시방 야단났구만……”


    “이 장터서 수잡은 이는 고상 하나뿐이여……” 전주댁은 국밥을 말면서 일변 입을 놀린다.


    “고상 살리느라구 금전판이 터졌어!” “우는 소리 그만허우…… 전주댁은 왜 나만 못해서?” “흥? 내가 고상이라면 나는 춤을 덩실덩실 추겄수.” 덕쇠는 망할 계집년 지절거리느니 어서 바삐 국밥이나 가져오잖고 그런다 고 뱃속의 전령이 다급했다.


    아까 그렇게도 구미가 당기고 푸짐해보여도 못 먹고 돌아서던 국밥을 척 한 사발 앞에 놓으니, 덕쇠는 먹기가 아까와 잠시 소중스럽게 바라보고 있 었다.


    “자, 어서 들소.”


    춘삼이는 덕쇠를 권하면서 저도 숟갈을 집어든다.


    덕쇠는 한 숟갈 듬뿍이 떠서 입에 넣었다. 뜨거운 것도 모르겠고 그냥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아 씹을 짬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린다.


    “정거장에서 짐을 지구 허면 머 더러 벌이나 되든가?” 춘삼이가 연해 생각해 주는 조로 말을 묻는다.


    “머 시언찬히여.”


    덕쇠는 먹느라고 대답이 건성이다.


    “올에 농사 한 마지기두 못 지었든가?” “참봉네 논 닷 마지기를 부치기는 히였지만 어디 머 나락(벼) 한알갱이


    (한알)나 얻어먹었간디!”


    “허! 거 흉년이 사람 죽여!”


    “숭년이 아니라두 남의 논 얻어 지어서 남는 것이 있을꼬마는 숭년이들면 인심까장(조차) 사나워져서……”


    “그리서 시방은 어떻게 지내는가?” “굶기를 부자집 개 밥 먹듯 허지 머……” 덕쇠는 그새 벌써 국밥 한 사발을‘부자집 개 밥 먹듯이’다 먹었다.


    이마와 콧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그러나 양은 반도 차지 못한 것 같았다.


    춘삼이는 눈치 빠르게 또 한 그릇을 불러다 놓는다.


    덕쇠는 사양하는 체하다가 다시 숟갈을 들었다. 반 양도 차지 아니했는데 한 그릇을 더 불러주는 춘삼이가 아까 맨처음 아무것도 먹지 아니했을 때에 요기를 시켜주려던 때보다 더 살뜰하고 고마웠다.


    “거 저 금점에 나가서 일을 해볼 도리 하잖구!” 춘삼이는 아직도 남은 첫사발을 물리면서 숟갈을 놓는다.


    “날마다 새벽이면 와는 보지만 써주어야 말이지!” “것두 허기는 그래! 하두 많이 들어밀으닌깨니 어쩌다가 한두 자리 빈 자 리가 나두 좀체루 머……”


    덕쇠는 두 그릇째 국밥을 첫 번처럼 국물까지 쪽 다 들이마시고 숟갈을 놓 았다. 처음 생각 같아서는 여남은 그릇은 먹을 것 같더니 두 그릇째 먹고 나니 속이 얼떨떨하고 배가 불룩 일어나 허리띠를 느꾸었다.


    이렇게 배불리 먹고 나서 앞에 앉은 춘삼이를 바라보니, 손이라도 어루만 지고 싶게 정이 솟아나고 하늘만하게 높이 보였다.


    인제는 뱃속에 들어간 국밥이 새로 밥맛이 나고 온몸이 훗훗하여 이대로 십 년을 가도 배가 고프지 아니할 듯싶게 느긋이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문득 생각나는 것은 집엣 사람들이다.


    어머니와 안해…… 착 달라붙은 배를 허리띠로 졸라매고 앉아 행여 나온 길에 좁쌀 한 줌이라도 가지고 들어오나 까맣게 잠도 못 자고 기다리고 있 는 꼴이 눈에 선연히 밟혔다.


    그 일을 생각하니 금시로 불렀던 뱃속이 뉘엿거리고 혼자만 이렇게 배불리 먹은 것이 후회가 났다. 이러한 생각이 아까 그다지도 다급하게 시장하고 먹고 싶고 할 때에 났었다면, 그래 그 국밥을 먹지 아니했겠느냐 하면 그것 은 거짓말이다.


    덕쇠는 국밥집을 나와 춘삼이에게 끌리어 춘삼이 집으로 갔다.


    덕쇠는 기왕 혼자 먹은 것은 먹은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요, 인제는 어서 바삐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이 헛기다리지나 않게 할 요량인데, 춘삼이는 굳 이 붙잡고 놓아주지 아니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게 국밥 한 그릇씩만 나누고 갈리다니 섭섭해서 될 말이냐고 잡아 끌었다.


    덕쇠는 이 고마운 정리를 차마 뿌리치지 못하여 끄는 대로 끌리어갔다 술 이나 몇잔 먹고 일어서려니 하고.


    춘삼이네 집에서는 방방이 손님이 들어 새장구소리에 색시들의 노랫소리, 잘급하게 외치는 소리, 손님들의 걸걸한 소리, 부르는 소리, 대답 소리 모 두 한데 뒤섞여 왁자하니 요란했다.


    덕쇠는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이러한 집의 주인한테 극진한 대접을 받고 이렇게 청받아 오는 것이 어찌 신이 나는 것 같았다.


    조용한 뒷방에서 춘삼이와 마주 앉아 술상을 받았다.


    옆에는 색시 하나가 술주전자를 들고 어여쁘게 앉아 시중을 든다.


    생전에는 받아보지 못하던 대접이요 호강이다.


    합성 금비녀니 어룽진 회장이니 버석거리는 인조견이니를 알아볼 턱이 없 는지라 덕쇠는 옆에 앉은 색시가 도무지 기막히게 예쁘고 호사스러워 보였 다. 전에 더러 길에서 그러한 색시를 만나면 높다랗게 피어있는 꽃 같아 우 러러만 보기도 흐뭇하던 것이 오늘밤은 이렇게 앞에 앉히고 시중을 들리고 그래 마음대로 데리고 놀고 하니 덕쇠는 이게 꿈인가 생신가 분간하기에 애 가 쓰였다.


    술이 얼큰해졌다.


    술에 기운을 얻어 덕쇠는 색시의 손을 한번 잡으려고 제 손을 내밀었다.


    개이빨같이 쩍쩍 벌어지고 흉한 손이 제가 보기에도 좀 무렴했으나 그대로 덥석 쥐었다.


    덕쇠의 손에는 색시의 손이 비단결같이 보드랍고 온몸이 찌지지했다.


    “어 명옥이…… 어 참 응 우리 이 고상허구는 참……” 감격은 한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대중없이 웅얼거리는 것이 다.


    “어 고상 안 그리어? 우리가 참 다 한동네(동리)서 응……” “아무렴 그렇구말구……”


    술은 취하지도 아니한 춘삼이가 취한 체하고 마주 허꼬부라진 소리를 한 다.


    “그런디 응, 고상 나는 이 이 명옥이 같은 각시(색시)허구 응 한바탕 살 어보았으면 죽어두 원이 없겠어 흐흐……” “이 사람 자네 각시는 머 누구만 못해서 그런 소리를 허는가?…… 나 같 으면 자네 각시만헌 각시가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겠데……” “허 참? 그까짓 것이? 헤! 참! 고상두 날 놀리느만, 우리 각시? 헤 명옥 이 똥이나 핥어먹으라지.”


    이것은 덕쇠의 실토정이다. 덕쇠는 이때까지 그의 안해‘이쁜이’를 이쁘 다고 본 적은 한번도 없다. 하물며 명옥이한테 빗대 보다니 어림도 없는 말 이다. 언제 이쁠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여덟살 때에 민며느리로 데려왔으 니 그때에 덕쇠한테 그애가 이쁜 계집으로 보였을 리 없는 것이요, 그 뒤는 누더기를 두르고 부하니 뜬 대가리에 이나 시글시글하고 얼굴은 노상 땟국 이 괴죄죄 흐르고 했으니, 그런데다가 말을 잘 듣지 아니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쿡쿡 쥐어박질리기 아니면 사뭇 매를 맞았으니 그래 이쁘게 보였을 리 없고, 그렇게 자라다가 이쁜이 나이 열다섯이요 덕쇠 나이 스물여덟. 때 명 색 성례라고 지냈고, 그 뒤 삼 년이나 있다가 작년부터 겨우 서방 각시 흉 내를 내게 되었으니 그때 역시 이쁘게는 보이지 아니했고, 그런지라 시방도 덕쇠한테는 이쁜이는 명옥이 같은 색시의 똥이나 핥아먹을 잡이지, 이쁘다 니 천만엣 말이다.


    똥이나 핥으라는 덕쇠의 말에 명옥이는 자리러지게 웃고 춘삼이도 허허 하 고 웃는다.


    그 말에 신이 나서 덕쇠는 점점 더한다.


    “그까짓 년 밉디밉게 생긴 것이 자식두 못 낳구…… 일없이 일없어……” “그래두 이 사람 지날 제 잠깐 길가에서 보았네만 쓱 화장이나 시키구 옷 이나 잘 입혀놓아 보소. 똑떨어지겠데……” “아니여, 아니여.”


    “그럼 내가 그렇게 버젓하게 만들어놀 테니 자네 어쩔랑가?” “응? 어찌여? 어, 내가 절을 백 번만 허지.” “허허허허…… 그럴 게 아니라 여보소, 이건 취담이 아니라 진정인데…… 자네 그렇게 지내는 것보다 무어 장사라두 해서 나처럼 한밑천 잡어가지구 떵떵거리구 살어야지 거 큰일 안 났는가?” “큰일? 응 큰일났지…… 그렇지만 밑천…… 요것, 요것 말이여 요것.” 하면서 덕쇠는 연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글세 요놈의 것이 있어야지?”


    “있자면 있을 수두 있지만……”


    “없어 없어…… 밭이래야 공수 한밭밖에 없구, 쇠래야 담뱃대밖에 없구, 털난 짐승이래야 쥐밖에 없구, 그러구 응 그러구, 곡식이래야 이 뱃속에 들 은 콩팥밖에 없구, 없어 없어…… 흐흐흐흐……” “그래두 있자면 있어.”


    “있어? 어디가?”


    “자네 각시를 일 년만 우리 집에다 둔다면 내가 백 원 하나는 줄 테닝개 니……”


    말을 해놓고 춘삼이는 덕쇠의 눈치를 살핀다. 덕쇠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끄먹끄먹한다. 그러나 확실히 정신은 들었다.


    “무어! 우리 각시를?”


    “응.”


    “무엇허게?


    “자네가 아까 이쁘다구 안허든 이 명옥이보다 더 이쁘게 채려놓구…… 내 영업을 해주구…… 그러면 자네 각시가 이뻐지기까지 허닝개니 두루 좋잖은 가?”


    “증말?”


    “하, 이 사람아, 범연헌 새라구 내가 자네더러 거짓말을 허겠는가.” 덕쇠는 또 끄먹끄먹 생각을 한다. 다른 생각은 나지 아니해도 그것은 분명 기막히게 좋은 일인 것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가 있었다.


    “그러구 자네는 그 돈 백 원으루 장사를 해서 일 년 만에 도루 갚구…… 허기야 자네허구 나허구 처지에 갚구 안 갚구 헐 것두 없네마는…… 좌우간 일 년이 지내거들랑 아주 선녀처럼 이뻐진 자네 각시를 도루 데려가구 ……”


    “참말인가?”


    덕쇠는 술로 흐릿한 머릿속에 춘삼이와 같이 될 제 팔자가 빙빙 떠돌기 시 작했다.


    “거짓말이면 내가 우리 돌아가신 아버지를 두구 증명을 허겠네.” 춘삼이는 자못 기색을 가다듬어 가지고 준절하게 나무라듯 한다. 이러고 보면 덕쇠도 더 따질 나위가 없다. 다만 기뻐하면 그만이다.


    3


    이튿날 새벽.


    덕쇠는 춘삼이와 한가지로 어젯밤의 전주집에 가서 국밥으로 해정을 하고


    갈리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여느때 같으면 새벽에 일부러 나오기도 할 것을 오늘 거꾸로 정거장에서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육십 전이나 받는 금점판의 일꾼에 뽑히려고 대가리를 싸고 덤비 지 아니해도 시방 희떱게 좋은 일이 생기는 판이다.


    가만 있자, 그놈 백 원을 가지고 무엇을 한다? 무엇을 해야 춘삼이처럼 돈 을 한목에 듬뿍 잡게 될꼬?


    그러나 추운 것도 잊어버리고 궁리를 해보았지만 단 십전짜리 장사도 해보 지 못한 덕쇠는 세상에도 큰돈 백 원이나를 가지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섬 뻑 생각이 나지를 아니했다.


    4


    덕쇠의 안해 이쁜이는 부엌 옹솥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고 있다.


    해는 아직 뜨지 아니하고 부엌문 바로 보이는 들판 건너 먼 산봉우리가 부 유스름하게 물들어 오른다.


    마당에는 어젯밤 바람에 몰려다니다 남은 쌀눈이 얇게 깔려 있고 눈위로 신발 자국이 두 개만 사립문 쪽으로 걸어갔다.


    발자국을 보니 이쁜이는 시어머니가 벌써 어둑어둑해서 일어나 시래기를 삶아놓으라고 일러놓고 나간 일이 생각나서, 인제 오래잖아 돌아와 구누름 깨나 하겠다 싶어 속이 뜨악했다.


    그러고저러고 간에 남편 덕쇠는 간밤에 왜 돌아오지 아니했을까 해서 그것 이 궁금했다.


    전에는 짐을 지고 멀리 가서 아무리 늦더라도, 또 노름방 웃전에 앉아 개 평을 뜯느라고 닭이 두 홰 세 홰 운 뒤라도 밖에서 자는 법은 없고 으레 돌 아오곤 했었다. 한번 돌아오지 아니한 때가 있었다. 벌써 삼 년이나 되었지 만, 역시 노름방 뒷전에 앉아 개평을 뜯는 재미로 이슥하도록 있었는데, 순 사가 달려드는 통에 진짬 노름꾼들은 다 튀어버리고 옆에서 잠을 자던 두 사람과 덕쇠가 잡혀갔었다. 잠을 자던 사람은 자느라고 못 달아났거니와 덕 쇠는 노름을 하지 아니했으니까 잡혀갈 일이 없으리라고 제깐에는 청백을 부린 셈인데, 그러나 순사는 변명 대답으로 따귀를 두어 대 올려붙이고 포 승지어 끌고 갔었다.


    그 뒤에 덕쇠가 불어서 정말 노름꾼들이 다 잡히고 나니까 덕쇠는 닷새 만 에 무사히 놓여는 나왔다. 그 뒤부터 그는 노름방에 가서 있으면 노름은 아 니 해도 붙잡아가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언제든지 먼저 뛰어야 한다는 것 을 알았다.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쁜이는 그래서 혹시 또 붙들려가지나 아니했 나 생각했다.


    붙들려가거나 말거나 인간이 그리워서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어젯밤 닭이 두 홰나 울도록, 또 지금 새벽녘부터 기다려지는 마음은 무엇 벌이를 해가지고 돌아오나 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도 덕쇠가 밥을 굶고 나간 사이에 밥이라도 한 그릇 생겨 그놈을 셋에 갈라 두 몫은 시어머니와 둘이서 먹고 그래 요기가 된 때면 못 먹고 돌아다 니는 것이 맘에 걸려 나머지 한 몫을 놓고 까맣게 기다릴 때는 더러 있다.


    섶은 다 삭아 내려앉고 울짱만 그나마 지러지고 쓰러지고 한 울타리에서 새벽까치가 까악까악 짖는다.


    이쁜이는 오늘 무슨 좋은 일이나 있으려나 해서 부지깽이를 든 채 부엌 앞 으로 나와 내어다보았다.


    까치는 부지깽이에 놀라 날아 달아나버린다.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이 동리로 오는 두부장수가 “두부 사압수.”


    외우고 울타리 밖으로 지나간다.


    이쁜이도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부장수!”


    불러놓고 말이 떨어지기 전에 내가 무엇하려고 두부장수를 부르나 걱정을 했다.


    두부장수는 예하고 대답을 하고 사립문으로 끼웃거린다. 삼사 년 두고 겨 울이면 두부를 팔러 와야 두부 한 모 사는 법 없는 집에서 부르니까 두릿두 릿하는 것이다.


    이쁜이는 아궁이로 기어나오는 불을 달려가서 밀어넣고 마지 못해 도로 나 왔다.


    “두부 한 모 을메(얼마)유?”


    두부 한 모에 이 전씩 한 것이 이십 년이 넘는데 그것도 모르고 물으니 두 부장수는 귀한 손님을 얻어 만났다고 성급히 속으로 웃었다.


    “한 돈(二錢[이전])이요.”


    이쁜이는 두부장수는 그만 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우두커니 서서 있으니까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몇 모나 들여가요?”


    두부장수가 기다리다 못해서 볼먹은 소리로 외친다.


    “두부 돈 없어서 안 사유.”


    두부장수는 어이가 없어 뻔히 서서 이쁜이를 바라본다. 이쁜이는 쫓기듯이 부엌으로 들어와 버렸다.


    두부장수는 한참이나 서서 무엇을 생각하더니 그대로 두부지게를 짊어진 채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는 토방에 사내 신발이 없고 눈 위에 선연하게 발 자국이 두 줄로만 나서 있는 것을 보고 그래 저 여편네가 속이 달라서 저러 는구나 속짐작을 한 것이다.


