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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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 강경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23:11
1935년作 母子 강경애 1935년 개벽 1 민현기 편, 일제강점기 항일독립투쟁소설 선집, 1989, 2월25일 계명대 출판부 눈이 펄펄 나리는 오늘 아침에 승호의 어머니는 백일 기침에 신음하는 어린 승호를 둘러 업고 문밖을 나섰다. 그가 중국인 상점 앞을 지나칠때 며칠 전에 어멈을 그만두고 쫓기어 나오듯이 친가로 정신없이 가던 자신을 굽어보며 오늘 또 친가에서 외모와 싸움을 하고 이렇게 나오게 되니 이젠 갈 곳이 없는 듯하였다. 그나마 그의 외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만 쳐다보고 그대로 딸자식이니 몇 해는 그만두고라도 몇 달은 보아주려니보다도 승호 의 백일 기침이 낫기까지는 있게 되려니 하였다가 그 역시 남인 애희네 보다도 못하지 않 음을 그는 눈물 겹게 생각하였다. 어디로 가나? 그는 우뚝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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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염 소타나 | 김동인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22:45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은 사십 오십 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다만, 이 지구상의 어떠한 곳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뿐은 있다―---이만치 알아두면 그만이다. 그런지라,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의 주인공 되는 백성수(白性洙)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 하여도 좋을 것이요 짐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모(胡某)나 기무라모(木村某) 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다만 사람이라 하는 동물을 주인공삼아 가지고 사람의 세상에서 생겨난 일인 줄만 알면……. 이러한 전제로써,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하자. * “기회(찬스)라 하는 것이 사람을 망하게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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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리디아 | 김동인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19:30
벌써 360여 년 전. 무대는 그때의 남유럽의 미술의 중심지라 할 T시. 3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혁혁히 빛나는 대화가 벤트론이 죽은 뒤에 한 달이라는 날짜가 지났습니다. 50년이라는 세월을 같이 즐기다가 갑자기 그 지아비를 잃어버린 늙은 미망인은 쓸쓸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해는 밝게 빛납니다. 바람도 알맞추 솔솔 붑니다. 사람들은 거리거리를 빼 곡이 차서 오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미망인에게는 성가시고 시끄럽게만 보였습니다. 너희들은 무엇이 기꺼우냐. 너희들은 너희들이 난 곳을 말대(末代)까지 자랑할 만한 위대한 생명 하나가 한 달 전에 문득 없어진 것을 모르느냐. 너희들은 무엇이 기꺼우냐. 석 달 동안을 참고 참아왔지만, 미망인은 시끄럽고 ‘있으면 있을수록 없는 남편의 생각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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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 강경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19:21
부자(父子) “이애, 큰아부지 만나거든 쌀 가져 온 인사를 하여라. 잠잠하고 있지 말고.” 저녁술을 놓고 나가는 아들의 뒷덜미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였다. 바위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잠잠히 나와 버리고 말았다. 사립문 밖을 나서는 길로 그는 홍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이나 무슨 기별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났던 것이다. 홍철의 집까지 온 그는 한참이나 주점주점하고 망설이다가 문안으로 들어서며 기침을 하였다. 뒤이어 방문이 열리며 내다보는 홍철의 아내는, “오십니까. 그런데 오늘도 무슨 기별이 없습니다그려.” 바위가 묻기 전에 앞질러 이런 걱정을 하며 어린애를 안고 나온다. “아무래도 무사치 않을 모양이에요. 그러기에 소식이 없지요 그만 내가 가볼까 하여요.” 바위는 언제나 홍철의 아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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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전 | 강경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18:58
채전(菜田) 어렴풋이 잠이 들었을 때 중얼중얼하는 소리에 수방이는 가만히 정신을 차려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안 살림에 대한 걱정인 듯 싶었다. 그래서 그는 포로로 눈이 감기다가 푸루룽하는 바람소리에 그는 또 다시 눈을 번쩍 떠서 문켠을 바라보았다. ‘아이 저 바람 저것을 어쩌나!’ 무의식간에 이렇게 중얼거리며 밤사이에 많이 떨어졌을 사과와 복숭아를 생각하였다. 이 생각을 하니 웬일인지 기뻤다. 무엇보다도 덜 익은 것이나마 배껏 먹을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번 바람에 저 실과가 다 떨어질 터이니……” “그러니 내 말이 그 말이얘요. 실과도 돈 값어치가 못 되고 채마니 뭐 변 변하오. 그러니까 일꾼을 줄여야 하지 않겠수.” “글쎄 나도 그런 생각이여. 그러나 지금 배추밭 부침 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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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이백원 | 강경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18:35
원고료 이백원(原稿料 二百圓) 친애하는 동생 K야. 간번 너의 편지는 반갑게 받아 읽었다. 그러고 약해졌던 너의 몸도 다소 튼튼해짐을 알았다. 기쁘다. 무어니 무어니해야 건강밖에 더 있느냐. K야, 졸업기를 앞둔 너는 기쁨보다도 괴롬이 앞서고 희망보다도 낙망을 하게 된다고? 오냐 네 환경이 그러하니 만큼 응당 그러하리라. 그러나 너는 그 괴롬과 낙망 가운데서 단연히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쁘고 희 망에 불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 K야, 네가 물은 바 이 언니의 연애관과 내지 결혼관은 간단하게 문장으로 표현할 만한 지식이 아직도 나는 부족하구나. 그러니 나는 요새 내가 지내는 생활 전부와 그 생활로부터 일어나는 나의 감정 전부를 아무 꾸밀 줄 모르는 서투른 문장으로 적어놓을 터이니 현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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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 김동인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18:21
“흰 구두를 지어야겠는데…….” 며칠 전에 K양이 자기의 숭배자들 가운데 싸여 앉아서 혼잣말 같이 이렇게 말할 때에 수철이는 그 수수께끼를 알아챘다. 그리고 변소에 가는 체하고 나와서 몰래 K양의 해져가는 누런 구두를 들고 겨냥을 해두었다. 그런 뒤에 손을 빨리 쓰느라고 자기는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한다고 하고 그 집을 나서서, 그길로 바로(이 도회에서도 제일류로 꼽는) S양화점에 가서 여자의 흰 구두 한 켤레를 맞추었다. 그리하여 오늘이 그 구두를 찾을 기한 날이었다. 조반을 먹은 뒤에 주인집을 나서서(이발소에 들러서 면도나 할까 하였으 나)시간이 바빠서 달음박질하다시피 구둣방까지 갔다. 구두는 벌써 되어 있었다. 끝이 뾰족하고 뒤가 드높으며 그 구두 허리의 곡선이라든지 뒤축의 높이라든지 어디 내놓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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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감과 러브 레터 | 현진건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17:49
C 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하는 것처럼 아모말 없이 눈살로 쏘기만 하다가 한참 만에야 그 편지를 끄집어내어 학생의 코앞에 동댕이를 치며, “이건 누구한테 오는 거냐?” 하고 문초를 시작한다. 앞장에 제 이름이 쓰였는지라, “저한테 온 것이야요.” 하고 대답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발신인이 누구인 것을 채쳐 묻는다. 그런 편지의 항용으로 발신인의 성명이 똑똑치 않기 때문에 주저주저하다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내대일 양이면, “너한테 오는 것을 네가 모른단 말이냐?” 고 불호령을 나린 뒤에 또 사연을 읽어 보라 하여 무심한 학생이 나직나직 하나마 꿀 같은 구절을 입술에 올리면 B 여사의 역정은 더욱 심해져서 어느 놈의 소위인 것을 기어이 알려 한다. 기실 보도 듣도 못한 남성의 한 노릇이요 자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