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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온과 능금 | 이효석
    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0. 23:24

    1


    ‘나오미’가 입회한지는 두 주일밖에 안되었고, 따라서 그가 연구회에 출 석하기는 단 두 번임에 불구하고 어느덧 그의 태도가 전연 예측치 아니하였 던 방향으로 흐름을 알았을 때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감정 의 움직임이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짧은 시간에 그가 나에게 대하여 그러한 정서를 품게 되었다는 것은 도무지 뜻밖의 일이었음을 나는 놀라는 한편 현혹한 느낌을 마지않았던 것이다.


    하기는 ‘나오미’가 S의 소개로 입회하게 된 첫날부터 벌써 나는 그에게 서 ‘동지’라는 느낌보다도 ‘여자’라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그것은 ‘나오미’가 현재 어떤 백화점의 여점원이요, 따라서 몸치장이 다소 사치 한 까닭이라는 것보다도 대체로 그의 육체와 용모의 인상이 너무도 연하고 사치한 까닭이었다. 몸이 몹시 가늘고 입이 가볍고 눈의 표정이 너무도 풍 부하였다. 그의 먼 촌 아저씨가 과거에 있어서 한 사람의 굳건한 ××으로 서 현재 영어의 몸이 되어 있다는 소식도 S를 통하여 가끔 들은 나였만은 그러한 나의 지식과 ‘나오미’의 인상과의 사이에는 한 점의 부합의 연상 도 없고 물에 뜬 기름 모양으로 서로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같은 가지에 붉은 꽃과 푸른 꽃의 이 전연 색다른 두 송이의 꽃이 천연스럽게 맺 히는 것과도 같은 격이었다. 그러나 연약한 인상이라고 그의 미래를 약속하 지 못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회원이요, 믿음직한 동지인 S가 그를 소개하였을 때에 우 리는 그의 입회를 승낙하기에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차차 그를 만나게 될수록 ‘동지’라는 느낌은 엷어가고 ‘여자’ 라는 느낌이 그에게서 받는 느낌의 거의 전부이었다.


    한편 나에게 대한 그의 태도와 행동은 심히 암시적이었다. 내가 그것을 깨 닫게 된 것은 물론 다음과 같은 일이 있은 후로부터였지만.


    ‘나오미’가 입회한 후 두 번째 연구회에 출석하던 날이었다. 오륙 인 되 는 회원들이 S의 여공임을 비롯하여 학생 점원 등 층층을 망라한 관계상 자 연 모이는 시간이 엄수되지 못하였고, 또 독일어의 번역과 대조하여 읽고 토의하여 가던 「××××」에 어려운 대문이 많았던 까닭에 분량이 많이 나가지 못하는데다가 회를 마치고 나면 모두 피곤하여지는 까닭에 될 수 있 는 대로 초저녁에 모여서 밤이 깊기 전에 파하는 것이 일쑤였다. 그날 밤도 일찍이 파하고 S의 집을 나오니 집에의 방향이 같은 관계상 나는 또 ‘나오 미’와 동행이 되었다.


    “어떻소. 우리들의 기분을 대강은 이해할만하게 되었소?” 회원들 가운데에서 피를 달리한 사람은 ‘나오미’ 한 사람뿐이므로 낯익 지 않은 그룹 속에 들어와서 거북한 부조화와 고독을 느끼지 않는가를 염려 하여 오던 나는 어두운 골목을 걸어 나오면서 그의 생각도 들어보고 또 그 를 위로도 할 겸 이런 말을 던졌다.


    “이해하고 말고요. 그리고 저는 이 분위기를 대단히 좋아해요. 저를 맞아 주는 동무들의 심정도 좋고 선생님께 대하여서는 더구나 친밀한 느낌을 더 많이 품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외다 ⎯ 혈족에 대한 그릇된 편견으로 인하여 잘못을 범 하는 예가 아직도 간간이 있으니까요.” “깨달음이 부족한 까닭이겠지요 ⎯ 어떻든 저는 우리 회합에서 한 점의 거북한 부자유도 느끼지 않아요 ⎯ 마음이 이렇게 즐겁고 좋아요.” 진실로 즐거운 듯이 ‘나오미’는 몸을 가늘게 요동하며 목소리를 내서 웃 었다.


    미묘하게 움직이는 그의 시선을 옆얼굴에 인식하면서 골목을 벗어나오니 네거리에 나섰다.


    늘 하는 버릇으로 모퉁이 서점에 들려 신간을 한 바퀴 살펴본 후 다시 서 점을 나올 그때까지 ‘나오미’의 미소는 꺼지지 않았다.


    서점 옆 과일점 앞을 지날 때에 ‘나오미’는 그 미소를 정면으로 나에게 던지면서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제의하였다.


    “능금이 먹고 싶어요!”