    머리는 더북하게 뜨고 옷은 옹문산에 구름 감듯 누더기를 입었어도 배젊은 게 올망졸망 이쁘게 생겨가지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첫새벽부터 사지도 아니 할 두부장수를 불러놓고 희학질을 하는 것이 두부장수 딴에는 두부는 못 팔 아도 마수거리가 괜찮은가 보다고 좋아한 것이다.


    그래 부엌 앞까지 가까이 가서 이거 어떻게 수작을 붙이나 두부를 여남은 모 담아다가 불쑥 내밀어 주어보나 하고 궁리를 하는데 등 뒤에서 콜록콜록 늙은이 기침 소리가 들리었다.


    두부장수는 무우 캐먹다가 들킨 놈처럼 얼핏 돌아서서 괜히 헴하고 밭은기 침을 한다.


    “두부장수가 왜?”


    덕쇠어머니는 혹시 아들이 그새 돌아와서, 와서 돈냥이나 가지고 와서 그 래 두부장수를 불렀나 하고 들어섰는 것을 두런거리기는 하면서도 토방을 둘러본다.


    토방에 아들의 신발이 없으니까 부엌으로 쑥 들어섰다. 역시 며느리가 혼 자서 불을 때고 있고 아들은 보이지 아니하니까 그만 신명이 풀리고 화가 슬며시 났다.


    “안 드러왔데야?”


    “얘.”


    시어머니의 부딪는 말소리에 이쁜이는 고개를 숙였다.


    “두부장수는 웬 두부장수냐?”


    “살라구 안 불렀어라우.”


    “그럼 왜 젊은 각시년이 사지두 안헐라믄서 두부장수는 불러들여? 응?” “을메(얼마) 허는가 물어보았어라우.” “두부장수 불러들여서 을메 허는 건 알어 무엇 헐라구?…… 으젓잔헌 것 이 허는 짓마닥 어디서! …… 왜 두부장수 서방허구 싶데야?” “늙어서 얼굴이 쪼그라지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하기는 했어도 사납게 생 긴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덕쇠는 어머니를 닮지 않고 아버지를 닮아서 얼굴이 우툴두툴하고 맘성이 우직하다.


    두부장수는 이크 이거 큰코 다치겠다고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버렸다.


    덕쇠어머니는 배고픈 화, 추운 화, 새벽같이 된장을 얻으러 돌아다니던 화, 그리고 아들 덕쇠가 벌이를 해가지고 돌아오지 아니한 화 해서 그냥 풀 어지지는 아니하게 되었다.


    “시래기는 무엇허니라구 인자사(인제야) 쌈(삶)구 있냐?” 사발에 얻어가지고 온 된장을 살강에다가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으면서 잡도 리를 시작한다.


    이쁜이는 대답할 말이 없다. 아까 시어머니가 먼저 일어나 나가면서 된장 이라도 얻어다가 시래깃국이라도 끓여먹게 어서 일어나서 그새 시래기를 삶 아노라고 일러놓고 나갈 때 바로 일어나서 시래기를 삶지 못했고, 그런데다 가 살 수도 없는 두부를 문득 먹고만 싶은 생각에 불러가지고 그러다가 그 놈의 두부장수가 마당에까지 들어와서 그걸 시어머니한테 들키고 했으니 할 말도 없거니와 인제 당할 일이 큰일이다.


    “이년이 금방(방금) 벙어리가 되었다냐?” 사납게 소리를 지르면서 시어머니는 손에 잡히는 대로 부지깽이를 집어 며 느리의 등을 머리 얼러 내리갈긴다.


    “……왜 암말두 않구 찌를 (밭을) 과는 황소치름(처럼)이짐만 쓰구 앉었 냐!”


    그러고는 퍽퍽 내리팬다. 부지깽이가 부러지니까 머리끄덩을 잡아 부엌바 닥에다 동댕이를 친다.


    이쁜이는 울기만 한다. 무어라고 말대답을 하면 또 말대답을 한다고 때릴 판이다.


    ---참새가 찍해도 죽이고 짹해도 죽인다는 셈이다.


    이쁜이는 서러워서 울지는 아니한다. 아파서 운다.


    여덟 살부터 이 집에 와서 그때부터 어머니라는 이 노파와 시방은 남편이 라고 하는 덕쇠한테 맞으면서 이 나이까지 자랐다. 밥은 조금 먹고 매는 많 이 맞고 자랐다.


    덕쇠와 서방각시짓을 하면서부터는 덕쇠는 매질을 덜 했다. 그래도 때리러 들면 무지스럽게 때리기는 하지만 자주 때리지는 아니했다.


    그 대신 시어머니는 더 잘 때렸다. 방이라야 하나뿐이다. 세 식구가 한 방 에서 자기도 하지만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으면 시어머니는 기어코 트집을 잡아가지고는 매질을 하고라야 만다.


    늙고 굶어서 기운은 없어도 매질할 기운은 어디다 아껴 두었던 것처럼 매 끝에서 솟아난다.


    5


    한바탕 매질을 하고 나서 시어머니는 속이 후련한 듯이 거적문을 젖히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더니 기침이 나서 한동안이나 자지러지게 기침을 한다.


    기침하는 소리를 듣고 이쁜이는 잘코사니야 하고 속으로 고소해했다.


    이쁜이는 겨우 다 삶아진 시래기를 건지며 자배기에 헹궈서 한 움큼씩 쥐 어 짜놓고 솥을 씻어낸 뒤에 시어머니가 얻어다가 내동댕이친 된장을 풀어 국을 안치었다.


    다시 불을 지피느라니까 햇살이 맨먼저 부엌으로 비쳐 들어온다. 방에서는 겨우 기침이 개었는지 아무 소리도 없다.


    아무 생각도 없이 넋을 놓고 불을 지피는데 “거 머여?”


    하고 남편 덕쇠가 부엌으로 쑥 들어선다.


    이쁜이는 힐끔 치어다보고 아무 대답도 아니한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아까 시어머니한테 매맞은 노염을 보이는 것이다.


    덕쇠는 안해가 머리가 더 뜨고 눈에 눈물 자죽이 있고 한 것을 보고 벌써 매질이 났었구나 짐작했다.


    무엇 때문에 또 그랬는고, 뭐 그저 보나 아니 보나 괜히 그랬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덕쇠는 손에 들고 있던 쌀자루를 안해 앞어다 던졌다. 아까 춘삼 이와 갈릴 때에 춘삼이가 우선 이놈으로 양식이나 팔아가지고 가 집안 식구 와 잘 상의해 보라고 주던 돈 일 원으로 좁쌀을 팔까 입쌀을 팔까 망설이다 가 큰돈 백 원으로 장사할 것을 찜믿고 입쌀을 판 것이다.


    이쁜이는 건 무어냐고 말은 없이 고개만 돌려 눈으로 묻는다.


    “양식이여…… 그게 쌀이여…… 어서 밥 히여 먹어.” 덕쇠는 그러면서 어젯밤 춘삼이가 하던 말이 생각이 나서 안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런 말을 듣고 보아서 그런지 얼굴이 어쩌면 좀 귀여운 것도 같기는 하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명옥이와 빗대 보면 아무리 보아야 도야지나 무어 같지 이쁘지는 아니했다.


    그러나 이쁘지도 아니하고 도야지 같고 그렇기는 하면서도 덕쇠는 자세히 안해를 뜯어보고 섰느라니까 전에는 없던 이상스럽게 정다운 생각이 솟아났 다.


    명옥이나 그런 이쁘기는 해도 서먹서먹한 그런 것과는 달리 덕쇠 제몸뚱이 의 어느 한 도막처럼 이쁜이라는 그 덩치가 살뜰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때 그는 히죽이 웃으니까 저는 매를 맞아 속이 상하는데 무엇이 좋아 웃 느냐고 눈을 흘긴다.


    덕쇠는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저고리 앞자락 속의 호주머니를 만지었 다.


    쌀을 팔고서 남은 놈 십몇전을 담배를 한 봉지 살까말까 하다가 그냥 두어 둔 것이 그대로 짤랑거린다.


    지금 솥에 끓이고 있는 것이 국인 듯하니 얼핏 고기를 좀 사다가 넣어서 이쁜이를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덕쇠는 허둥지둥 돌아서서 나가려다가 되돌아섰다.


    “그게 국이지? 아직 다 끓이지 말구 그냥 두어 응…… 나 고기 사갖구오 께.”


    “고기는 무엇허게 사온다구 속없이 저런대여! 국 벌써 다 끓었는디……” 이쁜이가 뾰롱한 채로 뒤통수에다 대고 미운 소리를 해준다.


    생각하니 그렇기도 하다. 시방 다시 정거장 근처까지 가서 고기를 사오자 면 해가 한나절이나 될 테니 생일날 잘 먹자고 이레 굶는 셈이다.


    그래 그럴 줄 알았더라면 양식 팔 때 아주 고기를 사가지고 올 걸 하고 데 시기를 긁는데 방에서 어머니가 또 푸념을 한다.


    “너는 밤새두룩 어디 가서 무엇허구 있었냐?” 먼저 났던 화가 덜 풀리기도 했거니와 어미는 찾지도 아니하고 부엌에서 저희끼리만 그러고 있다고 샘이 난 것이다.


    덕쇠는 아무 대답도 아니했다. 이제 조반이나 해먹은 뒤에 차차 상의 하느 라면 어제 저녁 이야기도 하게 될 터이니까.


    “비러먹을 놈! 또 노름방 뒷전에 가 앉었었지 머……” 방에서는 연달아 욕이 나온다.


    “노름방에는 가지두 안히였수만 또 가면 어떤그라우? 개평이라두 뜯을 수 있으면 뜯어다가 밥 한 끄니(끼)라두 히여먹는 게 났지. 그냥 우두커니 앉 었으면 하늘서 밥이 떨어지간디라우……” 어머니도 실상은 공연한 트집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지 노름방에를 다니 지 못하게 할 며리도 없는 것이다.


    “잘헌다 빌어먹을 놈! 그리고…… 너는 노름방에 가 밤새두룩 앉었구 늙 은 어미는 배가 고파서 죽구 그러란 말이냐.” “노름방에는 가지두 안히었수만 나두 하마트라면 엊저녁(어제 저녁)에 죽 을 뻔히였수…… 다행히 친구를 만나서 요기두 허구 늦었다구 붙잡어서 자 구 왔수만……”


    마침 멀리서 두부장수 외우는 소리가 들리자 덕쇠는 두덜거리다가 말고 부 엌으로 들어가 사발 하나를 집어 들고 씽하니 나가버린다. 고기는 못 사니 두부라도 사다가 이쁜이를 좀 먹이자는 것이다.


    덕쇠가 두부 세 모를 사발에 담아 들고 히죽이죽 웃으면서 부엌으로 들어 오니까 이쁜이는 그대로 뾰로통해서 되레 핀잔을 준다.


    “식히잔헌 일은 퍽 허구 댕기네! 두부는 무엇허러 사온대여! 그년의 두부 를 보닝개 이가 갈리너만!”


    “헤, 참 두부가 어찌깐디 이가 갈려? 이놈 된장에다 지져서 밥 먹어.” 이쁜이는 두부 사발을 채듯이 받아다가 국솥 소댕을 열어놓고 한 모씩 식 칼로 숭덩숭덩 썰어 넣어버린다.


    “왜 식전버텀 삐쳐 갖구 이리어? …… 남은 실컷 생각히여서 두부랑 사다 주닝개루……”


    덕쇠는 전에 만일 이쁜이가 그렇게 시키는 대로 듣지 아니했으면 욕을 해 주었든지 쿡 쥐어 박질렀든지 했을 것이다.


    “생각히여 주는 것두 다 싫어.”


    한바탕 윽박질렀으면 풀이 죽었을 것인데 얼러주니까 이쁜이는 점점 더 보 풀떨이를 하려 든다.


    “잡것이 왜 자꾸 이런대여! 헤 참.” “그만두구 저리 나가.”


    “가만 있어 내가 불 때주께 어서 밥쌀 씻어.” 솥이 지금 국을 끓이는 옹솥 하나뿐이라 국을 끓여서 퍼놓고 거기다가 다 시 밥을 지어야 한다.


    이쁜이는 국을 퍼내고 솥을 씻느라고 시시한다.


    덕쇠는 꺼졌던 불을 도로 살린다.


    “여바.”


    덕쇠는 천 조각이나 기운 치마 밑으로 달랑 한 겹 들어 있는 이쁜이의 홑 고쟁이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지성스럽게 부른다.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리는 이쁜이의 얼굴은 아까보다는 많이 풀어졌다.


    “비단옷 안 입구 싶어?”


    덕쇠는 다 생각이 있어 하는 수작이지만 이쁜이한테는 청국말같이 못 알아 들을 소리다.


    “비단옷 말이여 고흔 비단옷.”


    “히여주면 안 입으까!”


    “히여주까?”


    “깐치(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 퍽 허구 있네! 쓸디없는 소리 그만두구 돈 생겼거들랑 양식이나 나수 팔어와…… 이러다가는 모다 굶어죽을 티닝개 루……”


    이쁜이는 덕쇠가 아까 시어머니더러는 노름방에 가지 아니했다고 했어도, 눈치가 분명 노름방에 갔다가 돈이 좀 나우 생긴 것이라 짐작하고 하는 말 이다.


    “양식두 팔기는 팔지만 백 원 밑천 들여서 장사헐 참이여.” 말을 하면서 아까부터 히죽이 죽 웃는 남편을 이쁜이는 잠꼬대를 하고 있 나 하는 듯이 위아래로 흝어본다.


    “금비내(비녀)랑 비단옷이랑 응 좋지?” “참 벨(별)소리 다 듣겠네! 미칠라거든 고이 미치잖구 왜 이런대여!” “얼레! 내가 그짓말허는 중 알구 그리여! 제기 참! 인지 두구 부아……” “두구 부아야 비렁배기(거지)지 머……” “흥…… 돈 백 원 갖구 장사히여…… 장사히여서 춘삼이치름(처럼) 떵떵 거리구 살어.”


    “돈 백 원이 뉘 애기 이름인가 부네!” “춘삼이가 준다구 그래어.”


    “춘삼이가 누군디 돈 백 원을 주어?” “춘삼이 몰라?…… 응 참 몰르겄구만…… 우리 동네(동리) 살다가 대처루 가서 창사허다가 부자 된 사람인디 시방 저 정거장 앞에서 장사를 하여 ……”


    “그 사람이 무얼 보구 돈을 백 원이나 주어?” 이쁜이도 이야기를 듣노라니까 차차 솔깃해서 인제는 좀더 자세한 속을 알 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6


    이지러진 상사발에 수북수북 담은 밥을 한 사발씩 뚝배기에 소(素)두부를 두어 끓인 시래기국을 한 뚝배기씩 셋이서 제가끔 차지하고 앉아 조반을 먹 는다. 아침결에 먹으니까 조반이라고 하겠지만, 꼽아보면 이밥이 어제 저녁 밥이기도 하고 어제 조반이기도 하다. 또 오늘 저녁밥일는지도 모르고 내일 조반이나 내일 저녁밥이나도 길는지 모른다.


    요행 덕쇠만은 어제 저녁에 춘삼이를 만나 그렇게 잘 대접을 받았고 아까 도 든든하게 해정을 했고, 또 인제 돈 백 원으로 장사를 할 일이 앞에 그득 채어 속이 느긋한 판이지만, 그것은 예사일이 아니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 그러한 당자(當者)들 아닌 사람으로 앉아 본다면 실로 아슬아슬한 일 이다.


    금시로 굶은 농군들이 여기저기 픽픽 쓰러져 죽고, 그래 이 겨울을 지내고 나면 그 사람들은 그중 몇만 남지 다 죽어버릴 성싶을 것이다. 세상에 사람 이, 더구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굶다니……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기야 정 굶다 굶다 못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더러는 있기도 하고 오래 두고 노상 굶은 것이 병이 되어 죽는 사람도 있기 는 하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은 살아 있다.


    굶어죽지 아니하고 굶어산다.


    이 굶어산다는 것이 그 사람들한테는 굶어죽는다는 것보다 다급한 일이다.


    말은 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굶어죽는 게 별것인가! 여러 끼못먹으면 싫어도 제절로 죽지!라고.


    그러나 그러면서 그 사람들은 굶어죽는 것을 그다지 골똘히 생각지 아니한 다. 다만 한 끼 두 끼 혹은 하루 이틀 굶은 배를 훑으려 쥐고, 앉아---앉아 서가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한술 밥을 먹을 마련을 하느라고만 정신이 없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몇 끼만에, 더디면 며칠 만에 한 끼를 먹는다.


    밥을 약(藥)먹듯 해도 사람은 살기는 산다.


    이렇게 그 사람들은 굶어산다.


    덕쇠 모자는 그래도 모서리 빠진 개다리소반이나마 지시락물 같은 간장 한 종지, 쓰디쓴 김치 한 사발은 놓고 앉아 맞상을 받고, 이쁜이는 제 몫으로 밥사발과 뚝배기에 먹다 걷어둔 김치그릇을 방바닥에 놓고 넌지ㅣ 물러앉아 서 오래간만에 밥이라는 것을 숟갈질한다.


    며느리나 안해는 시어머니나 가장과 맞상을 해서 밥을 먹지 아니하는 것이 예법이다. (고 그는 배웠다.)


    덕쇠는 이쁜이가 국에 두부가 적고 밥도 주걱데기를 싹 긁어붙인 반사발인 것이 맘에 걸려 힐끔힐끔 돌아다본다. 전에야 그렇게 이쁜이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아니면 제 국에서 두부도 더 건져주고 밥도 많이 먹으라고 덜어 주고 하겠는데, 어머니가 보는 데라 계면쩍어 차마 그리할 수가 없다.


