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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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부자 | 백신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2:11
하나 남았던 그의 어머니마저 죽어버리자 그대로 먹고 살만하던 살림이 구 멍 뚫린 독 속에 부은 물같이 솔솔솔 어느 구멍을 막아야 될지 분별할 틈도 없이 모조리 빠져 달아나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어찌된 심판인지 경춘(敬 春)이라는 뚜렷한 본 이름이 있으면서도 ‘택부자’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 한 것이다. 이왕 별명을 가지는 판이면 같은 값에 ‘꼴조동이’, ‘생멸치’, ‘뺑 보’라는 등 그리 아름답지 못하고 빈상(貧相)인 별명보다는 귀에도 거슬리 지 않게 들리고 점잖스럽고 그 위에 복스러운 부자라는 두자까지 붙어 ‘택 부자’라고 별명을 가지는 편이 그리 해롭지는 않을 것이건만 웬일인지 불 리우는 그 자체인 경춘이는 몹시 듣기 싫어하였다. 동리에서 그래도 학교나 꽤 다니던 젊은 아이들도 ‘택부자’라면 성을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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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이 | 백신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1:54
유록 저고리 다홍 치마에 연지 찍고 분 바르고 최서방에게 시집오던 그 날부터 이때까지 열네 해 동안이나 불리어오던 복선이라는 그 이름 대신 ‘최서방네 각시’ 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울타리 밑에서 동리 아기들 소꿉놀이에 서투른 어린 솜씨로 만든 ‘풀각시’ 같은 복선이다. 가름한 얼굴이라든지 호리호리한 몸맵시며 동글동글한 눈동자 소복한 코끝이며 다문다문이 꼭꼭 박힌 이빨 모두가 어느편으로 보아도 소꿉놀이에 나오는 각시 그대로였다. 지금은 최서방네 각시인 복선의 맏되는 복련이도 열네 살 되는 가을에 남의 집에 머슴살이하는 ‘김도령’에게 시집을 갔다가 불행히도 사들사들 마르기 시작하더니 단 일 넌도 못 되어 애처롭게 죽고 말았었다.그러므로 그들의 부모는 복선이도 일찍 시집을 보냈다가 복련이처럼 죽게 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