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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더지 | 이무영
    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1:28

    1


    장앳말 권 서방네가 아들을 따라 서울로 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동리 사람 들은 너나 할것없이 기차 놓친 사람들이 호기있게 달리는 차를 바라다보듯 등성이 너머 산부리의 두 집 뜸을 올려다보고 치어다보고 하는 것이었다.


    아낙네들이 특히 더했다.


    “아니, 삼성이네가 서울로 아주 간다면서유?”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이야기까지도 단정을 해서 말하는 법이 없는 이 지 방 사람들은 자기 눈, 귀로 보고 듣고 한 일이건만 이렇게들 떼놓고 한마디 건네본다. 혹시 상대가 아니라고 하기만 하면 자신이 없으면서도 기를 쓰고 그러니라고 우겨댈 판이지만 대개는 이렇게 수작을 붙이는 것이다.


    “그렇다네나. 누군 팔자가 좋아서 그런 자식이 태어났누. 그저 사람은 늦 팔자가 제일이니 풋고추 못 먹었다구 앵해할 것 없다니까 ─ 어려선 뒤지지 두 않는다구 그렇게 성화를 대더니만 늙바탕에 가 그 자식 덕을 보잖나 베.”


    “글씨 말여유. 정부인 마냄두 나막신 끌구 나온다는 가을철에두 즈 아버 진 곤두박질을 하구 다니는데 눈치만 사알살 보구 베실베실 겉돌던 그 사람 이 즈 아버지 호강 시킬 줄 누가 알았어유.” “그래, 말 새낀 나건 제주도로 보내구 사람의 새낀 서울로 보내랬다더니 그 말이 옳긴 옳군. 그야말루 개똥밭에 인물 나잖았어. 삼정승 사괴지 말구 맘을 바루 가지랬다구 다 즈 아버지 덕이지! 평생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않더니만 늙바탕에 그런 복받이를 하는군그랴.” 마침 가을걷이도 거의 끝날 무렵이기도 하여 사랑에고 우물에고 모여앉기 만 하면 권 서방네 이야기였다.


    하기는 부러워할 만도 할 것이 평생을 두고 손톱이 자랄 새가 없도록 일을 해서 가을에 가서는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이 장앳말 농군들한테는 꿈 같은 이야기다. 농사 짓기가 싫다고 어려서 집을 뛰쳐나간 외아들 삼성이가 운이 좋아서 굉장한 양옥을 사고는 늙은 부모를 모셔간다는 것이다.


    풍이 아니라 장앳말에서도 직접 가본 사람도 있다. 백여 평이나 되는 뜰에 는 나무가 가득하고 연못에는 손바닥만큼씩한 금붕어가 놀고 아침 저녁으로 지프차가 모시러 오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 용 됐네 용 됐어! 식모가 둘씩이나 되구 술두 우린 이름두 모를 양주만 내오구. 잠시 술을 먹는 동안에두 전화가 쉴새없이 오구…” 면서기로 있는 동찬이가 갔다 와서 하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잘살아?”


    “암! 굉장해! 아주 굉장해! 여편네두 양단으루만 칠칠 감구 금강석 반지 를 두 개나 끼었데나. 그런 팔잘 타구난 사람더러 두더쥐처럼 땅을 파랬으 니 들어먹을 게 뭔가. 자넨 고향을 뛰쳐나온 보람이 있네 그랬더니만, 그 사람두 그러데나. 개구리가 주저앉을 제는 멀리 뛰자는 뜻이었다구. 아주 정말 굉장해!”


    “그래 옛말 그른 데 없어. 큰 고기가 되자면 그저 큰물에서 놀아야느니!


    등어리가 커야 고름두 담기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런 두메 구석에 처박 힌 채 백 년을 살아보지. 황모 꼬리 될까봐서? 그저 뉘탓 뉘탓 할 것 없어.


    다 저 못나서 그렇지!”


    삼성이에 대한 부러움은 자기 한탄으로 떨어져버린다.


    거기에 또 권 서방이 동리를 뜨면서 작별잔치를 베푼다는 것이다. 집에서 기르던 도야지 세 마리 중 두 마리는 어우리로 주고 중돝 한 마리를 잡아서 온통 잔치에 쓴다는 것이다. 그것도 삼성이가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걷음새를 한답시고 가으내 북더기 속에 살았다지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했던 뀜질 치다꺼리를 하고 나니 다들 빈손이나 진배없었다.


    차라리 그나마도 없을 때가 맘이 편했다.


    곡식이랍시고 몇 가마 들여놓고 나니 수득세다, 물세다, 비료값이다, 군경 원호비다, 지서 대책위원회비, 호별세에, 가옥세, 전근비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세금과 잡부금을 어떻게 떼내며 보릿고개까지 양도를 대자면 모기 다리 하나로 동리잔치를 지내야 할 판이라 마음만 쓰여진다.


    말이 가을이지 정말 그림의 떡이었다. 너나없이 여름 치르고 난 농군들의 얼굴은 매미껍질처럼 핏기들이 없었다. 이 궁한 판에 고기 국물이라도 얻어 먹게 되니 권 서방네 작별 잔칫날이 기다려질밖에 없다.


    “언제라나?”


    “언젠 뭘 언제. 오늘 저녁에 한다구 지금 그릇 얻어 날르구 법석인데…” “젠장, 오늘 배 한 번 축여보나부다!” 아침부터 온 동리가 떠들썩했다.


    2


    장앳말은 그만두고 근동 일대가 이렇듯 부러워하는 권 서방네지만 실상 당 자인 권 서방은 그래도 무엇이 못마땅한지 신푸녕해가지는 비슬비슬 집 밖 으로 겉돌고 있다.


    이 몇 해를 두고 장앳말에서는 어느 해치고서 이농가가 없은 적이 없었다.


    말은 농지개혁을 했다지만 생산은 그대로 있고, 아니 토지의 산화와 종자 의 자연퇴화, 노력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오히려 감소되고 있는 데 비해서 생필품의 가격이 오르고 보니 자연 지출은 반비례로 늘어가는 데서 분배받은 토지는 옛날 지주한테로 돌아 들어가는 형편이었다.


    말은 비료 배급이라지만 배급을 받는 것은 시정 상인이요, 농군들은 몇 다 리 거친 비싼 비료를 상인들한테 사야만 하는 것이다.