    그런데다가 저녁 굶은 시어미라니, 아까 났던 심술이 아직도 풀리지 아니 해서 무엇이든지 트집을 잡아 화풀이를 마저 하려는 눈친데, 만일 그랬다가 는 단박 동티가 날 판이다.


    그래 덕쇠는 다칠까 무서워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면서 밥을 먹느라니까 아 니나다를까 국에 둔 두부로부터 푸념은 쏟아져 나온다.


    “두부장수놈 불러놓구 해롱해롱허더니 속이 후련허겠구만…… 아니꼽게.


    입은 높아서…… 이년 잘하였다구 상급으루 네 서방이 사준 두부니 배지가 툭 터지게 처먹어라.”


    이것은 아들 덕쇠까지 한껏 물고 들어가는 말이다. 두부 때문에 매를 맞았 다고 남편더러 하소연을 한 것이라고, 하소연을 하니까 계집 위해 바치기 겸 어미 배 채우라고 선걸음에 달려가 두부를 사온 것이라고 이렇게 꽁한 생각에 아들까지 물고 뜯는 것이다.


    덕쇠는 전 같으면 두부장수를 불러들여 그렇게 수작을 했다는 것을 들어서 던 길로 트집잡아 이쁜이를 한바탕 족쳐주었겠지만 인제는 어머니가 되레 야속스럽고 구박을 받는 이쁜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죽이나 두부가 먹고 싶었으면 그랬으랴 해서, 두부를 사온 것이 선뜻 한 일이지만 잘했다고 속으로 기뻤다.


    그리고 보니까 두부를 더 먹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은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판에 더 건져줄 수는 없고, 오냐 오늘 저녁이면 춘삼이네게로 가서 실 컷 맘껏 잘 지낼 테니 괜찮다고 이렇게 안심을 했다.


    “창수 빠진 년!”


    입이 이빨이 빠져 합족거리는 깐으로는 밥숟갈을 크게 떠넣으면서 한참만 에 다시 욕이 나온다.


    “쌀두 좀 생겼거든 죽을 쓸 일이지 무슨 터수에 허연 쌀밥만 처든질라구 이렇게 밥을 히여노아!”


    덕쇠는 자꾸만 더 이쁜이가 불쌍해서, 그러나 안해를 싸고 도는 눈치가 아 니 보이게 슬며시 역성을 들어준다.


    “국이 다 끓었길래 내가 밥허라구 그맀우.” “끓은 국으루는 죽 못 쑤어먹는다냐! 지집(계집)년이 갈충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국 끓른디다가 쌀 북북 씻어서 갖다 넣구 불 더 때면 죽 안되 야?”


    만일 덕쇠가 그나마 쌀을 사가지고 와서 밥을 지어먹게 되었기망정이지, 그대로 굶고 있었다면 푸념은 하루 종일 끌었고, 이튿날도 풀리지 아니했을 것이다.


    소담스런 밥 한 사발이 거진 다 쪼글쪼글한 입으로 들어가고 그 대신 노염 이 그렁저렁 뱃속의 밥과 한가지로 삭아가는 눈치를 보고 덕쇠는 비로소 이 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덕쇠 어머니는


    “제까짓 년을 보구 누가 돈을 오백 냥(백 원)이나 준다냐?” 하고 이쁜이게로 눈을 흘기면서 아니꼽게 낯놀림을 한다.


    그는 속으로는 깜짝 놀라게 반가왔다.


    데시기에 서캐가 허옇게 슬고 병신 천치같이 어리뚱한 저것을 무엇으로 보 고 데려간다 하며, 또 일 년 데려다 두기로 하고 돈을 백 원이나 준다니 정 말이라면 큰일날 소리다.


    더구나 덕쇠 말대로 그놈 백 원으로 장사를 해서 춘삼이처럼 되어 잘살게 된다면 다시 이를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못 생긴 며느리가 다시 한번 치어다보이고, 그러 고 장히 아니꼬왔다.


    만일 이쁜이가 그의 며느리가 아니라면 그는 말하는 사람의 말도 떨어지기 전에 에 시언하다, 에 잘되었다, 그거 참 큰 횡재다 하고 얼핏 승낙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뜻 반겨하지도 아니하고 그리하라고 대답도 아니한다.


    첫째 그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깝다고 해야 이쁜이와 정이 들고 소중하고 그리고 귀엽고 해서가 아니다.


    여덟 살 때부터 민며느리로 얻어다가 매질과 찬밥덩이와 굶기기로 기르기 는 길렀어도 그만큼 길러 성례(成禮)를 치르어서 겨우 자식을 장가라고 들 여 부모 할 일을 한 것인데, 일 년이라고는 하지만 어떻 될지 모르는 터에 내준다는 것이 아까운 것이다.


    그러고 또 한편으로는 웬 저 따위가 백 원 값이 되며, 그리고 춘삼이 네게 로 가서 덕쇠 말대로 비단옷을 입고 잘 먹고 잘 지낼 그런 호강을 한다는 것이 시새워서 밉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백 원은 크다. 그놈 백 원으로 장사를 해서 크게 치부(致富)를 하 면 더 크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우선 당장부터 밥을 끼마다 굶지않고 먹 을 수가 있으며, 옷을 뜨듯하게 입을 수가 있으니 그게 어디냐!


    술집에 가서 있게 되나 잘못하면 계집을 버리게 될 것 그것을 생각하면 좀 찝찝하지만, 그러나 그 돈으로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거든 다시 장가를 들이면 그만이지, 아니 되레 그것이 낫고 다행이지…… 이렇게 그는 아주 단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노했던 타성도 있고 또 그것이 좋다는 내색을 보이기가 싫어 짐짓


    “모르겠다 네 맘대루 허려무나.”


    하고 마땅찮은 듯이 쳐밀어버린다.


    7


    이쁜이가 남편 덕쇠를 따라나와 정거장 장터에 거진 당도했을 때에는 가슴 이 사뭇 두근거리고 바람끝이 차건만 볼때기가 확확 달곤 했다.


    이쁜이는 오늘 새벽에 시어머니한테 머리끄덩이를 잡혀 동댕이질을 치우고 부지깽이로 얻어맞고, 또 밥먹을 때에 욕을 반참삼아 얻어먹은 그런 예사일 만 아니면 남편의 하는 것은 도무지 모두가 뜻밖이요 처음 보는 일이었었 다.


    맨먼저 남편이 그렇게 두부를 사다 주는 둥 말을 곰살갑게 하는 둥 그런 것이 전에 없는 일이다.


    또 비단옷을 입혀준다는 것은 말만이라도 꿈에도 들어보지 못하던 소리다.


    그때 그는 남편의 얼큰한 얼굴을 보고 혹시 내력 없는 주정을 하는 것인가 했으나 보아도 주정은 아니었었다.


    혹시 안 갔다고 잡어떼기는 하지만 노름방에를 갔다가 돈이 좀 나우 생겼 나, 그래서 비단옷을 해준다고 그러나. 그러나 그렇게 갑자기 곰살갑게 굴 고 비단옷을 해주고 할 턱이 무엇인가.


    가령 돈이 생긴 눈치를 알고 이편에서 먼저 비단옷을 해달라고 했더라도 ‘되지두 못헌 것이 건방진 소리를 한다’고 머쓰려버릴 것이고 기껏해야 양식을 팔아오는 길에 분이나 오전짜리 한갑 사다가는 시어머니 몰래 집어 던져 줄동말동한데, 물론 그거라도 감지덕지하지만.


    그래 종시 궁금하던 판인데 밥을 먹으면서 남편이 시어머니더러 하는 이야 기를 듣고 비로소 속을 알았다.


    그는 그 말을 듣고 그 내평을 알고 나니 속이 얼떨떨하니 어쩐 셈을 알 수 가 없었다.


    도무지 이상했다.


    자, 세상에 못났다는 처접을 타고 난 자기를 보고 돈을 백 원이나 준다는 것이 이상하고, 그래서 그 돈으로 장사를 해서 춘삼인지 하는 사람처럼 떵 떵거리고 살고, 그래 밥을 아니 굶고 옷을 헐벗지 아니하고 산다는 것이 남 의 일인 것 같다.


    또 그 집에 가서 일 년 동안 비단옷을 입고 그리고 잘 먹고 지낼 일도 거 짓말같이 곧이들리지 아니했다.


    그러나 남편의 눈치가 노상 거짓말은 아닌 성싶은데, 그러면 대관절 그 집 에 가서는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호강을 하게 되나.


    바느질도 잘 할 줄 모르고 반찬도 잘 만들 줄 모르고 머리에는 이가 시글 시글하고,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못나고 못생겼다고 지천이나 먹고 매나 맞 고 그랬는데, 그래도 그런 재주밖에는 아무것도 할 줄을 모르는데 무엇을 시키려고 데려갈꼬.


    그렇더라도 좌우간 데려가기는 데려가는가 보니, 가서 보면 알 것이거니와 하고 생각해보니 울긋불긋한 비단옷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무어 모두 다 훤 하게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모처럼 귀한 밥도 맛있는 줄 모르게 먹다가 말았 다.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려니까 남편이 재촉을 해서 그냥 두어두고 세 수를 했다.


    왜비누는 구경한 지 오래고 녹두비누라도 있으면 했으나 그도 써본지오래 다.


    분도 없었다.


    기름도 없이 머리를 어떻게 어떻게 빗고 나니까 저고리로 치마로 시꺼먼 이가 슬슬 기어다닌다.


    뒤통수의 서캐를 좀 훑어내고 싶었으나 감지도 아니한 머리를 어찌할 수가 없다.


    옷은 세상이 없어도 지금 걸치고 있는 그것뿐이다.


    조각보보다 더 기운 검정 광목치마 다홍빛 위에 검은빛--땟국--이한 겹 덧 덮인 저고리, 그리고 홑고쟁이와 목만 남은 버선.


    거기다가 다 해어져가는 굵다란 짚신을 끌고 보퉁이 하나 없이 그는 남편 이 가자는 대로 따라나섰다.


    시어머니는 내어다도 아니 보고 있는 방 뜨락에서 “댕겨와요.”


    라고 이웃에나 가는 듯이 인사를 했다. 시어머니는 대답도 아니한다. 그러 나 사립문께로 나갈 때에 거적문을 가만히 떠들고 내어다보는 것을 알지 못 했다.


    집 문앞을 나서서 남편은 뒤에 처진 이쁜이를 돌아보며 히 하고 웃었다.


    덕쇠 저도 왜 웃는지 모르거니와 이쁜이도 웃는 속을 몰랐다. 그러나 따라 서 웃었다.


    둘이는 나란히 눈 사박거리는 길을 정거장으로 향하고 걸었다.


    “배 안 고파?”


    덕쇠는 몇걸음 못 가서 뭇는다. 주걱데기를 반 사발 밖에 못 먹은 것이 걸 려서 위로삼아 뭇는 말이다.


    “아니.”


    전 같으면 몇 끼 굶은 판이라 그걸로는 요기도 아니 되었겠지만 오늘 아침 은 지금 이 일로 가슴이 벙벙해서 시장한 줄을 모르는 것이다.


    “가서 눈 질끈 감구 일 년만 고생히여…… 일 년만 고생허면 내 심평두 피구 히여서 다 괜찮얼 티닝개.”


    덕쇠는 간곡하게 타이르듯 한다. 그러나 이쁜이는 또한 속모를 말이다.


    “그 집에 가면 비단옷 입구 호강헌다면서 고생허라구 그리어?” “아무렴…… 그렇기는 허지만 그리두 집에 있는 것보다는 고생이지.” “왜?”


    덕쇠는 제깐에도 안해를 술집에다 갖다 둔다는 것이 속으로 언짢아서 고생 이라는 말을 써서 말하는 것인데 이쁜이는 호강이라더니 고생이라고 하니까 영문을 몰라 그렇게 고지식하게 뭇는 것이다.


    “글쎄 잘 입구 잘 먹구 편허게 지낼 티닝개 되려 집에서 있을 때보다는 낫을는지 모르지만 말이여……”


    “응.”


    “그렇지만 남의 집이닝개 말이여……” “좋을 도리만 있으면 일 년은 말구 십 년이라두 있지.” “머?”


    그 말에는 덕쇠는 가슴이 뜨끔해서 껑충 뛴다.


    그는 아까부터 이쁜이를 보면 볼수록 정말로 이뻐지는 것 같고, 그리고 정 다와져서 그놈 돈 백 원만 아니라면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런지라 속으로 여러 가지 궁리가 되는데 지금 이쁜이가 말한 대로 제가 좋아서든지 혹은 무슨 탈이 붙어서든지 그야말로 십 년이나 있게 된다면 그 건 큰일이다. 영영 뺏기고 마는 것이다.


    “괜히…… 일 년만 되거든 와야지 못써…… 괜히.” 그는 전에 하듯이 이쁜이를 얼러메었다.


    “오라면 오지.”


    이쁜이의 대답은 풀이 죽었다.


    오라면 왔지 별수가 없을 줄만 아는 때문이다.


    부처는 잠시 말이 없이 걸었다.


    “춥지?”


    덕쇠는 홑고쟁이 하나만 입은 이쁜이가 가엾어서 목소리를 다시 보드랍혀 뭇는다.


    “아니.”


    배가 고플 때 배가 고프다고, 몸이 아플 때 몸이 아프다고, 옷을 못입어 추울 때 춥다고 바른 대로 대답이 나오지 아니하도록 단련도 되었거니와 이 쁜이도 남편이 갑자기나마 그렇게 살뜰히 구는데 마음이 끌려 마음도 말도 자연 곰살가와진 것이다.


    그러나 춥기는 추웠다.


    “춥더래두 조꼼 참어…… 인제는 춘삼이네게만 가면 그만이닝개루.” 덕쇠는 제가 두루마기라도 없는 것이 내내 안타까왔다.


    그는 인제 마음 먹은 대로 돈을 많이 모으고 잘살고 하면 이쁜이를 다습고 좋은 옷으로 감아 편안히 앉혀놓고 살게 하리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해도 햇살이 엷게 남쪽으로 치우쳐 훨씬 높이 솟았다.


    싹도 트지 아니한 보리 묻은 밭에서 까마귀가 새까맣게 내려앉아 거름준 것을 파헤치고 있다.


    논에는 비죽비죽 솟은 모포기 사이로 물이 얼어붙고 눈이 어설프게 뿌려져 있다. 이 훤하게 터진 들판의 바람끝이 고추같이 맵다.


    덕쇠는 와들와들 떨며 찰래찰래 따라오는 이쁜이가 보기도 민망해서 밭두 덕 시든 풀에다 불을 놓았다.


    눈이 시든 풀숲에 쌓였기는 하지만 곧잘 활활 타서 둘이는 불이 타 뻗는 대로 따라가며 불을 쬐었다.


    조금은 나았다.


    부처는 서로 보고 웃었다. 이 부처가 이렇게 정다와본 적은 한번도 없었 다.


    이렇게 해서 겨우 장터 가까이 당도했을 때에는 이쁜이는 가슴이 요란스럽 게 설레었다.


    “그 집에 가서는 무슨 일을 헌대여?” 이쁜이는 마침내 이렇게 물어보았다.


    덕쇠는 듣고 보니 무어라고 대답을 알아듣게 해줄 바를 몰랐다.


    “무어 그저 손님들 오면 술상 옆에 가 앉어서 술 따러(부어)주구……” “그걸?”


    “응.”


    “그걸 내가 헐 줄 알어야지!…… 술 따르다가 잘못히여서 흘리구 그러면 어떻게 허게!”


    이쁜이는 술 붓는 것이라니까 비로소 이야기로 들은 술집 색시를 상상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다는 것은 알 수가 없고 다만 술 부을 줄 모르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구 손두 이렇게……”


    내어 보이나마나 개이빨같이 벌어진 손등에 누룽지처럼 껍질이 발린 커다 란 손이다.


    “괜찬히여.”


    덕쇠는 이쁜이를 안심시키느라고 괜찮다고는 했지만, 미상불 술을 잘 부을 줄도 모르고 또 손이 저래서 도로 쫓겨오고 돈 백 원을 물러달라고 하게 되 지나 아니할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그러구 또?”


    이쁜이는 남편이 괜찮다는 데 안심을 하고, 그러면 그 밖에 무슨 일을 하 는지 묻는 것이다.


    “그뿐이지 머……”


    “그뿐?”


    “응.”


    “밥은 안 히여먹구? 설거지랑……” “아니.”


    “빨래랑?”


    “빨래두 다 히여주는 사람이 따루 있어.” “어쩌나!”


    이쁜이는 그만 탄복했다.


    8


    돈 백 원---십원짜리 열 장을 저고리 속 고비에 넣고 새끼로 젖가슴 밑에 를 질끈 동이고서 장터로 나선 덕쇠는 외양이야 그냥 덕쇠지만 아주 속은 딴 사람이 되었다.


    더구나 그는 술이 한잔 얼큰했다. 춘삼이가 인찰지에다가 무어라고 쓴 것 을 가지고 지장을 누르라니까 시키는 대로 누르고, 그러고 나서 십원짜리 열 장을 금융조합소 사람이 하듯이 착착 세어 내주는 것을 그는 바르르 떨 리는 손으로 받았다. 가슴은 손보다도 더 떨리고 두근거렸다.


    십원짜리 열 장을 한 장씩 침을 묻혀가면서 세어 수를 맞추기에 힘이 들었 다.


    그놈을 저고리 속 고비에 넣으면서 밑바닥에 구멍이 뚫리지 아니했나 잘 신칙해 보았다.


    다시 새끼를 한 발 집어다가 저고리 위로 젖가슴 밑에로 질끈 동여맸다.


