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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선이 | 백신애
    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1:54

    유록 저고리 다홍 치마에 연지 찍고 분 바르고 최서방에게 시집오던 그 날부터 이때까지 열네 해 동안이나 불리어오던 복선이라는 그 이름 대신 ‘최서방네 각시’ 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울타리 밑에서 동리 아기들 소꿉놀이에 서투른 어린 솜씨로 만든 ‘풀각시’ 같은 복선이다. 가름한 얼굴이라든지 호리호리한 몸맵시며 동글동글한 눈동자 소복한 코끝이며 다문다문이 꼭꼭 박힌 이빨 모두가 어느편으로 보아도 소꿉놀이에 나오는 각시 그대로였다. 지금은 최서방네 각시인 복선의 맏되는 복련이도 열네 살 되는 가을에 남의 집에 머슴살이하는 ‘김도령’에게 시집을 갔다가 불행히도 사들사들 마르기 시작하더니 단 일 넌도 못 되어 애처롭게 죽고 말았었다.그러므로 그들의 부모는 복선이도 일찍 시집을 보냈다가 복련이처럼 죽게 될 까하여 많이 키워가지고 성내의 조금 맑은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생각하였으나 한 탯줄에 다섯이나 딸을 낳은 그의 부모라 조금 그럼직한 혼인 말이 나면 두 귀가 번쩍 열리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최서방에게도 그의 부모는 반기듯이 응하여 단 한말에 시집을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최서방은 전에 철로공부 노릇도 해 왔고 지금은 품팔이 일꾼이라 머리도 깎았고 일하러 나갈 때는 누런 ‘골덴’ 바지도 입고 지까다비도 신고 하니 큰딸의 남편 김도령보다는 겉만이라도 나을 뿐 아니라 얼굴도 미끈한데다가 큰딸의 시집과 같이 층층시하가 아니라 단 하나 시어머니뿐인 단출한 식구였으므로 시집을 보내면 좀 편하리! 한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딱한 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복선이 하나 입이라도 덜어버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짐을 하나 벗게 되는 것이 됨으로 이왕 보내야할 시집이니 이삼년 더 키워서 보내나 마찬가지일 것이니 맏형도 죽은 것도 제 명이오 제 팔자이지 열네 살에 시집갔다고 죽었을 리야 있 었겠나 하는 것이다.


    복선이만 해도 나면서부터 오늘까지 보리밥덩이라도 맘껏 먹어보지도 못했고 굶음에 절여진 그다. 시집을 가면 일도 많이 하지 않을 것이고 밥도 많이 먹어볼 수 있고 그뿐인가, 지금까지 자기가 먹던 몇 숟갈로 동생들의 배를 채운다하여 시집가면 어떻고 어떻다는 갓을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또 몰랐었다.


    시집가는 날 분 바르고 좋은 옷 입고 하는 것이 명절을 만난 것 같아 서 동리 순네 어머니가 쪽을 올려주고 할 때는 엉둥멍둥하면서도 기쁜 것 같아 곱게 차린 모양을 동리로 다니며 남들에게 보이고 싶기까지 하였다.


    단방 한칸 정주 한칸인 오막살이일망정 남편도 끼끔했고 시어머니도 자별하게 인자하였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딱한 것은 벌써 나이 찬 남편이 밤이면 추군추군이 굴어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다.


    일은 비록 고달프고 배는 항상 굶주려도 저녁 먹고 등잔불 끄고 동생들 과 같이 옹게증게 누워 자던 옛날이 그리웠다. 어떤 날 밤은 참다 못하여 휴휴 흐느껴 울어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도 꿀꺽 울음소리를 삼키고 두 팔만을 시어머니 곁으로 파고들 듯 잠이 들기도 하였다.


    최서방은 이곳저곳 일터를 찾다가 마침 성내에 들어가서 정미소의 일꾼으로 쓰이게 되어 하루 사십 전 이상 일원까지 벌이하게 되는 날도 있게 되므로 이따금 간고기마리도 사오고 흰쌀도 팔아옴으로 시집 오던 처음보다는 훨씬 살기가 나아졌다.


    이러는 사이에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 복선이도 제법 노랑머리쪽이 어 울려졌다. 그러나 ‘풀각시’ 같이 거칠어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어린 각시라고 웃었다.


    최서방이 낮에 성내로 일하러 간 후로는 한 가지 두통거리가 생겨났다.