    “능금이?”


    그로서는 의외의 제의인 까닭에 나는 반문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신선한 능금 한입 베어먹었으면!” ‘나오미’는 마치 내 자신이 한 개의 능금인 것같이 과일점의 능금 대신 에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바싹 나에게로 붙었다.


    나는 은전 몇 잎을 던져 주고 받은 능금 봉지를 ‘나오미’에게 쥐어 주었 다.


    걸으면서 ‘나오미’는 밝은 거리를 꺼리는 법 없이 새빨간 능금을 껍질채 버적버적 먹었다.


    “대담하군요.”


    “어때요 행길에서 ⎯ 능금 ⎯ 프� 레타리아답지 않아요?” ‘나오미’의 하아얀 이빨이 웃음 띠우며 능금 속에 빛났다.


    “금욕은 프� 레타리아의 도덕이 아니예요 ⎯ 솔직한 감정을 정직하게 표 현하는 것이 프� 레타리아가 아닐까요?” 그러나 밝은 밤거리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능금을 버적버적 먹는 풍경은 프 � 레타리아답다느니보다는 차라리 한 폭의 아름다운 ‘모던’ 풍경이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나오미’의 자태에는 프� 레타리아다운 점은 한 점도 없 으며 미래에도 그가 얼마나한 정도의 프� 레타리아 투사가 될까도 자못 의 문이었다 ⎯ 너무도 아름답고 사치하고 ‘모던’한 ‘나오미’였다.


    “능금 좋아하세요?”


    “능금 싫어하는 사람이 어데 있겠소.” “모두 아담의 아들이요, 이브의 딸이니까요 ⎯ 자 그럼 한 개 잡수세 요.”


    ‘나오미’는 여전히 미소하면서 능금 한 개를 나의 손에 쥐어 주었다.


    “⎯ 그렇지요. 조상 때부터 좋아하던 능금과 우리는 인연을 끊을 수는 없 어요. 능금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고 또 영원히 좋은 것이겠지요 ⎯ 공간 과 시간을 초월하여 높게 빛나는 능금이지요. 마치 저 하늘의 ‘오리온’과 도 같이 길이길이 빛나는 것이예요.” “능금의 철학?”


    “이라고 해도 좋지요. ⎯ 그러니까 프� 레타리아 투사에게라고 결코 능금 이 금단의 과일이 아니겠지요. 밥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 투사가 능금을 먹 지 말라는 법이 어데 있어.”


    ‘나오미’의 암시가 나에게는 노골적 고백으로 들렸다. 그러므로 나는 예 민하게 나의 방패를 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진리임은 사실이나 문제는 가치와 효과에 있을 것이요. 그리고 또 우리에게는 일정한 체계와 절제(節制)가 있어야겠지요. 아무리 아름다운 능금이기로 난식을 하여서 그것이 도리어 계급적 사업에 해를 끼치게 된다 면 그것은 가엾은 짓이 아니겠소.”


    2


    이런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나는 웬일인지 항상 ‘나오미’와 능금을 연상 하게 되어서 그를 생각할 때에나 만날 때에는 반드시 먼저 능금의 연상이 머리 속을 스치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때로는 그가 마치 능금의 화신같이 생각되는 때도 있었다. 물론 다음과 같은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그런 인상 은 더욱 두터워 갔다.


    두 주일 가량 후이었을까. 오랫동안 생각 중에 있던 어떤 행동에 있어서의 다른 어떤 회와의 합류문제가 돌연한 결정을 지었던 까닭에 그 뜻을 회원들 에게 급히 알려야 할 필요상 나는 그 보고를 가지고 회원의 집을 일일이 방 문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날 저녁때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나오미’였 다. 직접 그의 숙소가 아니요. 그의 일터인 백화점으로 찾은 까닭에 그 자 리에서 그에게 장황한 소식도 말할 수 없는 터이므로 진열되어 있는 화장품 사이로 간단한 보고만을 몇 마디 입재게 전하여 줄 따름이었다.


    그러나 낯설은 손님도 아니요, 그렇다고 동지도 아니요, 마치 정다운 애인 을 대하는 듯이 귀여운 미소를 띄우며 귀를 바싹 대고 나의 보고를 고요히 듣고 섰던 ‘나오미’는 나의 말이 끝나자 은근한 눈짓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나에게 그의 뒤를 따르기를 청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의아하 면서도 시침을 떼고 그의 뒤를 따라 같이 올라가는 승강기를 탔다. 위층에 서 승강기를 버린 ‘나오미’는 층층대를 올라가 옥상 정원에까지 나섰을 때에 다시 은근한 한편 구석 철난간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무슨 일요?”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은 것같이 예측되었기에 그곳까지 이르자 나는 조급하 게 물었다.