    덕쇠는 그 고마운 춘삼이를 술을 한잔 대접하려고 청하니까 춘삼이는 그럴 수가 있느냐고 먹기는 먹어도 자기가 내지야고 전주집으로 나와 댓잔씩이나 먹었다.


    춘삼이는 집에서 나올 때에 덕쇠는 이쁜이를 만나 잘 있으라고 작별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이쁜이는 가던 길로 춘삼이가 안방으로 들여보내어 그의 안 해에게 맡겨 닦달을 시키느라고 눈에 보이지 아니했었다. 그래 좀 불러달라 고 할까 하다가 미안해서 그만두었다.


    덕쇠가 술값을 치르려고, 더구나 어젯밤에 오전어치 국밥 한 그릇 외상 달 라고 그다지도 애걸하는 것을 잡아떼던 전주댁한테 보아란 듯이 십원짜리 뭉텅이를 보여줄 양으로 부스럭부스럭 새끼를 푸는데 춘삼이는 자기한테로 달아 두라고 이르고 일어섰다.


    덕쇠는 그래도 돈 뭉텅이를 꺼내어 그중 한 장을 번쩍 내밀었다.


    “아니여! 고상…… 내 술두 한잔 먹어야지…… 자 이것 거슬려 주.” 전주댁은 그러나 놀라지도 않고


    “십원짜리 거스를 것 없어라우.”


    하고 춘삼이는 덕쇠를 잡아끈다.


    “이 담에 그놈으로 장사해서 돈 많이 벌거든 그때 먹세.” 보면 볼수록 덕쇠는 춘삼이라는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덕쇠는 춘삼이를 작별하면서 이쁜이가 아무 철도 모르고 그러니 친구낯으 로 보아 모든 것을 눈감아주고 잘 데리고 있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모 든 것을 다 맡기니 말을 잘 듯지 않거든 때려주라고, 그래야 사람이 된다고 까지 일렀다.


    이렇게 해서 할 일을 다 하고 돈 백 원을 지닌 몸에 얼큰해가지고 그는 혼 자 장터로 나선 것이다.


    돈 백 원은 덕쇠한테는 가지고 쓰고 하기는 고사하고 도무지 생각도 해보 지 못하던 큰 덩치다.(천문학적 숫자(數字) 같은 엄청난 돈이다.)


    그는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 저고리 속 고비에 들어 있는 십원짜리 열장이 돈이 아닌 것도 같았다.


    또 혹시 못쓰는 돈이나 아닌가 버럭 외심이 나서 단박 풀어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너무 느긋해서 든 것같이 잠깐잠깐 일어나는 것이요, 그저 몸이 날 듯이 가볍고도 든든했다.


    마침 정거장에 새 차가 들이닿았다.


    여럿이 내려서 흩어져가고 짐을 가진 사람이 두리번거린다.


    덕쇠는 멀리 바라보며 속으로 흥 하고 웃었다.


    정거장 건너편 논 가운데서는 금을 파느라고 추운 다리를 걷어올린 일꾼들 이 여기저기 수백 명 모여서서 움직거리며 일을 하고 있다. 덕쇠는 보기에 그 사람들이 한심했고, 또 전에 자기도 그거나마 일을 한몫 얻어하려고 애 쓰던 일이 우스웠다.


    덕쇠는 이 전방 저 전방 돌아다니면서 흥정을 했다. 쌀이 한 말, 양재기, 고기, 모자가 해 입을 옷감, 솜, 고무신 그리고 마지막 담배가게에서 담배 를 사는데 화장품이 눈에 띄었다.


    그는 이십오 전을 주고 물분 한 병을 샀다. 이쁜이를 문득 생각하고 사기 는 샀으나 다시 생각하니(이쁜이가 집에 있지 아니한 것을 잊은 바는 아니 지만) 춘삼이네게로 갖다 준대로 모든 것이 인제는 구비해 있을 텐데, 그래 생각도 나지 아니할 것 같아 기쁜 가운데도 저으기 섭섭했다.


    그렁저렁해서 십 원 한 장 헌 것이 일 원하고 몇십전밖에 남지 아니했다.


    덕쇠는 흥정한 것을 모두 한데 허저 가게에 맡기고 분 산 것만 가지고 가 게 앞에 나서서 망설였다.


    생색이야 나건말건 그 돈 백 원이 따지고 보면 뉘 덕으로 생긴 거라고 분 한 병이나마 기왕 산 것이니 가져다 주고, 그리고 못 보고 나왔으니 작별도 할 겸 또 무엇 그래도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다 주고 할 양으로 춘삼 이네게를 갈까말까 망설이는데, 빈 지게를 짊어지고 정거장 쪽에서 오는 한 동리 사람 순갑이를 만났다.


    순갑이는 돈 한푼 날 턱이 없는 덕쇠가 가게 앞에서 무엇을 다뿍 흥정해 가지고 꿍쳐놓고 하는 것을 먼빛으로 벌써 보았다. 그는 그것이 궁금도 하 거니와 이떻게 얼려서 막걸리잔이라도 빼앗아 먹으려고 속으로 은근히 장을 대는 판이다.


    “자네 수 생꼈는가 부네?”


    순갑이는 우선 이렇게 수작을 붙인다.


    “어이, 순갑인가? 어디 갔다 와?”


    덕쇠는 순갑이가 금점판으로 품을 팔려고 첫새벽에 나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줄 번연히 알면서 짐짓 모른 체하고 묻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아침에---실로 하루 아침에---부자가 되어버린 자기와 그리고 여전히 궁하고 초라한 친구를 대놓고 보게 되니 더욱 신이 나고 그래서 말 본새도 그렇게 의젓해지는 것이다.


    “나? 머 그저 헛걸음허러 왔었지.” 대답을 건성으로 하고 순갑이는 덕쇠가 꿍쳐놓던 것을 넌지시 넘겨본다.


    덕쇠는 속으로


    ‘그따우 돈 한 사오전 버는 금점판에는 다녀 무얼 해! 나치럼 한꺼번에 백 원을 벌지.’


    하다가 다시


    ‘제 따우가 우리 이쁜이 같은 각시가 있나 머.’ 하고 싱긋이 웃었다.


    순갑이는 덕쇠가 웃는 것을 자기 짐작 들어맞은 것으로 알았다. 그래 그는 한번 더


    “수가 생꼈는개비여? 응?……”


    하다가


    “저건 자네 것인가? 뉘 짐 져다가 줄 것인가?” 하고 짐짓 묻는다.


    그 말에 덕쇠는 슬그머니 열이 났다.


    “참! 이 사람아 나는 밤낮 남의 짐만 져다 주는 사람인 동(줄) 아는 가?


    괜시리 그러지 말소…… 술 한잔 사주까?” 덕쇠는 코로 벌름벌름 웃으면서 고개를 되들고 손으로는 저고리 속 고비를 누른다. 이 속에 돈이 백 원이나 들어 있는 것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하는 뜻이다.


    “헤 참! 구신 듣는디 떡 이야기를 허지…… 사주는 술을 안 먹어?…… 그 러지 말구 한잔 사주소 이 사람…… 아침두 안 먹구 나왔더니 시방 죽겄 네.”


    덕쇠는 그러지 아니해도 한바탕 호기를 보이려는 판이라 순갑이를 끌고 전 주집으로 갔다. 어젯밤에 덕쇠 자기가 춘삼이한테 그러한 대접을 받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자기가 춘삼이(만은 못하지만 장차는 그렇게 될테고) 그 춘 삼이처럼 친구의 시장한 것을 대접하게 된 것이 자못 감개로 왔다.


    덕쇠는 흠뻑 요량을 했지만, 순갑이는 국밥에 한잔이면 족하리랬던 것이 두 잔 석 잔 다섯 잔 그러고도 어쩔 셈으로 자꾸 더 권하는지 몰라도 권하 는 대로 먹은 것이 필경 막걸리 일곱 사발씩을 먹었다.


    두 사람은 제가끔 제멋대로 헛딛어지는 다리와 씨름을 하면서 집으로 향해 걸어간다. 덕쇠의 물건 흥정한 것은 순갑이 지게 위에서 순갑이와 한가지로 비틀거리고, 덕쇠는 그중에도 구십 원이 들어 있는 속 고비와 이쁜이를 생 각하고 산 분은 곱다시 건사를 하고 간다.


    장터를 벗어나자 덕쇠는 더욱 비틀거리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여게 순갑이 허허허허…… 어 이 사람.” 다리도 비틀거리고 말도 삐틀삐틀한다. 그는 연신 제 몸도 지탱하기 어려 운 순갑이의 목을 그러안으려고 덤벼든다.


    “어 순갑이…… 가노라 간다. 허허 허허…… 이 사람, 어 순갑이, 응 사 람이라는 게, 엉 말이여, 운이 틔자면 다 하룻밤 새에 틔는 법이데, 허허허 허.”


    순갑이는 아까 전주집에서 술을 얻어먹으면서부터 꼬치꼬치 물어보았으나 덕쇠는 얼버무려 넘기고 내평 이야기를 하지 아니했었다. 그래 대관절이 녀 석이 돈이 어디서 생겨가지고는 이렇게 마구 쓰나.


    어젯저녁에 노름방에를 갔다가 개평을 뜯은 놈으로 밑천삼아 돈을 좀땄나, 혹은 길에서 십원짜리라도 한 장 얻었나. 그렇지 않고는 천하 없어도 제가 돈이 생길 턱이 없는데.


    이렇게 시새워도 하고 궁금도 했다. 그래 그 속도 좀 알려니와 돈이 생겼 으면 얼마나 생겼나 파보려고 취중에라도 눈치를 여살피고 있는데, 덕쇠는 취하기도 했고 또 참을 수 없이 좋기도 해서 자랑을 한다는 것이 실토정 이 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지 아니했어도 사흘이 못 가서 소문이 좍 돌기는 돌 것이지만.


    9


    “그건 다 무엇이냐?”


    덕쇠가 장터에서 사가지고 온 것을 한아름 안고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 고 그 어머니가 마땅찮아서 말소리가 거칠다.


    그는 돈 백 원을---돈 백 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그놈을 덕쇠가 받아가지고 오면 우선 그놈을 가져볼 것을 즐겁게 기다렸다.


    물론 그 돈 백 원을 가지고 장사도 하고 쓰기도 할 궁리를 몇십번이고 이 리저리 마련해 보았다. 그러나 돈이 원체 많기 때문에 벅차서 어떻게 하겠 다는 묘책은 나서지 아니했다.


    그래 무엇 한가지---가령 소장수를 할까 하고 그것을 이리저리 궁리 하다 가는 생각이 모자라 끝에 가서 어물어물해버리고는 생각은 어느 겨를에 백 원 그놈을 몽창 손에 쥐고 있을 재미에 골몰해지고.


    그러다가 또 논을 시볼 궁리를 하다가는 어느결에 그놈 백 원을 손에 몽창 쥐고 앉았을 재미에 골몰하고. 그러는족족 덕쇠가 하마 아니 오나 아니 오 나 신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렁저렁 마침내 올 때가 겨우니까, 혹시 일이 틀어졌나, 또 일은 잘 되었어도 이놈이 그 돈을 가지고 어디 노 름방으로 가서 다 잃어버리지나 아니하나.


    생각이 이쯤 미치매 그는 애가 쓰이고 좀이 쑤시어 안절부절했었다.


    그러던 차에 덕쇠가 오고, 오되 혼자 오니까 일이 잘되었나 보다고 반가왔 지만 그놈 백 원을 몽창 가져다 주지 아니하고 제가 먼저 손을 댄 것이 괘 씸하고 노여웠던 것이다.


    그런데 또 보니까 덕쇠가 술기운이 있는지라 더욱 화가 치받쳐올랐다.


    “어 술 처먹었구나? 오사육시헐 놈!” 덕쇠는 날이 차서 술이 많이 깨기도 했지만, 또 어머니가 성가시게 트집을 잡을 것을 알고 조심한다고 한 것이 그대로 들키고 말았다.


    “내 돈 주구 안 사먹었어라우…… 춘삼이가 사주어서 먹었지.” 덕쇠는 입을 뛰하고 두덜거린다.


    “춘삼이구 급살이구 이놈아, 돈을 받었거든 거냥 나를 갖다 주지 왜 늬가 먼점 쓰구 그리어?”


    “쓰고 어쩌간듸라우.”


    덕쇠는 짐짓 났던 성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써?”


    “쓸 만허닝개 쓰구 쓸듸 있으닝게 썼지라우…… 다 양식 팔구 옷감 바꾸 구 그맀지 머, 동전 한푼이라두 못쓸 듸다가 썼으면 아녈말루 개자식이 요.”


    술은 춘삼이가 사주었다니 못 미더우나 할 수 없고, 다른 것은 보아하니 제 말대로 양식이며 옷감 같은 당장 급한 것이라 더 나무랄 말이 없다.


    하기야 쓰기를 천하 없는 데 썼더라도 그놈 백 원을 그대로 고스란히 갖다 주지 아니한 것이 열이 나서 그렇게 야단야단한 것이지만, 그러니 인제는 아무리 더 욕을 하고 옥신각신해도 소용이 없고 나머지나 받아 쥐는 수밖에 없다고 그는 할 수 없이 속을 느꾸었다.


    “다 늬가 잘 히였다! 오사헐 놈!…… 그리서 을매나 썼단 말이냐?” “한 십 원 썼우.”


    “머?…… 아 저런 썩어 죽을 놈 보아!” 덕쇠어머니는 눅이려던 부아가 도로 치밀어올랐다.


    십 원이라니 쉬흔 냥 이난가. 한꺼번에 쉬흔 냥을 다 쓰다니 기가 막혀 말 이 나오지를 아니한다. 더구나 무엇인지는 몰라도 십 원을 다 썼다는 말하 고 꿍쳐가지고 온 것을 보면 생판 거짓말 같다.


    “너 무엇에다 쉬흔 냥을 다 썼냐?” 혹시 노름 밑천을 하려고 따로 떼어두고 그러는가 하는 의심까지 든 것이 다.


    “허 참! 자 보시오. 쌀이 구승(舊升)한 말에 이 원 사십 전이지라우?” “무엇하러 한 말두룩 팔어!…… 또 그러구!” “고무신이 두커리(두 켤레)에 일 원 이십 전 허닝개, 응 가만 있자 그놈 이 을매(얼마)냐…… 응……”


    “누가 너더러 고무신 사다 달라더냐!…… 그러구 또?” “광목허구 소캐(솜)가 오 원 각수지라우.” 덕쇠는 순갑이와 술 먹은 놈 칠십 전을 여기다가 쳐서 더 불렀다.


    “광목은 무엇헐라구 그렇게 많이 바꾸어 왔냐? 늬미(네 어미) 급살맞어 죽었다구 초상 치룰라구 그맀냐?…… 육시헐 놈!” “체, 참 동지섣달에 맞붙이(겹옷) 입구 있으면서 그러시유……” “그러구 또?”


    “그러구 그 남저지는 고기, 담배 그런 것이지라우 머……” “듣기 싫여!”


    덕쇠 어머니는 한동안 앉아서 까막까막 따지어보았다. 대강 아귀가 맞는 것 같아 노름 밑천을 젖혀놓았나 하는 의심은 풀리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다가 앉으면서


    “남은 돈 다 이리 내라 한푼두 냄지지 말구……” 하고 서슬 있게 다궂하다.


    “왜라우”


    “왜가 무슨 와여? 이리 내놓아.”


    “글씨 무엇헐라구 그리라우?”


    “무엇허기는 무얼 무엇히여!…… 이리 내놓아…… 남은 놈 다 내놓아.” “가만두시오. 도둑놈을 만나더래두 내가 갖구 있어야지.” “다 늙어빠진 노인네가 갖구 있다가 큰일나게!” “걱정을 말어…… 잔소리 말구 이리 내여.” “못히여라.”


    덕쇠어머니의 요량은 아주 홱 틀어져버린다. 그는 그만 눈에서 불이 나올 것 같다.


    “아 이 육시헐 놈아! 무엇이 어찌여?” “돈 못 내놓는다구 그맀어라우.”


    덕쇠도 어머니가 그렇게 돈을 내놓으라고 할 줄은 몰랐다. 또 돈을 빼앗아 가려는 속도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못 내놓아?”


    덕쇠어머니는 덤벼든다.


    “글씨 왜 이러는그라우!”


    “무얼 왜 이리여?…… 너 이놈 그 돈 갖구 나가서 술 받어처먹구 노름허 구 허평대평 다 써버릴라구 그러지?…… 안될 말이다. 다 이리 내라.” “글씨 걱정 말어라우. 인제는 동전 한푼두 더 안 쓰구 두었다가 내일이라 두 장사 시작히여라우…… 제발 가만두구 구경이나 히여기라우.” “흥 네놈이 이놈아 무척 안 쓰고 잘 애껴 두었다가 장사를 허겄다!…… 내놓아라 세상없어두 안될 말이다.” “나두 세상없어두 못 내놓겄우.”


    “안 내놀 틔여?”


    덕쇠어머니는 버쩍 달려들어 아들의 멱살에 매어달린다.


    “아, 왜 이러는그라우? 무엇 때미( 때문에) 이리라우?” “이놈아 그게 어떤 돈이간듸 네가 차지허구 안 내놀라구 그러냐? 이 찢어 죽일 놈…… 이 갈어먹을 놈.”


    있으나마나한 머리를 풀어 헤트리고 몸부림을 치면서 매어달린다. 숨이차 서 색색한다.


    “이놈아, 그게 어떤 돈이간듸 늬가 시방 이러냐 응, 이놈아 육시오사헐 놈아.”