    그것은 동리 총각들 때문이었다. 불과 오십호 밖에 살지 않는 그 산촌에 있어서는 복선이가 젊은 남자들이 추군추군이 따라다니기도 하였다. 그래도 복선이는 치마꼬리를 휘어잡고 임설을 담은 채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제 집 일만 부지런히 한날같이 살아갔다.


    “이번 추석에는 임자두 비단저고리 하나 해줄까…” 시집온 지 두 해 되는 팔월 초생에 최서방이 일터로 나갈 때 웃으며 복선이에게 이렇게 약속하였다.


    “아이구 내야 소용없어. 당신의 옷이나 해 입지!


    하며 얼굴을 붉혔다.


    “내야 옷이 있는데 이번은 o 은 것 바꾸어다 주지…."


    최서방은 싱긋싱긋 웃으며 집을 나갔다. 복선이는 사립문을 나가는 최서방의 지까다비 신은 발자취 소리를 들으며 “해행!”


    하고 웃었다.


    입으로 비록 사양은하였을망정 속으로는 무척 기뻐했던 것이었다.


    비단저고리라 해도 인조견임에는 틀림이 없을망정 그는 분홍 저고리 검정(보일 여름 웃감의 하나. 얇고 고운 바탕에 조금 배게 굵은 무늬가 있다)치마가 소원소원이었으나 시집온 지 두 해가 되어도 아직 그 소원을 풀지 못했던 것이다.


    그 날은 유별나게도 가슴이 뛰놀며 싱긋 웃고 나가던 최서방의 모양이 마음에 무척 좋게 여기어지며 어서 그 날 해가 지면 정말 어떤 옷감을 가 져올까… 하고 눈이 감기도록 기다렸다. 이렇게 남편을 기다린 적도 시집온 지 처음인 것 같아서 공연이 마음이 분주하였다. 그는 저녁때에 시어머니 놀러 나간 틈을 타서 한 짝 밖에 없는 소탕 장롱을 열고 자기 옷을 챙겨 보았다. 시집오던 날 입었던 유록저고리만이 툭진 무명옷 틈에 끼어 있는 복선의 단 한 가지 ‘치레 잘 매만져서 모양을 내는 일’ 이었다. 그는 금년 추석에도 그 저고리를 입으려고 생각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아이고 이번 추석에는 분홍 저고리 입겠구나… … ’'


    하며 바쁘게 주름살이 깊어진 유록 저고리를 한 팔 끼어 보았다. 그리고 “해행."


    하고 웃고는 빨리 장 속에 집어 넣고 밖으로 나왔다. 웬일인지 그 날은 최서방이 날마다 돌아오는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 았다.


    “오늘은 일을 마치고 옷감을 바꾸느라고 늦게 되는가 보다…….” 시어머니와 복선이는 불안한 가슴을 진정하며 저녁을 마쳤다.


    “행여나 길에서 땅꾼에게 빼앗기지나 않았는가·…….” 밤이 깊어질수록 복선이는 걱정이 되었다.


    “흐흥 올 추석에는 친정에도 놀러 갔다 오너라. 시집을 와도 끊은 저고리 하나 얻어 입지 못했는데 설마 올 게야.” 시어머니가 채 입을 닫기 전에 갑자기 문전이 요란해졌다.


    “거 누군가?”


    시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지게문을 열어 젖혔다. 복선이도 가슴이 덜렁하여 벌떡 일어나 뜰로 뛰어내려갔다.


    “최서방댁 있소? 어서 이리 좀 나오.” 그 말소리는 몹시 컸다.


    “이 집에 누가 있소? 방금 최서방이 큰일이 났으니 빨리 나하고 갑시다!” 시어머니와 복선이는 열어 젖힌 지게문을 닫힐 줄도 모르고 무슨 영문인지 더 물어 볼 말도 나오지 않았다. 허둥지둥 뛰어 나갔다.


    “최서방이 지금 기계에 치여서 말이 아니오.” 달음박질을 쳐, 산비탈길을 내려오는 복선이는 가보지 못한 성내 가는 길이었지마는 넓은 한 줄기 길과 같이 눈앞에 뻗히어 있었다. 끊은 옷감 떠오마던 최서방은 정미소 기계에 치여 즉사를 하고 만 것이었다.


    -<신가정>(193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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