    ‘적기배급’이니‘공정가격’이니를 아무리 떠들어보았자 군이나 면에서 도 어느 낮도깨비가 언제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통 자기네도 모른다는 것이 다.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래두 초장부터 설치긴 ─ 이건 저의 농사나 되는 듯이 배 놓아라, 감 놓아라, 종자가 어떻구 퇴비 걱정, 가마 걱정까지 하려 들지! 숫제 가만히 들이나 있어주었으면 좋으련만 툭하면 오너라 가거라지!” 그러나 아무리 투덜대어보았자 그 식이 장식이었다.


    응당 없어졌어야 했을‘장릿벼’니,‘풋바심’이니‘색거리’니 하는 말들 이 농가에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이농가가 근절될 수도 없었다.


    금년만 해도 덕보네가 농사 다 지어놓고서 낫도 대어보지 못한 채 그대로 청주 처삼촌을 장대고 동리를 떠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권 서방네는 달랐다. 살지 못해서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호강을 하러 서울로 가는 이였다. 사실 모두 부러워할 만도 한 것이 해방은 그만두 고 6‧25 이후만 하더라도 삼십 호에 불과한 이 장앳말에서 일곱 집이나 동리 를 떴지만 살길이 틔어서 동리를 뜨기는 권 서방이 처음이던 것이다.


    그러니 호기있게 뽐낼 만도 한 일이었다.


    그러나 권 서방은 통 그런 티를 안 보인다. 호기가 있기는커녕 날개 부러 진 새처럼 어깨가 축하니 처져서 지짐질을 한다, 돼지를 삶는다, 온 동리가 떠들썩하건만 부엌에는 근접도 않고 마당을 거니는 눈치더니 어디로인지 사 라져버렸던 것이다.


    누구고 동리를 뜨는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모두 남의 일 같지 가 않아서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부자지를 맞잡고 큰 친구들이었다. 세상 이 날로 강박해져서 그렇지 울도 튼 채 살아온 사이들이다. 네것 내것도 별 로 없었다.


    “나 호박 좀 따가네!”


    하고 담 너머로 소리를 치면,


    “이 사람, 따가면 따갔지 아뢸 건 뭔가, 저쪽 끝으로 애호박이 두어 개 달렸느니!”


    이렇게 맞소리를 치던 사이요,


    “아니, 자네네 감잔 제법 알이 들었데나, 자네 불알만큼은 해.” “에끼, 이 사람! 좀 캐가지구 갈 께지? 우린 벌써 손댄 지 오래다네.” “그렇잖아두 여남은 개 캐가지구 가네.” “어어, 잘했네!”


    이렇게 살던 사이다.


    이 정든 친구들이 솥을 떼어 걸머지고는 어린것들은 앞세우고 동리를 뜨는 것이었다. 떠날 때는 누구나 돈을 벌기만 하면 다시 돌아오겠노라 했었다.


    말뿐이 아니다. 그들의 염원은 웬만큼만 형편이 피이면 고향에 돌아와 여 생을 보내는 일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땀과 눈물이 밴 농토를 되찾고 조상 들이 묻힌 곁에 가서 눕는 것이 소원이었었다.


    그러나 한 번 떠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해방 전은 더 말할 것도 없었지 마는 해방이 되고도 장앳말을 떠난 사람은 되돌아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하나가 있었지만 굶주리던 끝에 병까지 들어 정거장에서 기어오듯 하 다가 무너미 고개를 넘지도 못하고 숨을 걷었었다.


    외아들을 6‧25에 죽이고 품이나 팔아먹겠노라 조치원으로 갔던 원 첨지 내 외였다. 할멈도 객지에 화장을 하고 외톨이로 굴다가 뼈나 고향땅에 묻겠노 라 장앳말을 찾아 오다가 정든 동리를 내려다보며 숨을 걷었었던 것이다.


    그런 뒤로는 누구나 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온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잘 가우. 가서 몸이나 성히 있수. 고향을 잊지 말구…” 고향 떠나는 사람을 위해서 대개는 동구 밖 무너미 고개까지 배웅들을 해 주었었다. 고개 마루턱에서 나누는 이런 작별인사가 그대로 그들의 영이별 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돈 벌거든 고향에 다시 와 삽시다!” “그러자구 가는 거지!”


    말들은 이렇게 하지만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살아서 다시 만나지 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래서 누구고가 고향을 뜨는 날이면 떠 나가는 사람들보다도 보내는 사람들이 더 언짢아하던 것이다. 남의 일 같지 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내가 뜰 차례지!’


    누구나가 이런 생각들이었었다. 그래서 그런 날은 온 동리가 마치 떼초상 이나 난 것처럼 슬픔에 잠기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은 정반대였다. 보내는 사람들은 흥겨워하는데 신바람이 나야 할 사람이 되레 시무룩해하는 것이다. 오다가다 만나서, “그래 얼마나 좋은가?”


    하고 어렸을 적 친구들이 치하를 해도, “좋아?”


    숫제 퉁명을 부린다.


    “그럼 좋지 않구! 자네야말루 이 장앳말 복을 왼통 통차지한 셈이네! 인 저 우린 바랄 것두 없어! 자네가 도매금으루 다 넘겨갔거든!


    말만이 아니라 모두들 진심으로 이렇게 부러워하던 것이다. 그러나 권 서 방은 그런 말을 들은 체도 않고서,


    “아니 그래, 대대루 살던 제 고향 뜨는데 좋단 말인가?” 이것은 사뭇 시비조다.


    “여북이나 복을 못 타구나서 제 조상이 대대루 묻힌 고향을 등지구 그 살 얼음판 같은 서울 바닥으루 쫓겨나겠는가? 거 백사지 땅으루 ─ 뭐니뭐니 해두 한 서방 섬기는 게 계집으룬 상팔자구, 조상이 물려준 가대 지키는 게 복 중엔 상복이니! 팔자 중엔 상팔자구! 모르는 사람들은 부러워할지 모르 지만 남이 진 곡식에 남이 지어준 밥 먹는 게 좋은 팔잔 못 되느니! 그저 사람은 제 운력에 사는 게 젤 존 팔자니…” 마치 살다 못해서 남의 집 드난이나 살러 가는 듯싶은 말투다.


    그러나 권 서방의 이런 말을 동리 사람들은 또 자기네대로 해석을 하던 것 이다.


    “그 사람 공연히 똥꾸멍으루 호박씨 까는 수작이지, 안 좋긴 뭐가 안 좋 아? 게딱지 같은 촌가에 살다가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식모가 둘씩 셋씩 되 구, 아침에 일어나면 영감마님 기침하셨소이까? 하구서 세숫물을 떠다 바친 다, 기름이 질질 흐르는 쌀밥에, 고기에, 생선에, 상다리가 척척 휘도록 만 수성찬을 차려다 대령하겠다… 아 먹어지자면 술이 없겠나 떡이 없겠나? 그 야말루 상감님 부럽잖지만 괜히 하는 소리야! 아무러면 일년내 두더쥐처럼 땅만 파는 신세에다 대?”