    “어떤 돈은 무엇이 어떤 돈이라우? 머 내가 어듸 가서 남의 중방 밑구녁 을 뚫구(도적질해서)가져온 돈이간디라우? 버젓허게 내 돈이라우 내돈 ……”


    “이놈아, 그게 네 돈이여? 이놈아.” “내 돈 아니구 뉘 돈이간듸? 내 지집(계집)때미 생긴 돈이닝게 내 돈이 지. 어떤 개아들 놈의 돈이라우?”


    “이놈아 그게 네 지집이면 누가 얻어다 누가 키어서(길러서)준 지집이냐 응 이놈아.”


    “아무가 얻어주었든지 내 지집이구 내 돈이라우.” “이놈이! 이놈아 그리두 늬가 안 내놓구 이럴 틔냐” 덕쇠어머니는 악이 바짝 오른 입으로 아들의 팔을 물고 늘어졌다.


    덕쇠는 어머니의 머리째 몸뚱이째 얼러 와락 떠밀어버린다. 이빨도 없고 기운도 없어 문 것과 멱살 잡았던 것은 힘없이 놓쳐지고 방바닥에 나동그라 진다.


    그가 다시 일어나 덤비려고 할 때에 덕쇠는 벌써 거적문을 젖히고 마당으 로 뛰어나갔다. 덕쇠어머니는 비틀거리고 따라나와, 이놈아, 이 육시오사할 놈아 하고 울음 섞어 외치며, 그때는 이미 사립문 밖으로 두덜거리며 달아 나는 덕쇠의 뒤를 쫓는다.


    젊은 장정이 뛰어 달아나는 것을 늙어빠진 노파가 아무리 악이 받쳤기로서 니 따라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쫓다가 지쳐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며 욕을 한다.


    덕쇠는 힐끔힐끔 돌아보며 잔등 너머로 사라져버린다.


    동리 사람들은 노상 하는 싸움이라 나와 보지도 아니하고 노파의 자지러진 울음소리만 바람찬 벌판에서 외지게 떨린다.


    10


    덕쇠는 회패(맨끝 셋째)로 패를 뽑아드니 일자(一字)다.


    바른손편으로 앉은 애기패가 둘이 다 제 패를 보이면서 덕쇠패를 굽어본 다. 패 선(先)패가 장자(十字[십자])요 둘째가 새자(四字[사자])다.


    덕쇠는 일자를 좋아하는데다가 다른 애기패와 맞는 자가 없으니까 더할 나 위가 없다. 그는 십 원 한 장을 내어놓고 방바닥 얼러 딱 치면서 “자, 십 원.”


    한다.


    십 원은 처음이다. 뒷전에서는 무어라고 수군수군하고 등 뒤에 바짝 붙어 앉은 순갑이는


    “잘했네, 잘했어.”


    하고 소곤거린다.


    덕쇠는 잔뜩 긴장이 되었으나 패잡아 윤가는 제 패를 쓱 뽑아보고 나서 투 전 뒤꽁무니에 물려놓고 십원짜리 한 장을 아무렇게나 덕쇠한테 쳐준다.


    선패는 삼십 전, 둘째패는 오 전을 각기 친다.


    패잡이는 돈을 다 쳐주고 나서 선패한테 투전목을 내어민다.


    선패는 육자를 뽑아서 대고 둘째는 일자가 나오니까 뽑아 든 두 장을 만지 작만지작하면서 댈까 들어갈까 망설인다.


    돈이라야 오 전 아니면 십 전을 태면서 번번이 댈 데 들어가고 들어갈 데 대고 해서 덕쇠를 낭패를 보이는 친구다. 덕쇠는 돈을 잃고 심정이 난판이 라 눈을 흘기면서


    “대여! 그까짓 오전, 내가 물어주기라두 헐 티닝개.” 하고 버럭 지천을 한다.


    이 말에 심정이 상했던지 둘째패는 덕쇠를 마주 흘겨보면서 “무슨 상관이여? 내 돈 갖구 내 맘대루 노름허는디……” 하고 와락 한 장을 더 뽑아다가 죈다.


    덕쇠는 자기 패 이상으로 가슴을 죄면서 들여다보니까 아니나다를까 몽창 한 대가리가 무드름하게 비어지는데 갈데없는 팔자(八字)다.


    덕쇠는 그만 그를 쳐죽이고 싶게 화증이 났다. 그놈을 그대로 대기만 했으 면 덕쇠가 그 팔자를 뽑아가지고 알팔(一八[일팔]) 뚝 떨어진 가보를 잡을 판이었었다. 덕쇠는 속으로


    “이놈의 자식 돈만 영영 잃어보아라. 너를 뜯어 죽일 테니.” 라고 벼르면서 당장 치미는 화를 꾹 참고 물주가 대주는 패를 뽑았다.


    자기 패를 위에 덮어가지고 투전장이 찢어지라고 뽀도독 잡아 훑으니까 뾰 족한 대가리가 비어져 나오는데 칠자도 같고 장자도 같다.


    칠자라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덕쇠는 가슴을 지금 죄는 투전 죄듯 죄면서 쭉 훑어내렸다. 칠자다.


    그는 응당 여덟끗이니까 댈 것이로되 물주를 견제하느라고 입맛을 다시면 서 망설인다.


    순갑이는 그 눈치를 알고


    “들어가 들어가.”


    하면서 제가 한 장 더 뽑을 듯이 손을 들이민다.


    덕쇠는 들어가는 체하고 손을 뻗었다가 “에라 죽으면 그냥 죽으라지.”


    하고 딱 복패를 시켜버린다.


    물주는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고 덕쇠의 낯꽃만 뚫어지게 치어다보고 있다 가 제 패 첫장을 쭉 뽑아들고 버쩍 쳐들어 죈다.


    물주패는 넌지시 삼자였고 첫장은 일자다. 네끗이다.


    물주는 벌써 덕쇠가 끗수를 높이 잡은 줄을 안다. 그래 그는 서슴지 아니 하고 들어가 뽑아다가 두 장 사이에 딱 끼워 쥐고는 애기패를 휙 둘러보며 “자 - ”


    한다. 다들 패를 까란 말이다.


    선패가 장륙에 여섯끗, 말성꾼이 둘째가 진주(다섯끗)에서 두끗 줄어 세끗 이다. 덕쇠는 패를 젖혀 방바닥을 탁 치면서 “가보거든 갖다 먹소.”


    한다.


    이번이야말로 먹었느니라고 느긋해서 한번 그래보는 것이다.


    물주는 애기패들의 끗수를 휙 둘러보고 또 말성꾼이 둘째패와 덕쇠패를 한 참 치어다보더니 자기 패를 죄기 시작한다.


    빠드득 죄는 앞뒤 두 장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것은 외수없이 오이자(五字


    [오자])다. 그는 벼락같이 방바닥을 치면서 “일삼외(一三五[일삼오]) 관솔공이…… 꿈쩍 마라.” 소리를 치고


    십원짜리 두 장을 곁들여놓은 덕쇠해부터 갈퀴로 긁듯이 긁어간다.


    애기패들이나 뒷전에서는 하도 희한해서 잠잠하고 있고 덕쇠는 기가 막혀 서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앉아 있다.


    한참 있다가 순갑이가 앞으로 몸뚱이를 비집고 나와 “원 그렇게 물주 끗수가 잘 나온단 말인가! 가만 있자……” 하고 물주패와 덕쇠패와 말성꾼이 둘째패를 뒤적뒤적하더니 “그러면 그렇자! 자, 보소 응. 이 사람이 그냥 댔으면 그놈으루 덕쇠가 갑오를 잡지…… 그러구 물주는 삼자패닝개루 칠자가 밀려내려가면 꼭 매잖 겄는가? 그러구 나서 그 담이 이놈 일자닝개루 영락없이 따라지를 잡구 나 자뻐지구 애기패는 다 먹네 다 먹어.” 하고 결이 버쩍 나서 설명을 한다.


    사방에서 미상불 그렇다고 수군거리며 말성꾼이 둘째에게로 눈이 간다.


    덕쇠는 어디가 부러지게 한번 윽박질러 주고도 싶으나 그럴 수도 없고, 그 러면 노름을 그만하고 일어서자니 돈을 육십 원이나 넘겨 잃었으니 안될 말 이다.


    덕쇠는 지금 나흘째 투전을 죄고 있고 돈은 육십 원이 더 달아났다.


    첫날 등 너머 동리 쇠물방에 가 누웠느라니까 순갑이 입에서 소문이 퍼져 가지고 노름꾼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날은 일전 이전 아니면 다직해야 오전 십전을 치고 했고, 또 얼 마 아니해서 덕쇠어머니가 쫓아와서 별 득실이 없이 노름방은 깨어졌다. 덕 쇠는 몇 사람과 같이 달아났다.


    달아나서 다시 노름을 시작한 것이 지금 이틀 밤과 사흘 낮을 붙박혀있는 정거장 근처의 이 집이다.


    그는 처음에는 노름을 아니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두 번이나 싸우 고 난 판에 화도 났고, 또 심심풀이로 일전 이전 내긴데야 어떠냐고 우축좌 축하는데, 본시 투전이라면 좋아하는 성미겄다 슬그머니 들이덤볐었다.


    오 원을 잃으면 일 원쯤 따고 다시 십 원을 잃고 그러다가는 몇원 본전을 추어놓으면 그놈이 한 십 원씩 물고 나가고, 이렇게 해서 쫄끔쫄끔 나간 것 이 삼십 원이 넘어 나갔다.


    그러고 나니 그때부터는 재미로 하는 노름이 아니라 잃은 본전을 찾을 생 각으로 다뿍 등이 달아가지고 노름을 하게 되었고, 그런 때문에 하면할수록 자꾸만 실수를 하고, 그래 본전을 건지기는커녕 다시 삼십 원을 더 잃어 도 합 육십여 원이 달아난 것이다.


    차례가 돌아와 애를 잡느라고 투전목을 불끈 쥐고 내어미는 덕쇠는 얼뜻 보기만 해도 눈이 붉었다.


    덕쇠의 흥분한 것을 보고 말성꾼이는 슬며시 물러나고 다른 사람이 들어앉 았다.


    사실 그가 좀더 까닐까닐 말썽을 부렸으면 돈은 잃었겠다, 그래 거진 환장 이 된 덕쇠한테 단단히 두들겨맞기라도 했을 것이다.


    투전목을 내어 대니까 마침 노름방을 붙인 그 집 주인이 술과 국밥을 들여 온다.


    덕쇠는 시장한 줄도 모르고 그래 먹을 생각도 나지 아니했다. 그는 정신이 오리사리해서 지금 며칠째 그러고 있는지 그것도 모르고 때가 아침인지 저 녁인지도 모른다.


    다만 앞에 놓인 십원짜리 두 장에 잔돈 몇 원과 투전목과 또 돈을 많이 따 가지고 있는 아까 그 애잡이의 앞에 놓인 돈만이 보일 따름이다. 그는 저게 모두 내 돈인데 저렇게 가서 있거니 생각하면 더욱 심정이 상하고 그래 어 서 이놈으로 저놈을 도로 다 찾아와야 할 텐데, 하니까 마음이 초조한 가운 데 허욕까지 더럭더럭 일어났다.


    순갑이는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사발을 들고 와서 덕쇠한테 권한다.


    그도 덕쇠가 돈을 잃어 개평을 못 얻게 되니까 속이 침울했다.


    “이걸루 요기나 좀 허소…… 그러구 맘을 그렇게 조급허게 먹지 말구.” “싫어…… 자네나 먹소.”


    “그러지 말구 좀 먹어 이 사람아!…… 그러구 이번 내가 대신 좀 잡어보 까?”


    “일없어 다 일없어.”


    곧 죽어도 돈을 잃고 나서 남한테 대신 내맡기지는 아니하려 드는 것이 노 름꾼의 고집이다.


    11


    이쁜이는 꼭 한가지만 빼놓고는 모든 것이 남편 덕쇠가 말하던 대로여서 기쁘고 재미가 났다.


    옷이 모두 비단옷이다. 비단옷을 입어보지 못했으니까 인조견이 비단이다.


    머리에는 아직 이와 서캐가 있기는 하지만 기름을 발라 싹 빗고 쪽을 찌어 금비녀를 꽂았다. 합성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그것이 금비녀다.


    얼굴에 분을 바른다.


    주인이 사다 준 경대 앞에 앉아 거기 놓인 갖은 화장품을 써가면서 단장을 하고 거울 속을 굽어다보면 미상불 자기가 보아도 이쁜이라는 이름대로 이 뻐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쁜이라는 이름이 아니고 간드러지게 산옥이다.


    밥은 해서 준다. 반찬도 이만저만찮다.


    빨래라고 하는 것은 구경도 할 수가 없다. 손에 물을 잠그기는 세술할 때 뿐이다.


    낮으로 손님이 없을 때에는 명옥이며 또 하나 있는 다른 색시한테 장구를 들여놓고 노래를 배운다.


    잠은 딴 방에서 역시 비단 이부자리를 덮고 혼자 거처한다.


    제일 걱정되던 술 따르기는 막상 당해 보니까 그다지 어렵지 아니했다.


    처음 주전자를 들고 손님 앞에 나앉으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 손이 떨 리어 몇 번 흘렸지만 아무도 그런다고 나무라지는 아니했다.


    손이 튼 것은 손님들이 보고 춘삼이네가 일을 시켜서 그런가 보다고 도리 어 가엾이 여겨 주었다.


    손님들이 억지로 먹이는 술을 한잔 두잔 받아먹으니까 처음에는 속이 어떨 떨하더니 그것도 며칠 지나니까 되레 먹음직했다.


    춘삼이 - 여기서는 아자씨라고 부른다 - 와 춘삼이댁이 무엇 쓸데 있는 것 이나 옷이나 담배 같은 것 사겠으면 말을 하라고 일러두고, 그래 말만 하면 선뜻 시중을 해준다.


    그럴 때마다 사다가 주고는 조그마한 책에다가 도장을 누르게 한다.


    도장도 아자씨 춘삼이가 새겨준 것이다.


    담배도 먹는 시늉을 한다. 처음은 손님들이 담배를 주면 못 먹는다고 했지 만, 그러면서 한 모금 두 모금 빨아 버릇하니까 그대로 지내면 배워질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꿈에도 볼까 무서웠지만 남편 덕쇠 소식은 궁금했다. 담배, 술 별다른 음식을 대할 때마다 생각이 났다.


    아자씨 춘삼이더러 물으면 자기도 만나지 못했노라고 한다.


    그러면 그 돈 백 원을 가지고 어디 가서 장사를 할 것이겠지 하고 안심을 했다.


    범사가 다 이렇게 편안하고 쉽고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재미가 났다.


    그러나 꼭 한 가지 괴로운 것이 있다. 초저녁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밤 늦게까지 어느 때는 새벽까지 손님을 대하느라면 눈두덩이 내려앉아 견 딜 수가 없다.


    그러고 나서 자기 방에 돌아가 겨우 눈을 붙이면 촌에서 이십 년이나든 버 릇이라 첫새벽에 잠이 깬다.


    깨어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밤중으로 알고 쿨쿨 잔다.


    오때가 되어야 겨우 다들 일어난다. 이쁜이는 그동안 잠은 아니 오고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다.


    그렁저렁 점심때 조반을 먹고 번둥번둥하다가 저녁때 단장을 하고 나면 벌 써 졸린다.


    사뭇 졸려서 저녁밥 숟갈을 들고 앉아 졸기도 한다. 손님 술상 앞에서 졸 다가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졸리운 것이 그렇게 괴롭기는 하지만, 그러나 생각하면 그것은 며칠 전 까지 집에서 굶고 욕먹고 매맞고 하던 고생보다는 약과다.


    이렇게 해서 이레가 지났다.


    오늘 저녁도 김덕대가 왔다.


    벌써 사흘짼데 그 새는 친구들과 같이 오더니 오늘 저녁에는 느직해서 술 이 얼큰해 가지고 혼자 왔다.


    수염이 검싯검싯 얼굴이 웬만한 사람의 키만큼이나 길고 눈이 왕방울 같아 금점판의 덕대로는 깎아 맞추었다.


    이쁜이는 다른 손님 방에 있다가 불리어갔다.


    “산옥이 노래 배운다지? 어데 한번 불러보아.” 김덕대는 서너 순배째 들어온 술상을 윗목으로 밀어놓고 이쁜이 무릎을 베 고 누워 이야기를 하던 끝에 노래를 청한다.


    “노래헐 줄 몰라유.”


    이쁜이는 터진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부끄러워한다.


    김덕대는 그 손을 잡아다가 거슬거슬 어루만진다.


    “모르기는 왜 몰라! 그새 배운 놈 하나 해보라구.” “그리두 몰라라우…… 나 인제 잘 배갖구 헐께라우.” “허! 그럴라다가는 내 아들놈이 산옥이 노래 들으러 와야 허게! 허허허 허.”


    이쁜이도 따라 웃었다.


    될 수 있으면 손님한테 술을 많이 팔리도록 해야 한다고 아자씨 춘삼이한 테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쁜이는 밀어놓은 술상을 잡아당겼다.


    김덕대는 그것을 못하게 하고 이쁜이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응, 이거 봐 산옥이.”


    “얘?”


    “나 산옥헌테 반했어.”


    “반헌 게 무어래유?”


    이쁜이는 부끄러워서 말로만 그런다. 김덕대는 히죽이 웃으며 어린 애기 어르듯 한다.


    “반헌 거 몰라? 내 가르켜 주까?”


    “얘.”


    ………………


    이쁜이는 까막까막 혼자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해도 못쓸 것 같다.


    남의 사내를 똑바로 치어다보기만 해도 시어머니가 마구 야단을 하고 남편 더러 일러서 매를 맞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으로 오던 그날 아침에 두부장수 사건만 하더라도 그게 다 그런 속이 다. 그런 걸 괜히 함부로 그랬다가는 시어머니나 남편이 알면 무슨 거조가 날지 모른다.