    “선생님께 드릴 것이 있어서요.”


    철난간에 피곤한 몸을 의지하여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나오 미’는 조금도 조급한 기색은 없이 천천히 대답하면서 나를 듬짓이 바라보 았다.


    “무엇이란 말요?”


    “무엇인 듯해요?”


    “글쎄 ⎯”


    그러나 ‘나오미’는 거기서 곧 대답은 하지 않고 피곤한 듯한 손짓으로 이지러진 옷자락과 모양을 고치면서 탄식하였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려니까 피곤해서 못 배기겠어요.” “그러니까 부르짖게 되지요.”


    “십 시간 이상 노동 절대 반대 ⎯ 그러나 지내 보니까 이 속에는 한 사람 도 똑똑한 아이가 없어요. 결국 이런 곳의 조직의 필요성은 아직 제 시기에 이르지 못한 것 같아요.”


    “⎯ 그것은 그렇다고 해두고 지금 나에게 줄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요?” “참, 드릴 것을 드려야지요.”


    하면서 ‘나오미’는 새까만 원피스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일전에 제가 선생님께서 능금을 받았지요. ⎯ 그러니까 저도 능금을 드 려야지요.”


    그의 바른손에는 한 개의 새빨간 능금이 들려 있었다.


    “능금?”


    “왜 실망하세요. 능금같이 귀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동의를 구하려는 듯이 ‘나오미’는 나를 반듯이 바라보았다.


    “저 곳을 내려다보세요. 번잡한 거리에서 헤매이고 꾸물거리는 저 많은 사람들의 찾는 것이 결국 무엇일까요 ⎯ 한 그릇의 밥과 한 개의 능금이 아 닌가요. 번잡한 이 거리의 부감도(俯瞰圖)는 아름다운 능금의 탐색도(探索 圖)인 것 같아요.”


    하면서 ‘나오미’는 거리로 향한 몸을 엇비슷이 틀면서 손에 든 능금을 높 이 쳐들었다. 두어 오리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옆얼굴의 윤곽과 부드러운 다 리와 손에 든 능금에 찬란한 석양이 반사되어 완연 그의 전신에서 황금빛 햇발이 발사되는 듯도 하여 그의 자태는 마치 능금을 든 이브와도 같이 성 스럽고 신비로운 한 폭의 그림같이 보였다.


    “능금을 받으세요.”


    원피스를 떨쳐입은 ‘모던’ 이브는 단 한 개의 능금을 나의 앞에 내밀었 다. 그의 자태와 행동에 너무도 현혹하여 묵묵히 서 있으려니 그는 어떻게 생각하였던지 한 개의 능금을 두 손 사이에 넣고 힘을 썼다.


    “‘코카서스’ 지방에서는 결혼할 때에 한 개의 능금을 두 쪽을 내어서 신랑 신부가 그 자리에서 한쪽씩 먹는다지요.” 하면서 나오미는 두 쪽으로 낸 능금의 한쪽을 나의 손에 쥐어 주고 나머지 한쪽을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철난간에 의지하여 곁눈으로 저물어가는 거리의 부감도를 내려다보며 반쪽 의 능금을 먹는 ‘나오미’의 자태는 아까의 성스러운 그림과는 정반대로 속되고 평범한 지상적(地上的) 풍경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3


    “⎯ 그래 ‘나오미’는 어떻게 생각하오?”


    “코론타이 자신 말예요.”


    “보다도 왓시릿사에 대해서 말요.” “가지가지의 붉은 사랑을 맺어 가는 왓시릿사의 가슴속에는 물론 든든한 이지의 조종도 있었겠지만 보다도 끓는 피와 감정에 순종함이 더 많았겠지 요 ⎯ 이런 점에 있어서 저도 왓시릿사를 좋아하고 찬미할 수 있어요.” “사업 제일, 연애 제이, 어디까지든지 이 신조를 굽히지 않고 나간 것이 용감하지 않소.”


    “그러나 사업 제일이라는 것은 결국 왓시릿사에게는 한 개의 방패와 이유 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 사람의 사나이로부터 다른 사나이에게 옮아갈 때 거기에는 사업이라는 아름다운 표면의 간판보다도 먼저 일의적인 좋고 싫다는 감정의 시킴이 있을 것이 아닌가요. 결국 근본에 있어서는 감 정 제일 사업 제이일 것에요. 사랑은 ⎯ 그것이 장난이 아니고 사랑인 이상 ⎯ 도저히 사업을 통하여서만은 들 수 없는 것이요, 무엇보다도 먼저 피차 의 시각(視覺)을 통해서 드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왓시릿사의 행동을 갖다가 곧 감정 제일 사업 제이로 판단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소.”