    “그럼, 다 하는 소리지!”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된 사람이니…그 사람이 사람이 된 것은 딴사람 같아 보게나.


    그렇게 뽐내구 서울엔 가게 됐구 하니 희짜두 놓구 풍두 치구 해서 거드럭 대련만 다같이 고생하던 사람들은 두구 자기 혼자 잘돼 가니까 그게 맘에 송구스러워서 귀양살이나 가는 듯이 우는 소리를 하거든! 그 사람이 그런 데가 장하니, 장해!”


    이렇게 앞질러서까지 선의로 해석해주기도 했지만 아들로부터 서울로 올라 오라는 편지를 받은 이후의 권 서방의 심정은 이렇듯 단순한 것은 아니었 다.


    작년 겨울 삼성이가 집에 다니러 왔을 때도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했었다.


    요새 좀 셈이 펴이니 내년 봄쯤에는 품값도 안 나오는 농사 집어치우고 서 울로 올라오라던 것이었다. 삼성이는 부대에 채소, 콩나물 같은 부식을 대 고 있었지만 무슨 브로커를 한 것이 뜻밖에도 성공을 해서 돈천만환이나 벌 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만 갖고 잘 굴리면 아버지 어머닌 평생 걱정은 없다고 큰소리를 하고 간 후로는 할멈은 신바람이 나서 서울 서울 했지만, 권 영감은, “말이 그렇지, 햇비둘기 등성이 넘었겠다구? 제가 벌면 얼마나 벌었을라 구! 제 식구만 해두 애들이 셋에, 부리는 애까지 있다니 여섯 식구가 아닌 가! 그저 우리 걱정을랑 말구서 저희들이나 끽소리 없이 살라구 그래!” 마치 남의 말 하듯 한 권 서방이다. 서울 소리에 설치고 나서는 할멈을 주 장질하느라고 한 소리이기도 했지만 권 서방은 자식의 형편이 좀 피이어 늙 은 내외를 불러올려 간다 해도 지척지척 따라설 생각이 아니었다.


    첫째 자기 자식이지만 권 서방은 삼성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약게는 굴지 만 남을 휘감아먹는 버릇이 어려서부터 있던 것이다. 하다못해 밭매기를 해 도 그랬다. 아비 눈 속이기에만 이골이 났지 진득하니 일에 집착을 못하는 성격이었다. 어려서 저희들끼리 노는 것을 보아도 판판이 남의 종애만 곯렸 었다.


    참외 서리를 해도 저는 옷만 맡고 있고 어린것을 꾀어 발가벗겨서 밭에 들 여보낸다. 들키면 옷만 갖고 도망을 쳐서 저만 쏙 빠져버린다. 이런 꾀가 자라서 결국 삼성이는 농사를 내어던지고 집을 나가버렸지만, 콩 심어 콩 걷고 팥 심어 팥 걷이 할 줄밖에 모르는 권 서방한테는 박덩굴에서 수박을 따는 재주를 피우는 삼성이가 마음에 들지도 않던 것이다.


    “다른 것이 도둑눔이 아니니라. 씨 안 뿌리고 추수해 먹자는 심사가 바루 도둑눔의 심사! 공짜 바라는 게 바루 도둑눔이란 말야…” 아들의 그런 일면을 발견한 후부터 권 서방은 아들과 마주앉기만 하면 이 렇게 타일렀었다.


    “너 노름꾼 잘사는 것 보았더냐? 늘 따지! 늘 따는 것 같지? 허지만 공으 루 들어온 재물은 공으루 없어져! 제것만 갖구 나감 또 좋게시리? 물구 나 가! 물구서! 그런 맘보 갖군 농사꾼은 못 되느니라!” “아니, 왜 걔가 농사꾼 되기가 소원이래유? 그 알량한 농사꾼 될까봐 겁 나우! 남들은 이 짓 않구서두 잘만 먹구 삽디다.” 아내가 하던 소리다.


    “그래, 어떤 짓을 하구 먹구 살던고? 남의 집 중방 밑 파구서?” “왜 하필 도둑질에다 갖다붙여!”


    “그럼 뭐야? 제 처지 생각 않구 남의 것 넘겨다보는 게 도둑이지, 도둑은 뭐 다른 줄 알아? 이 멍추야! 농군의 자식이 농삿일 잘 배워서 농사질 생각 은 않구 괜시리 남 복 많이 잘사는 살림만 넘겨다보니 도둑눔이지 뭐야? 재 물이구 복이구 다 제가 구실을 해야만 차례가 오는 거야! 복받을 구실은 않 구서 복이 쏟아지기만 바래? 그물을 치구서야 고기 잡히길 바래야지? 그래 남들은 대학교까지 다니구서두 헤어나지를 못하는데 게우 그 잘난 눔의 시 골구석의 농업학교 다니구서 왼 세상 큰 재물이란 재물은 모두 탐을 내?” 삼성이가 석간수 다리 청부를 맡아서 돈 십오만환이나 벌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일년 가야 천환 한번 만져보기가 어려운 시골 구석에서 십오환만 돈을 벌 었고 보니 이웃간에도 이야깃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권 서방은 그 십오만환 돈을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저 십오만환이 저 자식 아주 버려줄 껄그랴!” 하고 외면을 했었다.


    “원 즈 아버지두! 나이 어린것이 그렇게 큰돈을 벌었으니 추어주진 못하 구, 웬 윽박지르기만 한대유!”


    못마땅해하는 할멈을 권 서방은,


    “거 등신 같은 소리 작작 해! 저게 숙맥이라니까, 숙매! 나라서 일 시킬 제 품이나 팔아먹으라구 시켰겠지, 단지 보름에 십오만환씩이나 벌어먹게 시켰을 상싶어서 하는 소리야? 제 눔이 누구 등을 치거나 쳤기에 그런 돈이 떨어졌지! 품삯을 잡아 떼었거나 물자를 덜 썼거나 그 멘서기눔하구 짰거 나, 안 그렇구야 그런 큰돈을 떨어질 리 없잖아? 보름 일에 십오만환씩 떨 어지게 나라의 돈을 내줬다면 그눔의 나라 망했지 별수 있던가베! 저 자식 인저 그 십오만환에 맛을 들였으니 틀렸어! 틀려! 공돈만 눈에 버언해서 되 나? 더구나 콩 심어 콩밖에 안 나는 농사에 취밀 붙이겠다구? 두구 봐요, 글쎄. 내 말이 그른가 ─ ”


    권 서방의 예언은 빗나가지 않았었다. 삼성이는 그 십오만환을 가지고 집 을 뛰쳐나가더니 어떻게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병정도 안 가고서 군복을 입 고 몇 해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고는 하던 것이다.