    그러나 손님은 자꾸만 조르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이쁜이는 김덕대가 흝으려 잡는 것을 잠깐 나갔다가 꼭 온다고 기다리라고 해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앞마당에서 아자씨 춘삼이더러 다녀온다고 말 을 할까말까 망설이는데 마침 춘삼이가 안방에서 창경으로 내어다보고 있다 가 당황하게 뛰어나온다.


    “왜? 왜 그러구 섰어? 김주사 발써 가섰나?” 춘삼이는 김덕대와는 미리 기맥을 통했던 터라 속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다.


    “아니유 저기 지신디…… 나 저 우리 집에 잠깐 갔다 와유.” “자네 집에? 이 밤중에 자네 집에는 왜 ? 응?” 춘삼이는 와락 기색이 달라가지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짐작에 김덕대가 성 가시게 구니까 달아날 양으로 그러는 줄 안 것이다.


    “가서 시어머니랑 또 또……더러 말 좀 물어보구 올라구 그리라우.”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나서 상의를 해본다는 말인데, 춘삼이는 그 말을 알 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시어머니랑 또 또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시어머니랑 저 우리 바깥……” “응 덕쇠?”


    “얘.”


    “그래서?”


    “가서 무엇 말 좀 물어보고 와라우.” “말을 물어보다니 갑작히 무리마지가 났나? 무슨 말을 이 밤중에 물어보 러 간다는 거야? 응?”


    “저 저 김주사가…… 자꾸 저 저……” 춘삼이는 허허 웃었다. 김덕대가 조르니까 그것을 시어머니와 남편한테 그 러라느냐 말라느냐 물어보러 가려고 그렇게 나선 속을 비로소 알고기가 막 혀 웃음이 절로 터져나온 것이다.


    “물어보나마나 괜찮으니 어서 들어가 봐.” “그리두……”


    “괜찮다면 괜찮은 줄 알어.”


    “그리두 후제 알면 야단허구 때리구 그럴 틴디……” 춘삼이는 덕쇠한테 다 승낙을 맡았으니 아무 염려 말라고 하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그럼 전에두 더러…… 응…… 그랬나?” 하고 물어본다.


    “아니라우.”


    “그럼 욕허구 때리는 줄은 어떻게 알어?” “그리두 그리라우…… 물 질러(물 길러)가다가 남 치어다부았다구 욕허 구, 두부장수 불러서 두부 한 모 얼마냐구 물어부았다구 마구 때리구 그맀 어라우.”


    춘삼이는 그런 것까지도 덕쇠한테 승낙을 받았고 겸해서 덕쇠 말이 만일 이쁜이가 말을 아니 듣든지 시키는 대로 아니하든지 하거든 때려라도 주라 는 부탁을 했다고, 그러니 말만 잘 들으면야 때리다니, 그보다 되레더 좋은 일이 많을 테고 하니까 아무 염려 말라고 반은 엄포를 해서 반은 달래서 돌 려세웠다.


    이쁜이는 돌아서다가


    “그럼 나는 몰라라우.”


    하고 해뜩 웃으면서 김덕대가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12


    덕쇠가 마지막 돈이 남은 대로 오 원 오십 전을 톨톨 털어 태워놓고 패를


    죄다가 물주는 일곱끗인데 일새(一 四[일사])에 장(十[십])으로 진주(五


    [오])를 잡고 나동그라진 것은 시꺼먼 대살문이 휘엿이 밝아오는 새벽녘이 다.


    덕쇠는 순갑이며 다른 사람들을 보기에도 열적어서 두 팔을 뒤로 짚고 뻔 하니 앉아 있다. 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성을 내야 할지 제속을 제 가 어떻게 가질지를 몰라 괜히 코를 킁킁 입을 씰룩씰룩한다.


    그의 눈은 연일 잠을 못 자서 벌겋게 충혈이 되고 눈곱이 다닥다닥 붙었 다. 비죽비죽 비어진 코털 끝에는 석유불의 그으름이 새까맣게 고드름 달리 듯 했다.


    투전판은 덕쇠가 밑천이 떨어지니까 그냥 깨져버린다. 뒷전에서는 두어 사 람이나는 아무렇게나 쓰러져 쿨쿨 잠을 자고 있고 서넛이나는 제가끔 돈 딴 사람한테 개평을 달라고 손을 들이민다.


    돈 딴 사람은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대로 십원짜리며 일원짜리며 사슬 돈이 푹푹 집혀 나온다. 덕쇠는 어쩌면 돈 딴 사람이 지금 구겨진 지전을 다 펴서 새로 저렇게 세어가지고


    “옛다, 장난으로 그랬으니 네 돈을랑 도루 가져가거라.” 하면서 착 내줄 성도 싶었다. 그래서 그는 돈 딴 사람의 낯꽃을 다시금 본 다.


    돈 딴 사람은 개평꾼들이 백 원을 땄으리 구십 원을 땄으리 하면서 자꾸만 손을 들이미니까 짜장 뚜해가지고


    “돈이래야 제우(겨우) 육십 원 땄구만 그러네!” 하면서 큰돈을 한 뭉치 집어넣고 일원짜리를 한 장씩 모조리 나누어준다.


    덕쇠는 돈을 도로 줄까 바라던 것이 허사가 되니까, 그의 하는 소리가 밉 광스러워 골이 버럭 나고 골이 나는 깐으로는 당장 달려들어 그자를 실컷 두들겨주고 싶었다. 두들겨주고 그러고 그 김에 돈도 도로 빼앗고 싶었다.


    순갑이만 빼놓고 개평 얻은 사람들은 덕쇠야 어찌 있건 좋아서 모두들 입 이 헤벌어진다. 돈 딴 사람은 마지막 일원짜리 석 장을 덕쇠에게로 밀어보 내면서 섭섭한데 해장이나 하라고 한다. 덕쇠는 본 체도 아니하고 벌떡 일 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훤하니 밝은 방문 밖으로 나서니 덕쇠는 꿈을 꾸다가 깬 것처럼 정신이 번 쩍 들었다. 그는 방문 옆으로 있는 오줌독에다가 담뿍 잠갔던 소변을 철철 쏟으면서 손바닥으로 그놈을 받아다가 눈을 씻는다.


    훤하니 밝은 바깔에 나서서 정신이 들어갈수록 지나간 일이 아득하니 꿈결 같았다. 그는 소변을 다 누고 나서 우두커니 섰다가 무심결에 제저고리 안 깃의 호주머니를 만져본다. 돈은 역시 없다. 꿈결같이 허망해도 돈 구십 원 은 홀라당 날아가고 없다.


    가슴을 콱콱 찧고 싶게 후회가 난다. 그는 우선 연 사흘밤 투전을 하면서 잡았던 패가 선연히 눈에 밟혔다. 새자(四[사]) 그놈을 지르지 않고 그대로 잡었더라면 오이(五[오])가 나왔으니까 새외(四五[사오]) 가보로 이십 원씩 맞태었던 놈을 먹었을 텐데 그놈 새자패가 싫어서 질렀더니 오륙(五六)에 새자가 또 나와서 죽던 것…… 이런 일이 하나씩하나씩 생각이 나고 그런족


    족 발이 저절로 한번씩 굴러진다.


    그렇게 잘만 했더라면 지금 그 돈 구십 원이 그냥 들어 있을 텐데 하고 또 호주머니를 만져본다. 섭섭하게도 호주머니 속에서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아 니한다. 그 대신 시퍼런 십원짜리 아홉 장이 눈에 선연히 밟힌다.


    그저 자그마치 한 오륙 원만 땄었을 때 벌떡 일어섰어도…… 아니 한 이십 원만 땄었을 때에 벌떡 일어섰어도…… 적이나 해서 한 사오십 원만 땄었을 때에 벌떡 일어섰어도…… 이렇게도 후회났다. 그러나 후회를 하려들면 방 금 미칠 것 같다. 그래서 슬며시 마음을 돌려본다.


    돈 백 원쯤 생기기도 뜻밖에 생겼거니와 잃어버리기도 꿈속에서 잃어버렸 으니 그저 허망한 꿈으로 돌려버리고 허허 한바탕 웃으면 그만이지…… 이 렇게 마음을 돌리면 적이 속이 편하려고 하나, 뒤미처 이 뒷일을 장차 어떻 게 한다? 어머니가 그렇게 극성을 하면서 달랄 때에 선뜻 내맡겼더라면 도 무지 이런 일 저런 일이 없을 텐데…… 인제는 어머니를 볼낯도 없거니와 만나는 날이면 둘 중에 하나가 생주검을 하고 말 것……또 이쁜이를 무얼로 찾아온다?……


    여기에는 대답이 꼭 막힌다. 약간 허망한 일이라고 단념을 하고 허허하면 서 한바탕 웃어버리고 할 그런 따위가 아니다. 큰일났다. 그냥 모른체하고 씻어넘길 수는 없고 큰일이라도 이만저만찮은 큰일이다.


    “에라! 빌어먹을 것!”


    덕쇠는 혼잣말로 이렇게 내씹으면서 휘휘 둘려본다. 마당 건너로 헛간앞에 길쭉한 새끼가 한 도막 허연 된서리에 덮인 채 뻗히고 있다. 덕쇠는 성큼성 큼 걸어가서 새끼를 집어들고 아직 잠가둔 사립문을 열고 울밖으로 나섰다.


    겨울이라도 촌의 새벽은 이르다. 오줌지게를 진 사람이 뒤우뚱뒤우뚱 논 샛길로 해서 보리밭으로 나가고 있다. 개동망태를 어깨어 걸멘 사람이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울타리 밑으로 부지런히 기어다니면서 개똥을 줍는다.


    텃밭 가에 높다랗게 솟은 포플라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한 마리 위태롭게 앉아 까악까악 짖다가는 들로 향해서 날아간다.


    사립문도 없는 오두막집에서 애기만한 각시가 다홍 저고리에 물동이를 머 리에 이고 나오더니 동리 앞 우물로 나간다. 강아지가 찰래찰래 뒤를 따라 간다. 덕쇠는 각시를 보니 이쁜이 생각이 불현 듯이 났다. 지금쯤 춘삼이 말대로 명옥이보다도 훨씬. 이뻐졌을 이쁜이를 생각하면 부질없이 그를 갖 다가 전당잡힌 것이 애초에 잘못이라고 그 일까지 후회가 났다.


    그는 가직이 들판 건너로 건너다보이는 정거장 쪽을 연신 돌려다보면서 동 리 뒷산의 솔숲으로 들어섰다.


    그는 우선 어떤가 하고 새끼를 목에 감아 두 손으로 양편에서 지그시졸라 본다. 처음에는 목이 좀 거북하더니 이어 귓속에서 윙윙 소리가 난다. 눈이 나오려고 하고 콧속이 뻑뻑해진다. 그래도 조금 더 조르니까 귀가 터질 것 같고 눈에서 별 같은 것이 보이면서 왈칵 기침이 나온다. 조금만 더 졸라본 다. 관자놀이가 들썩거리고 얼굴이 터지려고 하고, 금방 죽는 것 같다. 그 는 겁결에 얼핏 손을 느꾸고는 숨을 배 밑까지 깊이 들이마셨다가 다시 그 놈을 내뿜는다. 그것이 어떻게나 시원한지 그런 맛은 생전 처음인 성싶게 좋고 안심이 되었다.


    “괜히 아프게스리!”


    덕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방금 새끼에 스쳐 얼얼한 모가지를 손으로 만진다.


    “그렇게 허면 죽어지나? 나뭇가지에다가 매달어야지!” 그는 저더러 이런 소리를 하면서 소나무들을 휘휘 둘러본다. 그러나 솔들 이 모두 길 반 아니면 두 길밖에 아니 되는 애송이라 목을 매고 늘어질 만 한 가지가 없다.


    덕쇠는 그것이 다행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두루 돌아다보다가 한복판 께서 큼직한 참나무 하나를 찾아내었다. 길 반이나 높은 데 가서 실직한 가 지 하나가 뻗어나온 놈이 목을 매기는 아주 마침감이다.


    우선 나무를 타고 올라가 뻗어나온 가지에다가 새끼를 한끝 든든히 비끄러 매고 한끝은 올가미를 만들어 목에 걸고 축 처지면 될 판이다. 그는 참나무 를 올려다보면서 생각해본다.


    ‘축 처지면 아까 해보듯이 귀가 울고 눈이 쏟아지려고 하고 코가 맹맹하 고 얼굴이 터지려고 하고 숨이 막혀서 대롱대롱 발버둥을 치고 혀를 기다랗 게 빼물고……’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그는 저도 모르게 “이그!”


    소리를 내면서 상을 찌푸리고 몸서리를 친다.


    마침 윙 소리가 나면서 손 구부렁이 같은 왕벌 한 마리가 뜽 날아들어 우 툴두툴한 참나무 우듬지에 앉는다. 이어 구멍에서 꼭 같은 놈 한 마리가 날 아나간다.


    “벌 때미(때문에)못 올라가겄구만!” 덕쇠는 혼자 두런거리면서 다른 나무를 찾는다. 그러나 만만한 놈은 그리 없고, 있어도 모두 흠이 있다.


    “제미헐 것! 죽을래두 죽을 수가 있어야지!” 덕쇠는 마침내 골을 내어가지고 산에서 내려왔다. 산 밑에서 헐떡거리며 찾아다니는 순갑이를 만났다.


    “야 이 잡것아 ! 너 그럴 종(줄) 알었다 !” 순갑이는 덕쇠를 보기가 무섭게 이런 지천을 하면서 아직도 덕쇠가 손에 들고 있는 새끼토막에다가 눈을 흘긴다. 순갑이는 엊그제 덕쇠가 몸에 돈 백 원을 지녔을 때와 달라 도루 전처럼‘해라’를 하고 욕을 하며 흉허물없 이 한다.


    덕쇠는 히죽이 웃으면서 저도 새끼토막을 내려다본다.


    “그까짓 일루 목을 매달어 죽어 ? 왜 죽을라구 히여 ?” “히히, 그냥 그럴라구 히여 부았지, 이 사람아야 죽을라닝개 못 죽겄 데……”


    “죽구 못 죽구 간에 무엇 때미 죽을라구 히여? 죽으면 죽는 놈만 원통허 지.”


    “그렇지만 하두 일이 허망허구 또……” “허망허구 걱정된다구 죽어 ? 야 이 자식아 그런 개 같은 소리 그만히여 두구 가자, 아까 그놈 삼 원허구 또 내가 개평 얻은 놈 일 원허구, 내가 받 어 두었으닝개루 가서 술이나 실컷 먹자. 이놈으루 술 먹구 늑신취허구 나 서 그 돈 백 원으루 술 다 사먹은 셈만 치면 그만 아니냐?” 덕쇠는 듣고 보니 미상불 그럴 듯했다. 아무튼 사 원어치를 식전 해장부터 둘이서 먹고 나면 취할 것은 취할 것이니, 그러면 돈 백 원으로 술을 다 사 먹은 셈 대고 잊어버리고 그러고 뒷일은…… 그것이 좀 딱하기는 하지만 그 래도 별수가 없는 것……


    이렇게(마음을 돌리지 아니한다고 해도 별수가 없기야 하지만) 덕쇠는 그 런 대로 단념을 하고 순갑이와 같이 전주집으로 가서 돈 사 원을 몽땅 맡겨 놓고 마치 돈 구십 원을 다 물어버린 분풀이나 하는 듯이 술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둘이 다 곯아떨어졌다.


    13


    석양 무렵에 덕쇠는 아직도 자고 있는 순갑이를 잡아 일으켜가지고 춘삼이 네 집을 찾아갔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춘삼이더러 일장 이야기 나한 뒤 에 종차 돈을 벌어서 이쁜이를 도로 물려갈 때까지 좀 더디더라도 그런 줄 이나 알고 그동안 잘 보살펴나 달라는 부탁도 할 겸 또 이쁜이더러도 그런 연유로 말을 일러두기도 하고 그립던 차이니 만나보기도 하고 하려고 그래 찾아간 것인데, 춘삼이는 덕쇠를 보자마자 기색이 퍼르르해 가지고 덕쇠더 러 되레 이쁜이의 종적을 묻는 데는 깡총 뛰게 놀랐다.


    “그러면 분명 그놈허구 배가 맞어서 도망을 갔어 !” 춘삼이는 혼잣말같이 이렇게 두런거리면서 입맛을 다신다.


    “글쎄 이 사람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소리구 무엇이구 간에 오늘 아침에 보니까 자네 각시가 없드란 말 일세! 그래서 나는 혹시 자네한테 잠깐 다니러 갔으려니 허구 시방 돌아오 기만 기대리는 참인데, 자네가 모른다니 기가 맥힐 일이 아닌가? 머 갈데없 이 그놈 김덕댄지 그 도둑놈같이 생긴 놈허구 오늘 새벽에 삼십육계를 놓았 어 ! 분명해 ! 허 그거 참 ! 그러니 나는 이 손해를 어데가서 받나!” “대체 그놈은 어떤 놈이랑가.”


    “낸들 아나? 여기 금점판에 와서 돈냥이나 잡은 놈인가 부데. 그놈이 내 가 보기에두 어쩐지 눈치가 달르더라니!” “어떻게 달러?”


    “덜, 거저 자네 각시가 오든 날 저녁부터 제 볼일 다 치어놓구 밤낮으루 우리 집에 와서 자네 각시만 끼구 자빠졌구……” “그놈이 ?”


    덕쇠는 눈이 뒤집히려고 하면서 춘삼이가 ‘그놈’인 듯이 버럭 덤빈다.