    “그것이 솔직한 판단이지요. 그렇게 판단하지 않고는 왓시릿사의 행동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에요. 그리고 왓시릿사 자신의 본심으로 실상은 그런 판단을 받는 것이 본의가 아닐까요 ⎯ 결국 왓시릿사는 능금을 대단히 좋아 하였고 그 좋아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지요. 다만 그 는 심히 약고 영리한 까닭에 그것을 표현함에 사업이라는 방패를 써서 교묘 하게 그 자신을 카무프라주하고 그의 체면을 보존하려고 하였을 뿐이지 요.”


    감격된 구변으로 인하여 상기된 ‘나오미’의 얼굴은 책상 위에 촛불을 받 아 더한층 타는 듯이 보였다. 진한 눈썹 밑에 열정을 그득히 담은 눈동자는 마치 동물과 같이 교교한 광채를 던지고 불빛에 물든 머리카락은 그 주위의 붉은 열정의 윤곽을 뚜렷이 발상하고 있지 않는가!


    “결국 능금이구료.”


    “그럼은요. 능금이 아니고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지요.” “아, 능금 ⎯”


    나는 내 자신의 의견과 판단도 있었지만 그것을 정황하게 말하기를 피하고 그 이야기에는 그만 끝을 맺어 버리려고 이렇게 짧은 탄식을 하면서 거짓 하품을 하려 할 때에 문득 나의 팔의 시계가 눈에 띠었다.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웬일일까.” “글쎄요. 아마 공장에 무슨 변이 있나 보군요.” “다른 회원들은 웬일일고.”


    연구회의 시작될 시간이 훨씬 넘었고, 또 그곳이 S의 방임에 불구하고 회 원인 ‘나오미’와 나 두 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지도 이미 오래이 고 코론타이의 화제가 끝났을 그때까지도 S 자신은새려 다른 회원들의 자태 가 아직 한 사람도 안보임이 이상하여서 나는 궁금한 한편 초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공장의 폭발한 기세가 농후하여졌다더니 기어코 폭발되었나 부군요.” “글쎄, S는 그래서 늦는 것 같은데 ⎯” 나는 초조한 한편 또 무료도 하여서 중얼거리며 S가 펴놓고 간 책상 위의 ‘로오사’ 전기에 무심코 시선을 던지고 무의미하게 훑어 내려갔다.


    “능금이라니 말이지 로오사도 ⎯” 같이 쓸려 역시 ‘로오사’의 전기 위에 시선을 던진 ‘나오미’는 이렇게 화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가 본국에 돌아올 때에 사업을 위한 정책상 하는 수 없이 기묘한 연극 을 하여 뜻에 없는 능금을 딴 일이 있었지만 그것도 실상은 속의 속을 캐어 보면 전연 뜻에 없는 능금은 아니었겠지요 ⎯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나오미’의 말에 끌려 새삼스럽게 나는 그와 같이 시선을 책상 위편 벽 에 걸린 로오사의 초상으로 ⎯ 전등을 끊기우고 할 수 없이 희미한 촛불 속 에 뚜렷이 가난한 방안과 그 속에서 로오사를 말하고 있는 젊은 여자를 듬 짓이 내려다보고 있는 로오사의 초상으로 ⎯ 무심코 던지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러자 웬일인지 돌연히! 의외에도 로오사의 초상이 우리들의 시선을 거부 하는 듯이 걸렸던 그 자리를 떠나서 별안간 책상 위에 떨어졌던 것이다.


    순간, 책상 모서리에 부딪친 초상화판의 유리가 바싹 부서지고 같은 순간 에 화판 밑에 깔리운 촛불이 쓰러지며 방안은 별안간 어둠 속에 잠겨 버렸 다.


    “에그머니!”


    돌연히 놀란 ‘나오미’는 반사적으로 나에게 바싹 붙었다.


    “그에게 대하여 공연히 불손한 언사를 희롱한 것을 노여함이 아닌가.” 돌연한 변에 뜨끔하여서 이렇게 직각적으로 느끼며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잠자코 있던 나는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을 당하였다 ⎯ 별안간 목덜미와 얼 굴 위에 의외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피의 향 기가 나의 전신을 후끈하게 둘러쌌다.


    다음 순간 목덜미의 부드럽던 촉감은 든든한 압박감으로 변하고 얼굴에는 전면 뜨거운 피를 끼얹는 듯한 화끈한 김과 향기가 숨차게 흘러오고 ⎯ 입 술에는 타는 입술이 와서 맞닿았다.


    그리고 물론 동시에 다음과 같은 떨리는 ‘나오미’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후둑이는 그의 염통의 고동과 함께 구절구절 찢기면서 나의 귀를 스쳤던 것 이다.


    “안아주세요! 저를 힘껏 힘껏 좀 안아 주세요.” ⎯ 2월 10일 ❋ 삼천리 193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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