    그 끝에 어쩌다 모갯돈이 생겼다는 것이니 권 서방한테는 미덥지도 않았거 니와,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찐덥게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권 서방이 서울 간다는 게 그렇게 신푸녕해하는 데는 이보다도 더 큰 딴 이유가 있었다. 농터를 버리고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농터라야 논 엿 마지기에 밭 하루갈이가 있을 뿐이었지만 이 엿 마지기가 그야말로 육십 평생 피땀을 흘려 겨우 마련한 농토였다. 왜정 때는 감히 꿈도 못 꾸 었던 자작농이었다. 해방이 되자 한동안 무상으로 농토를 나누어준다고 했 지만 천지 이치가 공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 신념이 되어 있는 권 서 방한테는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었다.


    “무슨 눔의 팔자에 내 땅을 부쳐보랴.” 이렇게 체념을 하고 그저 꾸벅꾸벅 남의 소작을 해오는 권 서방 앞에 뜻밖 에도 희한한 기적이 나타났었다. 새로 선 우리 나라 정부가 지주들한테서 땅을 빼앗아서 연부로 작인들한테 판다는 것이다.


    “그건 말이 되는 말이야!”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연부로 준다는 말만은 권 서방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권 서방이 아직 어렸을 적 일이지만 왜정 때도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던 지라 제 땅은 평생 가져보지 못하느니라고 단념하고 있 던 권 서방은 신바람이 났던 것이다.


    물론 제가 부치던 땅은 작인한테 살 권리가 있다던 말대로는 안 되었지만 지주와 바꿈질을 해서 지금의 엿 마지기를 샀던 것이다. 이 마석지기밖에 안 되는 모래논을 그야말로 연차계획을 배토도 하고 환토도 해서 지금은 제 법 흙이 제 빛이었다. 남들이 상환미를 반도 못 물고 옛날 지주한테 빚을 쓰는 동안에도 권 서방은 이를 악물고 이것을 갚았었다.


    나이 육십에 오름길만으로 십리가 넘는 칠왕산 먼산나무를 해서 이십리나 되는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짚신 신는 풍습이 없어진 지도 오랜 장앳말이 다. 그러나 권 서방은 짚신도 삼아 신었고 담배도 반으로 줄였었다. 정말 눈을 뒤집어쓰고 상환을 끝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금년 봄이다.


    이 농터를 버리고 고향을 뜬다는 것이 권 서방한테는 참기 어려운 미련이 었다. 아니 고통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삼성이는 농터와 집 일체를 팔아버 리라는 것이다. 다 듣는다 해도 이것만은 죽어도 싫었다.


    “놔두면 누가 떼메고 간다더냐? 어우리로 해서 가을에 양식을 갖다 먹어 도 자미구… 그것만은 안 된다! 농토까지 팔아버리잔다면 난 안 간다… 가 겠으면 즈 어머니나 가우. 난 혼자서라두 여기서 살 테나!” 논 엿 마지기, 밭이 천이백 평에 밤갓 관리권까지 넘긴다면 백오십만환까 지 주겠다는 사람까지 나섰고 보니 이런 돈을 묻어둘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아들의 말이었다.


    “백오십만환이면 한 달에 팔부만 쳐두 십이만환이어요! 그만두 일년이면 백사십만환 아닙니까. 이런 구석에다 쌀 서너 가마 받자구 썩여서 뭘해 요?”


    이것이 아들의 주장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권 서방은 막무가내였다. 죽으면 죽었지 땅만은 파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들로 본다면 그만 돈을 시골에다 처박아둘 필요도 없었지만 사실 이만 돈도 당장 큰 보탬이 되어서였지만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래서 땅은 가장 착실한 성춘식한테 어우리로 주기로 하구 권서방네 세 식구만이 서울로 올라갔던 것이다.


    “이것두 다 갖다 쓰게나.”


    하구 권 서방은 가래며 써레, 괭이, 삽, 호미 등 농구는 물론 맷돌이다, 절구다, 키, 체, 심지어 자리를, 신골까지를 차곡차곡 챙기어주며 이렇게 말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지는 것도 잊지 않았었다.


    “허지만 아주 주는 것은 아닐세! 나 다시 내려올 땐 써서 없어지지 않는 건 다 내주어야 하내!”


    그리고 권 서방은 온 동리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서울로 올라갔던 것이다.


    3


    면서기 동찬이의 말대로는 아니었지만 아들의 집은 훌륭했다. 해방이 되자


    남들은 서울을 문턱 드나들 듯 한다지만 젊어서 공진회 구경차 꼭 한 번 와 본 일밖에는 없었다. 사실 평생 서울 가야 할 일이 없던 권 서방이기도 했 었다.


    말은 서울 구경을 했다지만 단 이틀에 공진회, 동물원, 한강철교, 남산 ─ 이렇게 끌려다녔었고 누가 마늘을 가져가면 노자를 뜯는다 해서 열 접은 갖 고 왔던 터라 그것을 파느라고 야시 구경조차도 못하고 내려온 터라 꿈에 떡맛 보듯 한 서울이었고 보니 옛날과 지금이 어떻게 달라진 것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저 분명한 것은 어마어마한 큰 집들이 많이 생겼다는 정도 였다.


    이런 권 서방한테 아들의 집 가치를 설명하란대도 무리였다.


    황토흙이었어야 할 봉당에 유리 같은 벽돌이 깔렸고 양회 이층집에 전화도 달렸고 목간통에, 조그만 연못도 있어 금붕어가 십여 마리 한가하니 헤엄치 고 있는 것만이 신기할 뿐이다.


    입으로 불지 않고 단추만 누르면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도 신기했고, 사돈과 칙간만은 멀수록 좋다는데 변소가 바로 건넌방과 붙어 있는 것을 희 한해할 정도다.


    말은 들었지만 서울 장안은 그만두고 대구 부산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 조화속이라고 감탄도 했다.


    샌님 ─ (권 서방은 서울로 오는 날로 샌님이란 벼슬을 했다)이 차지한 방 은 뒤 정원으로 면한 두 칸 방이었다. 무슨 칠을 했는지 장판이 눈이 부시 었다.


    글씨 족자는 까막눈인지라 누구의 글씨인지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었거니 와 강태공처럼 낚시를 연못에 드리우고 있는 그림은 정녕 팔자가 좋아보인 다. 아랫목에는 보료가 깔렸고 조그만 탁자에 재떨이며 궐련이며가 놓이게 마련이었다.