    “놈두 놈이거니와 자네 각시두 못쓰겠데.” “왜?”


    “왜라니, 글쎄 그놈이 돈냥이나 써주니까 머 쫄딱 반해 가지굴랑……머 참 지금이니 말이지 내가 자네를 생각해서라두 그냥 두구 보았겠나마는 당 자가 그렇게 죽구 못 사는 데야……” 덕쇠는 더 할 말이 없어 멍하니 섰다가 한숨을 후유 내어쉰다. 이건 머 백 원 돈을 투전을 해서 삼사일 지간에 다 물어버린 따위가 아니다.


    “그럼 나는 돈두 잃구 예편네두 잃어버렸게?” 덕쇠는 춘삼이와 한편에 서서 구경만 하고 섰는 순갑이를 번갈아 보면서 방금 울상이다.


    “이 사람이 누가 헐 말인지 모르겠네? 자네는 그래두 내헌테 돈 백 원은 가져갔지? 그렇지만 나는 돈 백 원에 그새 옷 해입히구 모다 시중드느라구 사오십 원 들었지? 그런 것을 한푼 못 찾구 들거리를 놓쳤으니 내야말루 게 두 구럭두 놓친 놈이네. 거 참 운수가 사나울랴니까……” 모든 것을 김덕대와 짜고 그한테서 돈을 일백팔십 원이나 받고 그러고 나 서 이쁜이를 빼돌리고는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이야 덕쇠가 알턱이 없 다.


    그는 그대로 고지식하게 다 곧이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 덕쇠에게는 한가지 마음 서리는 희망이 한 줄기 떠울랐다. 이 쁜이가 그렇게 김덕댄지 하는 자와 배가 맞아 도망간 것이 아니고 혹시 집 에 가서 있는지?


    이 생각이 들자 그는 춘삼이와는 작별도 하는 둥 마는 둥 순갑이를 끌고 집으로 두달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중간쯤 가서 도로 낙심이 되어 어깨를 처뜨리고 시치름한다.


    가령 이쁜이가 요행 집에 있다더라도 돈 백 원은 노름으로 잃어버렸으니 이쁜이를 물려올 수도 없거니와 도무지 어머니 등쌀에 배겨낼 수 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 그는 코를 빠뜨리고 서서 걱정하니까 순갑이가 까막까막하 더니 좋은 계교를 깨우쳐주었다.


    요행 이쁜이가 집에 가서 있으면 그것만 다행이요 할 수 없지만, 만일 없 거든--- 없다면 도망한 것이 분명하니까--- 어머니더러는 그런 게 아니라 이쁜이 제가 춘삼이네 집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기를 싫어하고, 또 덕쇠 생 각에도 그대로 오래 두었다가는 계집을 버릴 것 같아 남은 돈 구십 원만 주 었다고 하든지, 또 기왕이니 노름을 해서 백 원 몫을 채웠다고 하든지 아무 튼 이쁜이를 도루 물렀다고…… 그래 춘삼이가 섭섭한데 술을 한잔 먹자고 해서 먹고 있노라니까 이쁜이는 먼저 집으로 간다고 하길래 먼저 보냈노라 고…… 그랬더니 아마 그동안 벌써 눈맞은 놈이 있었던지 그놈과 도망을 간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선 집에 들어서면서 시치미를 뚝 따고 이쁜이를 부르라고……


    이렇게 둘러대자는 것이다. 덕쇠가 듣고 보니 미상불 그럼직한 꾀라, 그러 면 그렇게 하기로 하고 혹시 어머니가 춘삼이네 집에 쫓아가서 속을 알아보 려고 할는지 모르니까 그것을 미리 방패막이 해두어야 하겠어서 순갑이를 되짚어 춘삼이네 집에 보내어 제발 말이 어긋나지 않도록 어머니가 와서 묻 거든 그렇게 대답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라고 시켰다.


    14


    덕쇠는 날삯 사십 전씩을 받고 정거장 앞 들판의 금점판에서 일을 하고 있


    다. 허망하게 돈 백 원 잃어버리고 겸하여 안해까지 잃어버린 그 일이이 있 은 지 바로 그 뒤부터니까 그때가 양력 정초였으니 벌써 석 달이 되어온다.


    극성스럽던 추위도 끈질기게 뭉그대다가 할 수 없이 물러가고 어느결에 봄 이다.


    동리 앞에 두어 주 섰는 수양버들이 맨먼저 봄을 받아 하룻밤 사인 듯싶게 환하게 푸르다. 울타리 안의 살구나무에 볼록볼록 여문 꽃망울이 맺었다.


    밭고랑에 눌러 붙었던 보리순이 벌써 두세 치나 자라 탐스럽게 나풀거린다.


    밭두덕에서 산기슭에서 여인네며 어린 아이들이 장꾼같이 모여 나물을 뜯 는다. 금점판의 일꾼들도 기를 펴고 일을 한다.


    그러나 봄이 와서 춥지 아니한 것만이 다행이지 그 밖에는 봄이 되레 일꾼 들한테는 괴롭다. 겨울보다 해가 길어 같은 품삯으로 일을 더 해야하니 괴 롭고, 겨울처럼 아침 점심 두 끼만 먹어서는 해질 무렵까지 일을 해낼 수가 없어 오 전짜리 탁배기국 한 그릇이든지 호떡 한 개든지 더 먹어야 하니 돈 이 더 들어서 걱정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천 명, 지금 오늘도 들판에서 금을 파고 있다. 여느때 같으면 소를 들이대고 논을 갈고 거름을 내고 못자리(秧版[앙판])을 해야 할 때다. 그러나 넓다 못해 끝이 없는 이 들판에는 누구 하나 농사는 하는 사람이 없다.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벼보다도 더 값나가는 금이 나오니 까.


    이 광은 조선에서는 첫째 가는 사금광이다. 함금량이 턱없이 많은데 그나 마‘자옥쇠’가 아니요 고루 먹혔고, 벌흙이 얇은데 감은 석 자 두께나 되 고 가끔‘노다지’가 툭툭 뛰어나오고 해서 웬만큼 성적 좋다는 석금(石金)


    보다도 월등이다.


    광을 수유하기는 유명한 x x 이지만 자기네가 직접 채굴을 하지 아니하고 분광(分鑛)을 내놓았다. 분광세(稅)가 매평 오 원 오십 전이다. x x는 사무 원 몇 명만 두고 매평 오 원 오십 전씩 따먹는다. 백만 평만 잡고 그중에 나는 것이 십만 평이라더라도 오백만 원이다. 그래서 우선 광주가 배가 부 르다.


    크고 작은 분광업자가 수없이 들이밀렸다. 그들은 광주(鑛主)인 x x에 매 평 오 원 오십 전씩의 광세를 내고 다시 지주(地主)한테 매평 오 원으로부 터 십 원까지 주고 땅을 산다. 그래가지고 한번에 이삼천 평 혹은 몇 백평 씩을 차지하고는 자 땅떼기를 한다.‘감’을 트럭으로 실어 나른다. 그놈을 ‘물목’에다 대고 찧어서 금을 건진다. 이 짓을 하느라고 매일 이천명의 일꾼을 사서 부린다.(그런 때문에 지주들이 또한 배가 부르다.)


    금은 매평에 구십도짜리가 한 칠 돈 팔 푼으로부터 서 돈 중수까지 나오는 곳도 있다. 그러니까 광세와 땅값으로 십 원 각수를 물고도 분광업자들은 숱한 이문을 남기느라고 배가 부르다. 그래서 그새까지 이 들에서 농사일을 해주고 얻어먹던 농군들은 삽으로 금을 파주고 날삯 사십 전 아니면 사십오 전을 얻어먹는다. 광주나 분광꾼이나 지주한테는 이 땅이 금점판이 된 덕에 깨가 쏟아지지만 농군들한테는 농사를 지어줄 때나 금을 파주는 지금이나 종시 일반이다. 농사일을 하던 때에도 해가 긴 봄날에는 배가 고팠으니까.


    금을 파면서부터 논이 고르게 연해 있던 이 들판은 무엇이든지 형용이 괴 상하다. 군데군데 벌흙을 파서 싸올린 것이 피라밋인가 있는 애급 풍경이 다. 들판 가운데 사무소로 생철집이 생기고 논 가운데로는 트럭이 놓였다.


    일꾼들한테 한 상에 칠 전짜리 현미 싸래기밥을 파느라고 밥집이 십여 군데 생기고 일꾼들을 재우느라고 네 귀에 기둥을 박고 가마니쪽을 둘러치고 바 닥에는 등겨를 깔고 그 위에다가 가마니쪽을 깔고 집(?)이 생기고 호떡가게 가 생기고 술집이 생기고, 담배가게 사탕가게 이런 것들이 들 가운데 아무 렇게나 새로 생겨났다. 그야말로 지리(地理)가 변해버렸다.


    덕쇠네 분광구에서는 어제까지 웃껍데기 벌흙을 다 벗겨내고 오늘은 아침 부터‘감’을 파는 참이다. 덕쇠는 다른 일꾼 여남은과 같이 삽질을 하고 있다. 벌흙을 벗겨낸 밑으로 세사와 조약돌이 섞인 누르스름한 석 자 두께 의 흙 한 켜---‘감’을 삽으로 퍽퍽 퍼서 들이대는 바지게에 부어준다. 분 광도 규모를 크게 할라치면 트럭으로 감을 실어 나르지만 곰보 최덕대는 이 번에는 조그맣게 한 오백 평밖에 아니 했고 또 ‘물목’도 가까와서 그냥 바지게꾼으로 져나른다. 바지게꾼들은 한 오십 명이나가 저편 물목까지 감 을 지고 가고 지러 오고 하느라고 마치 밥을 물어나르는 개미떼처럼 두 줄 로 연락 부절해서 오고가고 한다. 곰보 최덕대는 ‘물목’옆에서 금 캐는 것을 감독하면서 이편짝도 연해 감독을 하고 있다.


    덕쇠는 지금 삽질을 하면서 정신은 삽끝에서 논다. 전에도 더러 나왔다는 그런‘노다지’가 한 덩이 눈에 띄었으면…… 띄기만 하면 슬쩍 집어가지고 눈치를 보아 뺑소니를 칠 요량이다. 그렇게라도 돈 백 원이나 손에 쥐어야 전자에 노름으로 백 원을 잃어버린 벌충도 되고 이쁜이를 찾으면 춘삼이한 테 백 원을 갚아주고 도로 무르든지, 그렇게 계제가 못되면 장사를 시작할 밑천을 장만하든지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한 덩이 얻어질 것도 같으면서 소위‘시운이 지지 아니 해 서’ 그런지 아무리 정신을 차렸어도 석 달이 되어오도록 입때까지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덕쇠는 한 짐을 겨우 퍼서 얹어주고 허리를 폈다. 딱 시장해서 구부렸던 허리를 펴기가 대견했다. 하마 점심 먹으라는 소리가 날 때가 되었는데 하 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해는 아까 그 자리에 그냥 있지 더 간 것 같지도 않다. 일보다도 해가 원수 같았다.


    겨우겨우 점심을 먹으라는 영으로 사방에서 깨어진 놈 성한 놈 쟁들이 괭 괭 울렸다. 덕쇠는 쥐었던 삽을 내던지고 일터 한편 구석에 옴닥옴닥 모아 놓은 점심 꾸러미에서 제것을 찾아들기가 바쁘게 저편 봇둑에 있는 국밥집 으로 들고 뛴다.


    벌써 몇십 명이 모여들어 국 푸는 솥을 둘러싸고 제가끔 가지각색의 밥그 릇을 너도나도 들이민다. 그러나 밥이라는 것은 모두 한결같은 현미싸래기 밥이다.


    오분지 일이 왼쌀의 쌀눈이요, 오분지 일이 푸르스름한 쭈그렁이쌀의 쌀토 막이요(싸래기라는 이름은 그것 때문에 붙은 억울한 영광이다) 오분지 일이 피(稷[직])요, 오분지 일이 모래요, 오분지 일이 겨조각이다.


    이놈을 대되로 한 되에(고봉으로) 십칠 전씩 주고 팔아다가는 조리로 일이 어쩌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물에다가 한 번 헹궈서 밥을 짓는다.(이것은 실 상인즉 닭모이로 쓰는 것인데 이 일꾼들이 빼앗아 먹는 참이다.)그래서 그 놈을 먹고 대변을 보면 다시 거기서 닭모이가 나온다.---피와 모래와 겨가.


    일꾼들은 이런 밥 한 덩이씩을 담은 그릇을 들이밀고 서로 먼저 국을 받으 려고 밀치고 넘어지고 욕하고 성내고 눈을 부라리고 실로 무서운 광경이다.


    국이란 건 시래기에 콩나물과 된장과 벌써 여남은 번이나 삶은 것이다. 그 놈 한 사발과 말걸리 한 잔에 오 전이니 싸기는 일꾼같이 싸다.


    먼저 국을 받은 사람들은 제가끔 흩어져서 버티고 선 채로 훌쩍거리며 먹 고 있다. 덕쇠도 돈 오 전으로 겨우 말걸리 한 사발과 밥그릇에 부어주는 국을 받아가지고 물러서서 술을 들이켠 뒤에 국밥을 목구멍에 퍼넣기 시작 했다. 실상 그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 아까 삽으로 흙을 퍼얹듯이 숟갈 로 밥을 목구멍에다가 퍼넣는다는 게 옳은 말이겠다. 혀와 이빨을 놀려 씹 고 어쩌고 할 것도 없다. 씹으면 모래가 물려서 되레 폐롭다.


    그러니까 그저 우물우물해서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기어 배만 부르면 그 만이다. 이것은 덕쇠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그렇 다.


    15


    해는 밉광머리스럽게도 서쪽 하늘에 동동 매어달린 채 좀처럼 넘어가지 아 니한다. 일꾼들은 삽질 한 번에 해 한 번씩을 바라다보고 한숨 한 번씩을 내어쉰다. 모두 지치고 시장해서 갱신도 못하게 되었다. 전 같으면 넉점차 가 지나갔으니 해가 거진 졌으련만 여섯점차가 하마 오게 되었는데도 해는 댓길 높이나 남아 있다. 사람이 고따위로 빤질거리고 미운 짓을 하면 쥐어 박질러 주기라도 할 것 같다.


    덕쇠는 낮에 그놈 푸달진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로 요기를 하기는 했지만 먹던 그 당장에도 섭섭했던 걸 지금까지 속에 남아 있을 턱이 없다.


    그는 삽으로 푹푹 푸는‘감’이 밥으로도 보이고 떡으로도 보이게 정신이 없다.


    마침 한 이십 칸이나 떨어진 저편의 다른 광구에서 왁자지껄하기에 보니까 일꾼들이 보리개떡 장수하는 여편네를 쫑애를 곯린다. 모두 제가끔 넓적한 보리개떡 하나씩을 물고 돌아서고 떡장수 여편네는 이 사람한테 돈을 받을 라 저 사람이 집어가는 것을 붙잡을라 정신이 없다. 하다못해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른다. 일꾼들은 좋다고 히히덕거리며 개중에는 그 앞에 서서 오줌을 누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매일 몇 번씩 생기는 구경거리요 그런 것만이 지 쳐서 말할 기운도 없이 일만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을 웃게 하는 유일한 흥거 리다.


    덕쇠는 보리개떡 장수가 이리로 오기만 하면 덮어놓고 두어 개 집어먹은 뒤에 배(腹[복])로 셈을 하려고 우두커니 서서 침을 삼키는데 바지게꾼이 바지게를 들이댄다.


    그래 삽질을 하려고 몸을 돌리려다가 보니까 한옆에서 방금 삽질을 하던 일꾼이 어느결에 그랬는지 서넛이나 모여 머리를 한데 처박고 수군수군한 다.


    덕쇠는 정신이 번쩍 나는 것같이 삽질이고 무엇이고 잊어버리고 그리로 뛰 어가서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덕쇠는 단박 눈이 휘둥그래졌다. 말만 들었지 처음 보는‘노다지’라는 것 이다. 언뜻 보기에는 빛깔이 누르스름하고 좀 번쩍거려서 그렇지 하릴 없이 납을 녹인 찌꺼기가 손 납똥 같다. 그런 놈이 한 개가 아니고 엄지손 구부 렁이만한 놈과 또 그보다 조금 작은 놈이 두 개 이렇게 세 갠데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가느다란 잘록이로 세 개가 위태롭게 한데 연해졌다.


    한 사람이 그놈을 손바닥에 얹어놓고 촐싹촐싹 중수를 가늠해본다. 그옆으 로 키다리 하나가 붙어서서 남들이 자꾸만 모여드니까 이맛살을 찌푸리고 저편‘물목’께를 힐끔힐끔 돌려다본다. 노다지를 얻어낸 게 이키다리다.


    다른 일꾼들도 벌써 눈치를 채고 삽질하던 사람 짐질하던 사람 할것없이 너도 나도 꾸역꾸역 모여들여 고개를 처박고 덤빈다.


    “석 냥 중수는 실히 되겄는걸? 석 냥쭝이면 삼백 원이라……” 무게를 꼬느던 사람이 뉘게라 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덕쇠는 한 걸음 더 그 앞으로 다가들어


    “그게 노다진가? 이리 주어 귀경 좀 허더라구.” 하면서 커다란 손바닥을 불쑥 들이민다.


    “무얼 볼 것 있다구 이런대여?”


    키다리가 짜증을 내어 덕쇠더러 지천을 하면서 “이리 주어.”