    아들 내외가 쓰는 안방과는 물론 손님 접대를 하는 사랑과도 등이 져서 한 적하기는 했지만 이 한적한 것이 샌님한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 다. 정말 무료했다.


    샌님은 서울에 오던 날 밤과 이튿날 아침 아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본 후로 는 아들을 못 보는 날이 허다했다. 언제 들어오는지도 몰랐고 언제 나가는 지도 몰랐다. 아들뿐이 아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도 많은지 며느리란 사람 도 어느 날 하루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다. 다섯, 셋, 젖먹이 ─ 이렇게 졸망한 것들만 집에 내동댕이치고는 어미란 것은 아침에 나가면 저녁이요, 낮에 나가면 밤중에나 돌아오는 것이다. 손자것들도 무슨 짐승이나 보듯 멀 찌감치서 바라다보기만 할 뿐 사흘 나흘이 가도 근접도 않으려 드는 것이 다.


    “이런 떡을 해먹을 집안이 있단 말인가?” 샌님은 울안에 갇힌 사자처럼 애꿎은 담배만 피웠다. 무료해지면 뜰로 내 려서 본다. 연못가에 서서 금붕어 노는 것을 바라다본다. 그러나 그것도 십 분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사흘째 되던 날은 뜰의 풀을 뽑기 시작했다. 땡볕 밑에서도 고추밭 을 서너 두럭씩 매던 솜씨의 샌님한테는 불과 오십 평 남짓한 뜨락의 풀쯤 진담배 한 대 내기 일도 못 되었다. 그나마 맨 쓸모없는 상나무에 꽃밭이어 서 풀이 날 지면도 없다. 열무솎음질을 하듯 했어도 반나절에 끝이 나고 만 다.


    그러고 나니 또 무료했다. 일년내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궂으면 또 궂은 대로 새벽부터 밤까지 손을 쉬어본 일이 없이 육십 평생을 살아온 샌님 ─ 아니 권 서방한테는 손발 붙들어 맨 채 가만히 앉아 있다는 것처럼 큰 고통 은 없었다.


    닷새도 못 되어서 샌님은 진이 족족 내리는 권태에 견디다 못하여 아들을 붙들고는,


    “얘야, 나 심심해 못견디겠구나, 뭐 무슨 소일거리나 없겠느냐?” 이렇게 하소연을 했더니 아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웃고만 있다.


    “아버지, 그러지 마시구 낼부터 어머니하구 구경이나 다니셔요. 애 어머 니더러 오늘 동물원에 뫼시구 가라구 그러지요.” 이렇게 해서 그날은 며느리를 따라 샌님은 마님이 된 할멈과 동물원 구경 을 갔었다. 모두가 희한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샌님은 조금도 유쾌한 줄을 몰랐다.


    첫째 며느리란 것이 엇나간 말망아지처럼 시부모와 겉돌려 드는 것이 괘씸 해 견딜 수가 없다.


    샌님은 이 며느리를 본 첫눈부터 마땅치가 않았다.


    나이깨나 먹은 것이 대체 머리가 그게 뭐냐 했다. 하릴없는 메추리 궁둥이 였다. 쥐 잡아 먹은 고양이처럼 입술은 새빨갛고, 손톱이 그대로 백정의 딸 손톱이었다.


    시골뜨기와 같이 다니는 것이 분명 창피한 눈치다. 동물원 안에 들어온 뒤 로는 마치 동행이 아니기나 한 것처럼 뚝 따고서 따로 다니는 것이었다.


    “얘, 저게 무슨 새냐?”


    눈치도 없는 할멈이 물을라치면,


    “부엉인가봐요.”


    하고는 좌우를 둘러보는 품이 정녕 누가 동행인 것을 눈치나 채지나 않나 해서인 것만 같다.


    샌님이 수정 앞 연못가에 서서,


    “거참, 물 많다. 그 물만 가졌으면 저 끝까지 논을 퍼두 물이 딸리진 않 겠다! 이런 연못을 그저 놀리다니! 거 잔디에서 콩이 나 팥이 나나? 그 넓 은 데다 잔딜 뭘했다구 그렇게 심더람! 저 잔디밭 하나에만두 대두콩 삼백 석은 너끈히 나겠다…”


    이런 소리를 하자 고기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꺼르르 웃어젖히었다.


    한 짓궂은 젊은 친구가,


    “그래 영감님, 잘 말해드릴게 논 한번 펴보시렵니까?” 하고 쓸까스르는데 진국인 샌님은,


    “허락만 받소! 말이 그렇지 논을 퍼서 졸몰 쭉 심어놔 보오! 아니 그래, 이대루 보는 것만 못할 상싶소! 거기다가 가을이 돼서 벼가 누우러니 익어 보구려. 배가 절루 부르지!”


    “거참, 좋겠는데요!”


    “암, 희한하지! 서울 사람들은 쌀나무가 어떻게 생겼느냔다면서유? 구경 시키구 추수하구 ─ ”


    샌님은 진정이었지만 또 한번 웃음판이 되었었다.


    이 시아버지의 추태가 서울 며느리의 기분을 아주 망쳐버린 것이다.


    “창피해요! 그만 가셔요!”


    며느리는 이렇게 독기있게 쏘아붙이고 회작회작 가버렸던 것이다.


    길을 모르고 보니 천생 따라설밖에는 없었다.


    그뒤부터는 샌님은 절대로 며느리를 따라서지 않았다. 아니 며느리 자신부 터도 앞장을 서려 들지 않았다. 계가 있다, 친구가 어쨌다. 구실은 얼마든 지 있었던 것이다.


    샌님은 혼자서 곧잘 집을 나왔다. 물으며 물으며 덕수궁을 찾았고 남산에 도 올라가 보았다. 화신상회에는 할멈과 같이 갔었다. 그래도 할멈은 어린 것들과 사귀어서 샌님처럼 못견딜 정도는 아닌 듯싶었다.


    “즈 할아버지두 고년하구 좀 사귀우. 조잘조잘 장마날 제비처럼 곧잘 지 껄이구 새새득대려 들면 또 어떻게 삽삽한지 몰라유, 천상 계집애란 할 수 없다니까유. 가위만 보면 싹똑거리려 들구, 요샌 또 제가 아길 낳는다구 배 가 아프다구 재술 하잖겠어유? 이웃집에 갔다가 애 낳은 걸 봤다나봐?” 무료하다 못해서 몸을 비비꼬고 있는 영감이 안타깝던지 할멈이 이렇게 위 로를 해주었다. 그래서 샌님은 금숙이년과 사귀기로 했다. 업어도 주고 끌 고 나가서 사탕도 사주고 하는 동안에 조손간에 친분이 생기었다. 금숙이년 도 곧잘 샌님 방으로 건너와서는 무릎에 앉아 조잘대게쯤 되었었다.