    하고 저도 손을 들이민다. 노다지를 가지고 보던 사람은, 자 다른 사람더러 도 구경을 하라고 떼어주자니 키다리가 지랄을 할 것이고, 그렇다고 인제는 임자인 키다리한테 도로 건네주어 버리자니 어쩐지 아까와서 짐짓 손바닥만 촐싹거리고 있다. 일꾼들은 벌써 십여 명이나 모여 빙 둘러서서 노다지에 눈독을 들이고 키다리는 초조해서 기를 쓰고 납뛴다.


    “다들 저리 가서 일이나 않구 무엇 볼 것 있다구 그렇게 우허니 모여든대 여?”


    키다리의 이 말을 받아 덕쇠는


    “그 제헐 것을……”


    이렇게 우악스럽게 소리를 지르면서 노다지를 툭 잡아채어다가 제 손바닥에 움켜쥔다. 그 서슬에 겨우 서로 잇기었던 노다지는 세 덩이로 따로 따로 떨 어져버린 것도 아무도 모른다.


    “귀경 좀 허먼 그놈의 것이 달어 없어지간디 그리어?” 덕쇠는 일변 주먹을 펴고 노다지를 들여다보면서 일변 키다리더러 지천을 한다. 키다리는 성을 버럭 내어 싸울 듯이 덕쇠의 팔을 후려 쥐고 덤빈다.


    덕쇠가


    “눈치를 챌 테니께 그러지! 잔말 말구 이리 주어. 괜시리 살인날 테니 께……”


    “감짝같이 혼자 먹기는 다 틀렸네. 얽어배기(곰보 최덕대)가 발서 눈치 챘을걸……”


    누군지 등 뒤에서 이렇게 빈정거린다. 덕쇠는 그 말에 키다리가 잠깐 저편 ‘물목’께를 돌려다보느라고 고개를 돌리는 틈에 “에라 이놈의 것……”


    하더니 노다지를 제 입에다가 쥐어 넣고 금시로 불룩해진 볼때기를 우물우 물하면서 이어 삼키느라고 끼룩끼룩 목을 길게 잡아뺀다. 눈 깜짝할사이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키다리는 잠시 멍하니 서서 있고 그동안에 덕쇠는 연 신 목을 잡아늘여 대가리를 내두르면서 두 번에 두 개 삼켜버렸다.


    그때야 기다리가 두 팔을 벌려 덕쇠의 모가지를 후려잡고 내동댕이를 친다.


    덕쇠는 힘을 못쓰고 쓰러지고 그 위에 가 키다리가 깔고 엎드러진다.


    몇 사람은 허허 하고 웃고 몇 사람은 키다리와 같이 들이 덤벼 수십 개의 손가락이 덕쇠의 입을 잡아 찢으려고 한다.


    덕쇠는 목구멍을 할퀴기는 했어도 두 개는 이미 뿌듯이 넘어갔으니까 반쯤 죽더라도 지금 입 안에 남아 있는 놈을 마저 삼켜버리려고 애를 쓴다. 손가 락이 어쩌다가 입안으로 들어오면 사정없이 질근질근 물어뗀다.


    그래도 손가락은 드리없이 파고든다.


    싸움은 오래 가지 아니했다. 곰보 최덕대가 쫓아왔던 것이다. 덕쇠는 사람 들이 갑자기 저를 놓아주는 바람에 부스스 일어서다가 바로 눈앞에 달려든 곰보 최덕대의 얽은 얼굴을 보았다.


    그는 찔끔해서 아직도 못 삼키고 입속에 있는 한 덩이를 마저 삼키려고 다 시 목을 끼룩거리니까 벼락불이 나게 따귀가 올라붙는다. 그 서슬에 금덩이 는 덕쇠의 입에서 쏟아져 흙바닥에 떨어진다. 그놈은 원체 굵어서 사람의 목구멍으로는 넘어갈 수가 없는 놈이다.


    곰보 최덕대가 침과 피와 흙이 묻은 금덩이를 집어들면서 덕쇠한테로 눈을 흘기니까 키다리가 옆에 섰다가


    “그 자식이 두 개는 생켰어요.”


    하고 방금 잡아먹고 싶은 듯이 덕쇠를 쏘아본다.


    “아 해봐.”


    곰보 최덕대가 입을 벌리면서 한걸음 덕쇠 앞으로 다가선다. 덕쇠는 안심 하고 입을 벌려보인다.


    곰보 최덕대는 덕쇠의 입안을 들여다보다가 한번 더 따귀를 올려붙이면서 “망헐 자식! 도둑놈 같으니라구!”


    하고 발길을 들먹들먹한다. 덕쇠는 별로 무렴해하지도 않고 매만 더 맞지 아니하려고 몸을 모로 조촘조촘 물러선다.


    곰보는 더 때리지는 아니하고‘물목’에 있는 제 손대를 불러 덕쇠를 제가 묵고 있는 주막으로 안동해서 보냈다.


    밤이 이슥했다. 덕쇠는 곰보 최덕대와 전가라는 그의 손대한테 붙잡혀 앉 아 피마자기름을 한번에 한 보시기씩 세 번이나 먹고 뱃속에 들어 있는 것 이라고는 있는 대로 다 설해 버린 참이다.


    그는 사지와 전신의 기운이 마치 피마자기름으로 해서 밑으로 다 빠져나간 것처럼 다 빠지고 퍼져 쓰러졌다. 그래도 종시 금덩이는 나오지 아니했다.


    맨 처음에 피마자기름을 먹으라고 할 때에 덕쇠는 그 덩이가 나올까봐서 먹지 아니하려고 했다. 그러나 순사청(駐在所[주재소])으로 보낸다고 엄포 를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먹었었다. 먹고 나서는 설하는 것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덕쇠가 설한 것은 그 소용으로 저녁 때 불러다 둔 일꾼 두 사람을 시켜 냇 물에다가 일게 했다.


    그러나 몇 번 그 짓을 해도 금은 나오지를 아니했다. 마지막 네 번째 피마 자 기름을 먹이려고 할 때에는 덕쇠는 개개 빌면서 “날 차라리 배를 갈르구 금덩이를 끄내가시유 예? 나리……” 이렇게 우는 소리를 했다. 그는 인제는 더 견딜 수가 없이 기운이 지치고 피마자기름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정말이냐?”


    곰보 최덕대는 얽은 얼굴을 심술궂게 싱긋 웃으면서 얼러멘다.


    “예, 그저 제발……”


    “피마주기름은 멕여두 나올 택이 없어요.” 옆에서 곰보 최덕대의 손대 전가가 졸립게 하품을 하면서 그런 말을 두런 거린다.


    “왜?”


    “물목에서 금을 씻으면 금이 흘러내려가잖구 우에 가 처져 있는 걸 보시 지요? 그 이치가 일반 아니예요?”


    “허긴 그래! 그럼 저 녀석을 정말 배를 따야 허게?” 곰보 최덕대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하품을 씹어 뱉으면서 덕쇠를 내려다 본다. 그는 인제는 열증이 나서 이 곰 같은 인간을 더 붙잡고 이러니 저러 니 할 맥이 나지 아니했다.


    그는 금덩이가 유문(幽門)에 걸리어 나오지 아니하는 줄은 몰라도 아무튼 ‘물목’의 이치로 해서든지 어찌해서든지 영 나오지 아니할 줄을 알았다.


    그러니 그렇다고 제 말대로 차마 배를 따는 수는 없다. 금덩이라야 모르면 몰라도 기껏해서 일백오십 원어치 아니면 이백원어칠 것이다. 실상인즉 지 금 세월 좋은 판에 이백 원쯤 그저 모르고 도적 맞은 셈만 잡아도 그다지 아플 데가 없다.


    물론 처음이야 괄괄한 성미에 소당머리가 미워서라도 기어코 찾아내려고 서둘렀다. 그러느라고 초저녁부터 피마자기름을 구해다가 먹이네 어쩌네 하 여 이 거조를 하기는 한 것이다.


    그러나 금은 종시 나올 싹이 보이지 아니하는데, 그만하고 나니까 성은 그 렁저렁 다 풀려버렸겠다 해서 짐짓 마음을 돌려버렸다. 이것은 그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소위 금점판의 큰 덕대들의 도량이다.


    곰보는 네 번째 피마자기름을 먹이려고 하는 전가를 눈짓으로 제지하고 퍼 져 누워 눈만 끄먹끄먹하는 덕쇠의 옆구리를 발길로 툭 걷어차면서 욕을 내 뱉는다.


    “없어져 ! 쌍통 보기 싫다, 망헐 자식……” 이 말에 덕쇠는 정신이 번쩍 들어 없는 기운을 다해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말은 못하고 뻔하니 곰보 덕대만 올려다본다.


    “없어지라니까 왜 이러구 있어!”


    “정말이유? 놓아주세요?”


    “누가 널더러 거짓말헐까 바서? 그럼 배를 따주려? 응?” 덕쇠는 움칫하고 배를 움켜쥐었다.


    “법만 아니면 배를 따겠다만 내가 너 같은 걸 배를 따구 시비를 듣겠니?


    꼴 보기 싫다, 어여 없어져라 빨리빨리.” 곰보 최덕대는 발끝으로 덕쇠의 옆구리를 지분지분한다. 덕쇠는 고맙다고 인사나 하려다가 너무 급하게 몰아세우니까 그냥 설설 기어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곰보 최덕대는 덕쇠의 등 뒤에다가 대고 농담삼아 “이 놈의 자식 한 십 년 밥을 안 처먹어두 배지가 고프지는 않겠다.” 고 욕을 한다.


    덕쇠는 놓여나와 혼자 어두운 길로 나섰을 때에는 기운이 지쳐 허든거리기 는 했어도 그런 것은 조금도 괴롭지 아니하고 그저 지금 제 뱃속에 이백 원 어치나 되는 금덩이가 들어 있다는 것만이 기쁘고 마음 든든했다. 그는 서 편으로 기울려고 하는 초열흘의 조각 넘은 달을 바라다보고 혼자웃었다.


    언제든지 이 금이 나오기는 나오려니…… 나오는 날이면 이쁜이를 무를 밑 천만 남기고 나머지로는 장사를 하려니…… 이런 궁리를 하면서 그는 홀쭉 하게 등에 달라붙은 배를 몇 번이고 만져보았다.


    16


    사월이 내일 모레로 다가온 삼월 그믐, 남방의 꽃은 일러서 정거장 둘레로


    는 개나리가 한창 어우러져 피었다. 무더기 무더기로도 피고 집을 둘러선 울타리로도 둘러 피었다. 정거장 복판에도 피었다. 노란꽃이 푸른 잔디 언 덕과 겨루듯이 정신이 들게 산뜻하다. 햇빛이 맑아서 꽃은 더욱 해맑다. 바 람결도 알맞게 보드랍다.


    정거장에서 바라보이는 들판의 금점판에서는 오늘도 다름없이 숱한 금을 파내느라고 이천 명의 일꾼이 군데군데 모여서 삽질을 하고 흙짐을 지고 도 로꼬를 밀고 한다.


    그러한 일꾼들과는 다르게 이날 오후 세사나 되어서는 동만(東滿)으로 떠 나갈 이민(移民)이 백 명 가량이나 정거장으로 들이닿았다. 근동에서 뽑은 스물여덟 가구(戶[호])에 아흔네 명의 이민이다.


    허리가 꼬부라진 노인만 없지 웬만큼 늙은 사람도 있고 아기는 많다.


    마침 시집갈 나이가 된 색시도 있다. 그런 색시는 정거장 둘레에 핀 개나리 꽃 같은 노랑저고리를 입었다.


    등에 업힌 아기와 겨우 자박자박 걸음을 얻는 어린아이만 빼놓고 모두 크 고 작은 보퉁이 하나씩을 이고 안고 걸머지고 손에 들고 했다.


    옷들은 제가끔 멀리 간다고 헌 것이나마 갈아 입었다. 얼굴들은 그대로 검 누렇다.


    검누런 얼굴에 모두들 추레해서 낯빛이 더욱 어둡다. 좋아하는 것은 차를 타는 줄 아는 어린아이들뿐이다.


    구장이 앞을 서서 앞선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이민들은 말을 잊은 듯이 묵 묵히 흐트러진 열을 지어 정거장 복판으로 들어온다. 보퉁이에 달아맨 바가 지가 저희끼리만 달그락거린다.


    맨 뒤에는 회색 양복에 회색 스프링을 입은 면장과 면의 서무와 주재소 소 장이 웃고 이야기를 하면서 넌지시 따라온다. 그 뒤로 이민을 전별하려 한 오십 명이나 남녀 섞어 노소가 무더기로 따라온다. 그 사람들도 다같이 추 레하다.


    정거장 복판에 다 들어서서 가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한데 한 무더기씩 갈려가지고 미진한 작별을 한다. 눈물이 군데군데서 흐른다. 햇빛과 꽃빛은 그대로 맑다.


    이 속에 덕쇠네 모자도 섞였다. 순갑이가 덕쇠네를 배웅하러 따라나왔다.


    덕쇠어머니는 저편에서 배웅나온 동리 사람들과 비죽비죽 울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덕쇠는 이편에서 순갑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덕쇠는 어떻다고 할 수가 없고 그저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슬프기만 했다.


    그는 들판의 금점판을 후 둘러보느라니까 새삼스럽게 뱃속에 들어 있는 금 덩이가 생각이 났다. 그새 십여일째 두고 아무리 나오기를 기다렸어도 아니 나왔었다.


    “이 사람아, 이놈의 것은 영 안 나올라는가 보네?” 덕쇠는 속을 아는 순갑이한테 제 배를 가리킨다.


    “안 나와두 갈 데 있가듸? 백년 가두 뱃속에 들은걸!” 하면서 순갑이도 덕쇠의 배를 바라다본다.


    “그러다가 그냥 죽으면?”


    “그냥 죽으면 자식들더러 면례헐 때 찾어먹으라지? 남은 수만금두 뫼였다 가 자식한테 몰려준다네.”


    자식이란 말에 덕쇠는 잠깐 잊었던 이쁜이 생각이 다시 났다.


    “아까두 부탁하였지만 우리 예편네 응? 혹시 오거들랑 말이여, 자네가 잘 좀 보살펴주소잉? 그러구 바루 내게다가 편지히여, 그럼 내가 오든지 돈을 부치든지 허께…… 춘삼이헌데두 부탁히였으닝개……” “글세 그 걱정은 말래두, 잡것이 잔소리는 퍽 허구 있네! 그렇게 못믿어 허다가는 내가 도루 팔아먹을란다.” “히히, 그렇지만 인제 나를 찾어오기는 오까?” “돈 있는 놈허구 배가 맞어서 도망갔다문서 찾아오기는 개X을 찾어와?” 덕쇠는 역시 그럴 것을 헛되게 희망을 가지는 것이 한심해서 추렷이 말이 없다. 그는 다른 일가친척이 없으니까 달리 사람을 못잊어하는 회포는 없어 도, 그 대신 다만 한 사람 이쁜이가 미망이 져서 그런 대로 고향에 처져 있 을 것을 공연히 떠나나보다 하는 후회를 지금도 두루 하고 있다.


    전에 늘 발길로 걷어차고 하던 역부가 흘금흘그 곁눈질을 하면서 지나간 다. 덕쇠는 인제는 그를 어려워할 것도 없고 버젓하게 차를 타는 손님이라 서 고개를 꼿꼿 쳐들고 역부를 내려다본다.


    망대(시그널)가 숙었다. 오래잖아 저쪽 아랫녘에서 이민을 오백 명이나 실 은 이민열차가 들이 닿을 판이다. 망대가 숙으니까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 리가 적이 높아진다. 소리를 숨겨 우는 소리도 들린다.


    정거장 사무실에서는‘귀빈’들의 재그르르 웃는 소리가 쏟아져나온다.


    봄날의 오후에 알맞게 화창한 웃음소리다.


    덕쇠는 우두커니 개나리꽃 핀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성큼성큼 가더니 한 가지를 꺾어 쥐고 순갑이 옆으로 도로 온다.


    “거기두 이런 꽃이 피는가 몰라!”


    “옛날버텀 오랑캐 땅에는 꽃이 안 핀다구 허데마는…… 더군다나 그런 좋은 꽃이 필라든가?”


    순갑이는 꽃망울을 하나 따서 들여다보다가 땅바닥에 흘려버린다.


    “그럼 꽃두 마주막이게?”


    “농투산이가 꽃은 히여 무엇허게?” “그리두 이런 꽃이나 피구 허면 고향 생각이 나더래두 좀 덜허지.” “더허지 덜히여?”


    여남은 살이나 먹은 계집아이가 옆으로 지나다가 덕쇠가 꽃 가진 것을 보 더니


    “그 꽃 나 주세요.”


    하고 손을 벌린다. 덕쇠는 꽃과 소녀를 번갈아 보다가 “오냐, 네가 이 꽃 갖구 가거라. 이 꽃이 우리 고향 맨 마주막 보는 거 다 응? 저기 가면 이 꽃은 없대여.”


    하면서 소녀의 손에다가 꽃가지를 쥐어준다. 소녀는 꽃처럼 웃고 돌아서서 간다.


    기적 소리가 나면서 산모롱이로 차가 돌아온다. 이민들은 제가끔 보퉁이 를 찾아 들고 열을 지어 선다. 역장이 나오고 면장, 소장이 나오고 구장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한다. 차를 내어다보더니 덕쇠는 입을 실룩실룩하면서 순갑이의 손을 잡고 말을 못한다. 들판에서 일을 하던 일꾼들이 손을 멈추 고 이민이 떠나는 정거장을 바라본다. 차는 씨근거리면서 가까이 들이닿고 이민들 사이에서는 우는 소리가 여러 군데서 들리고 정거장 근처의 개나리 꽃과 잔디 언덕과 오후의 봄 햇빛은 고요히 맑다.


    <女性 제2권 제3호~제10호,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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