    그러나 친해지고 나니 또 걱정이 하나 생겼다. 옛날 이야기를 하라고 졸라 대는 것이었다.


    “어서 해, 할아버지! 응,”


    “옛날에 옛날에 ─ ”


    “응.”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응.”


    “……”


    “그런데?”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했어!”


    “……”


    따분한 노릇이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자랄 수 있는 복도 못 타고 난 샌님이었었다.


    샌님이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 나이에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장정들 처럼 일을 해야 했었다. 어쩌다 할머니를 붙들고 옛날 얘기를 해달라면, “얘가 미쳤나베! 내가 너하구서 얘기하구 있을 팔자가 된다던?” 하고 핀잔을 주기가 일쑤였다.


    “그러지 말구 할머니 한 자루만 해줘! 응, 할머니!” 떼를 쓰다가는 볼기짝 얻어치이기가 십상이었다.


    샌님의 할머니도 오늘의 샌님처럼 들은 이야기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철나기 전부터도 밭으로 논으로 시중을 들러 따라다녔고, 일곱 살 때는 벌 써 소꼴망태가 메어졌었다. 아홉 살에는 까치집 같은 삭정이 짐을 져야만 했던 샌님이었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터고 보니, 평생 또 한 권의 이야기책도 본 것이 없다. 샌님이 아는 이야기란 호랑이가 수수깡에 찔려서 죽었다는 이야기와, 놀부와 흥부, 그리고 어련무던하게만 아는 심청이 이야 기 정도였다. 이 셋을 다 팔아먹고 나니 그날로 동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며칠을 두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자니까, “또 심청이 얘기지 뭐! 그건 싫어! 한 걸 또 하구 또 하구 그래, 할아버 지! 나 갈테야!”


    이렇게 뺑소니를 치고 만다.


    눈을 감고도 파밭은 맬 수 있어도 접지 하나 못하는 샌님의 멋없는 손이었 다. 색종이를 가지고 와서 접지를 해달라다가는, “할아버진 바보야! 새 하나두 못 접어! 나만큼두 못한걸 뭐! 무슨 어른이 저래!”


    어린것의 말이라 그렇지 더없는 모욕이었다.


    그러나 샌님은 그 어떤 모욕에도 참고 견디어야 했었다. 샌님은 그만큼 무 능했던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낫질과 가래질과 모내기와 밭 갈이뿐이었었다.


    4


    요새의 샌님은 구경도 가지 않았다. 서울이 넓고 좋다지만 동물원과 덕수 궁, 남산, 화신상회 ─ 이렇게 보고 나니 그만이기도 했으려니와 어디 더 볼 데가 있다 한대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첫째, 그 숱한 자동차를 피하는 재간이 없었다. 아직 장정 나뭇짐을 지워 만 놓으면 살같이 비탈도 탈 수 있는 샌님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눔의 자동차 만 만나면 맥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 희한두 하더구나!”


    하고 샌님은 신기해했다.


    “내가 그렇게 몸이 둔한 사람이 아닌데 아 그눔의 자동차만 보면 고양이 앞에 쥐가 되는구나! 이쪽에서 빵 하기에 저쪽으루 피할라치면 아니 언제 벌썬 딴눔의 차가 또 빵하지 않니? 그래서 갈팡질팡하다가 보면 이건 숫제 자동차가 둘러 있는 한복판에 가 서있구나! 그냥이나 있더냐? 이눔들 좀 봐! 즈눔들이 날 가운데다 몰아넣고선 제가끔 욕을 퍼붓는구나!‘이눔의 늙 은이가 뒤지구 싶은가!’‘죽구 싶어!’이눔 들 좀 봐라! 그래 내가 죽구 싶댔어 언제? 내가 즈눔들한테 치여죽구 싶어서 서울을 왔단 말여?” “그러게 길을 건너실 땐 잘 보구 건너셔요.” 하고 아들이 일러드리려니까,


    “아따 얘야, 너두 서울 산다구 서울눔들 편을 드는구나! 내가 암만 빨리 보면 뭘하느냐, 자동차란 눔이 나보다 더 빨리 보구서 살처럼 내닫는 것두 빨리 봐?”


    “사람 건너가는 길이 있잖아요? 흰 줄을 쳤지요?” “글쎄, 다 그만둬! 자동차가 흰 줄을 그렇게 겁내는 줄 알아? 사람을 장 기쪽처럼 넘어뜨리구두 그대루 뺑소니만 잘 치더라! 서울눔두 그러는데 나 같은 시굴 늙은이야 그눔들 눈에 뵈기나 하겠느냐!” 샌님은 또 이런 불평도 한다.


    “그래, 시체 서울 사람들은 모두 발바닥에 가시가 백혔다던? 엎드러지면 코 닿을데두 자동차란 말야! 그 녀석들 그렇게두 자동차에 성화가 나건 숫 제 자동차 속에서 살지그랴? 밥두 거기서 먹구 똥두 거기서 싸구! 그럼 될 꺼 아니야? 죽어서두 자동차루만 간다니 아주 차 안에서 죽으면 그 차루 갈 것 아닌가? 그래 동대문서 한강다리까지가 이십리두 안 된다더구나? 사람이 그래 하루 이십리두 안 걷구 살어? 농군 네가 문전옥답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된다던? 다 오 마장 칠 마장 돼? 가구 오는 데만두 시오리 길이야! 전답에 가선 섰다가만 오던가? 갈아야지, 매야지, 제 논까지 물꼬까지만두 오리 십 리 돼요!”


    그러는가 하면 또,


    “하긴 걸을 맛두 없긴 하지! 길이란 걸을라치면 발뒤꿈치에서 몬지가 풀 썩풀썩 나야 걸을 맛두 있지, 이건 숫제 돌이로구나! 돌! 돌 위에다 집두 짓구, 돌 위루 다니구! 사람이 흙을 봐야 살지! 흙을 보면 사람이 착해지느 니라. 서울 사람들이 그렇게 모두 이악스럽게 강박한 게 다 흙을 못 봐서 그런 거야! 흙을! 흙을 보구, 흙을 만지면 자연시리 사람의 마음이 어질어 지는 법이니라. 그러기에 네 보렴! 착실한 농군치구서 맘 나쁜 사람이 있 던! 그런 농군들을 소처럼 일만 하느니, 소처럼 미련하니들 하지만 서두 그 게 미련한 게 아니니라, 어진 게지! 착한 거야!” 샌님은 이런 불평을 아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차차 나어지겠지…’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밤낮을 모르고 온종일 일만 하다가 갑자기 손이 무료해져서 그러 시니라 했다.


    그러나 아들의 예상은 어긋났다. 샌님의 불평은 조금도 덜해가지 않는다.


    아니 날로 심해갔다.


    이제는 숫제 화를 내는 것이었다.


    “노름꾼들뿐이더라!”


    하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오셨다는 이튿날 아침 막 신발을 신고 있는 아들 의 덜미를 치듯 샌님은 이렇게 화를 내던 것이다.


    “누가요, 아버지?”


    “누군 누구겠느냐? 너희눔들 말이다!” “네?”


    아들도 주춤했다. 간밤 집에서는 늦도록 마작을 했었다. 이기기 위한 마작 이 아니라 지기 위한 노름이었다. 뇌물이나 현금을 직접 수교하는 것보다 뒤탈도 없고 받는 사람도 떳떳하다 하여 요새 유행하는 수회 마작이었던 것 이다.


    이것을 보고 하는 소리리라 했다.


    “술 사주는 것보다 마작에 져주는 것이 일하기에 편해서 한 거야요.” 아들은 이렇게 설명을 했다.


    그러나 이 아들의 설명에 되레 샌님을 격노케 했던 것이다.


    “일부러 져주는 노름이 있다? 아니, 그럼 너 그 사람하구 무슨 못된 짓 궁리하는 게로구나? 너 이 집두 그렇게 해서 산 집이냐? 말을 해봐!” “이 집을 뭐 즈 아범이 재수가 좋아서 산 집인 줄 아세요?” 하고 옆에 섰던 며느리가 팩 하고 대어든다.


    “이 집에 아범 돈이란 단돈 십만환두 안 들어갔어요! 제가 산 집이어 요!”


    “네가?”


    “그럼요! 집 한 칸두 없이 셋방으루 굴러다닌다구 오빠가 사준 집이야 요!”


    “아니 그래, 그게 정말이냐?”


    하고 샌님은 아들한테도 대어든다.


    “네.”


    “에이끼, 못난 자식, 그래, 여북 못난 자식이 처남이 사준 집에 들어엎드 렸어? 예이끼, 치더린 자식! 난 시골루 간다! 참봉 곳집(상여집)에 가서 잘 망정 사둔네 집에 엎드렸어? 죽으면 죽었지! 난 싫다! 난 싫여! 에이, 퉤!


    퉤! 이눔아, 사둔집 덕 본 눔의 송장은 까마귀도 안 먹는다더라! 에이, 퉤 퉤! 아이 더러워!”


    아들과 며느리는 길길이 뛰는 샌님을 진정시키기에 진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아버진 시골루 도루 내려가시게 해요!” 며느리는 이렇게 아들을 구워삶았으나 아들은 들은 체도 않는다. 큰소리를 하고 모셔오기도 했으려니와 지금 세상에 드문 효자라고 친지간에도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지금 꾸미는 일 ─ 군수물자 불하를 받는 일에 협력을 하 고 있는 한 장교도 술김이기는 했지만, “권 형이 그런 효잔 줄은 정말 몰랐소! 동가홍상이지! 같은값이면 그런 효자한테 줘야지! 이것두 다 권 형 아버지 덕인 줄 아시오!” 이렇게 설설 승낙을 해주었던 것이다.


    “좀 지나시면 습관이 되니까 괜찮아.” 이렇게 아내를 달래었다.


    그러나 샌님의 화풀이는 날로 심해가기만 했다. 서울놈들은 모두가 건달놈 들이라는 것이다.


    “일정한 생화가 없이 빈들빈들 먹구 노는 눔들이 건달이지 뭐냐? 하는 일 없이 뭘 먹구 사는 게냐 말이다!”


    한번 나갔다 오면 반드시 이런 화풀이를 아들한테고 며느리한테 해대는 것 이다.


    “하는 일이 없긴 왜 없어요, 아버님두!” “아니 그래, 그눔들이 하는 일이 뭐란 말이냐 대관절?” “관리두 있구, 회사원두 있구, 장사하는 사람두 있구 다 있잖아요? 뭐 논 갈구 밭 매구 하는 것만이 일인가요.” 며느리가 못마땅해서 하는 소리였다.


    “아니 그래, 이른 새벽부터 공 치는 것이 일이란 말이냐?” “바둑 두는 게 나랏일이구 회사일이란 말이지? 새벽부터 바둑 두구 있는 게?”


    큰길에 나가면 새로 빌딩이 하나 섰다. 아래층에는 상점이요, 이층에 기원 과 다방이 차지를 하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를 가본 모양이었다.


    “그것두 육칠십 노인들이면 모르겠다. 새파라니 젊은 눔들이 그래 뭐 할 일이 없어서 새벽부터 바둑판을 놓구서 끙끙대구 있더란 말이지? 그런 게 나랏일이란 거냐? 나랏일?”


    “직업들을 못 얻어서 그래요. 지금 취직자리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 기보다두 더 어렵답니다. 직업이 없으니까 집에 징커니 엎드려 있을 수두 없구.”


    “직업이 없다? 왜 없어! 아니, 지금 농촌엔 사람이 없어서 야단인데 직업 이 없어?”


    샌님한테는 서울 사람들의 생활 전부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다방 구경을 하고 와서는,


    “원, 그런 시러베 아들눔들! 그래, 물 한 잔에 백환을 주구 사먹구 앉았 어? 거 댓진 풀어논 물 같은 걸 쓰기는 왜 또 그렇게 쓰냐?” “아니 아버지, 차 잡수어보셨어요?” “그렇다! 하두 많이들 들어앉아 사먹기에 맛이 어떻길래 그렇게 많이 사 람이 들끓는가 하구 들어봤더니만…아니 그래, 그것 장하답시구 사먹구 있 는 거지? 그래 너희들 말마따나 사내눔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와서 자랑삼아 앉았다지만 그 계집년들은 도대체 뭣하는 것들이야?” 이번에는 화살이 며느리한테로 갔다.


    “아니 그래, 계집년들두 직업이 없어서 그런 데 와 쭈그리고 앉았단 말 야? 제비새끼들처럼 사내눔하구 머리를 맞대구서 무슨 얘기가 그렇게 많아?


    그것들두 그래 직업 구해달라구 그러는 거냐?” “다 그래두 볼일이 있어 나왔겠지요.” “흥, 볼일? 아니 그래 ─ 살림하는 계집년이 밖에 나와서 남자하구 봐야 할 볼일이란 도대체 뭐냐? 제 서방 독약이나 먹이자는 궁리 아니면 밖으로 싸다니면서 할 얘기가 뭐냐 말야! 내 하두 기가 막혀서 세어봤다! 세어봤 어! 사내눔이 스물하난데 계집년이 열셋이나 되더구나! 그눔의 집 살림꼴 잘되겠다! 그저 내 성미대루 했으면 머리 끄덩일 끌어내서 한 밧줄에 옭아 가지구…”


    5


    처음 서슬 같아서는 금방이라두 시골로 되내려갈 듯싶던 샌님도 한 달 두 달 지나는 동안에 서울 생활에 좀 자리가 잡히던지 체념을 하는지도 몰라도 집 모퉁이 큰길 거리에 나가 앉아서는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으로 일과를 삼았다.


    아침만 먹으면 복덕방에 나가서 장기 두는 구경을 하구 점심때나 되어 들 어오는 수도 있었고, 골목 어귀에 송판을 버티어놓고 담배나 사탕이니를 파 는 늙은이한테 가서 몇 시간씩 앉았다 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무료해지면 손녀를 끌고 장충공원 약수터에 가는 것이 일이었다. 약수터에 갔다 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지게 타령이었다.


    “지겐 뭘하시게요?”


    “얘, 말 말어라, 그냥 낙엽이 푹푹 썩는구나! 갈퀴가 묻히겠더라! 그래 서울 사람들은 대체 뭔 궁릴 하기에 나무가 그렇게 썩두룩 보고만 있는 건 지 모르겠다. 지게하구 갈퀴만 장만해라, 내 겨우내 나문 대마! 조반 전에 한두 짐은 거뜬하니 하겠더구나! 불꽃은 저까지 구공탄에다 대? 그저 사람 사는 집엔 연기가 나야 하느니라. 연기가 서기란 말두 있잖더냐? 그게 말하 자면 사람이 살았다는 표적이거든! 사람의 입김과 마찬가진 거야! 화룻불을 담아두 그렇지! 잎재엔 불이 사는 법이니라! 석탄재에 불 살던? 그저 사람 은 재틸 먹어야 하는 법인데…내 언제 한짐 해올께니 때봐라! 불길이 얼마 나 존가.”


    “아이, 아버님두!”


    서울 며느리는 질색을 하면서도 설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설마가 어긋났다. 바람 한 점 없이 강추위가 며칠째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침이 다 되었어도 밖에 나간 채 들어오지를 않는다.


    길에도 나가 보았고 복덕방에도 가보았으나 보이지를 않더니 낙엽 한짐을 짊어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아니, 그게 ─ ”


    며느리가 먼저 기급을 했다.


    “그게 어서 났습니까…”


    아들도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긴 어서 나느냐. 했지!”


    “하다니요.”


    “아 얘야, 약수터루 올라가자면 그저 왼 산이 낙엽에 덮였는데 그러는구 나! 발이 푹푹 빠져!”


    “참 재주두 좋으시우! 서울 한복판에서 어디 가 저런 나물 했을꾸.” 할멈도 딱해서 하는 소리였다.


    할멈은 서울 와서 팔자가 늘어졌다. 그 진저리나는 절구질, 땡볕에 밭매기 하나만 않아도 살 것 같았다.


    “아니, 뭘루 하셨어요?”


    “뭘루 하긴 뭘루 하냐, 손으로 했지! 농군의 손은 갈퀴만 못할 줄 아더 냐? 갈퀴두 농군 손 본따서 만든 거야!” 활엽수 낙엽과 솔가리를 새끼 하나로만 맺고끊은 듯이 깡똥하니 묶었다.


    갓에다 청솔 가지를 꺾어 대기는 했다지만 인절미처럼 아담스럽던 것이다.


    “이렇데 하면 하루 열 짐은 낮잠 자가면서 하겠더라!” “그러나 들키면 망신해요, 아버님! 해드리는 진지 잡숫구 뜨뜻한 방에 계 시랬지 누나 나무 해오시랬어요!”


    땡벌처럼 쏘아붙이건만 샌님은 태연했다.


    “뭐라구? 그눔들 할일이 없건 가서 바둑을 두든지 공을 치든지 할 꺼지 썩어 문드러지는 낙엽 긁는다구 말을 해?” “글쎄, 제발 좀 그런 일 하지 마세요!” 제 성미에 못이기어 발을 동동 구르던 서울 며느리는, “난 몰라요! 난 몰라요!”


    푸념을 하며 홀짝댄다.


    “오냐, 염려들 말아라, 잡혀감 내가 잡혀갔지 너희들더러 뭬라겠느냐.” 샌님은 딴청만 쓰고 있다.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르실지 알겠어요? 내려가시게 해요. 어머니는 서울 살림에 자밀 좀 붙이신 것 같으니까 그냥 계시게 하구 겨울 동안만이라두 내려가 계시게 했으면 싶군요.”


    그러나 아들은 역시 못 들은 체였다.


    “그러시다가 괜찮아져.”


    “괜찮아지긴 뭐가 괜찮아져요? 그냥 심심해서 돌아가실려구 하시는데 ─ 옆에서 못 뵙겠어요! 글을 아시니 옛날 얘기책이라두 보시나, 하다못해 장 기두 못 두시는가 봐요. 그러니 이 긴긴 밤에 당신두 못할 노릇이시지 ─ ”


    그러나 아들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시골 이야기만 하면, “거 쓸데없는 소리 작작해!”


    하고 입을 틀어막아버린다.


    며느리는 처음부터 반대였다. 새삼스럽게 시부모고 누구고 모두가 마뜩치 가 않었다.


    시어머니는 아이들도 맡기고 다닐 수 있고, 식모한테 온통 집을 내주고 다 니는 셈이어서 붙들어두고 싶었지만 시아버지만 내려보낼 수 없다면 아쉽지 만 함께라도 내려보내는 수밖에 없느니라 했다.


    마침 핑계도 좋았다. 그래서 남편도 남편이지만 시아버지 당자를 삶아서까 지라도 내려보내야 하느니라 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샌님은 샌님대로 지금 딴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이상 더는 무료해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벽 참새소리가 그리웠다.


    시골에 살 때는 그런 줄도 몰랐고, 몸이라도 괴로워서 좀 늦잠을 자려고 할 때는 귀찮게까지 여겼던 그 참새소리가 살갑게도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농가에 무엇 하나 보태주는 것이 없는 새였다.


    채 물기가 걷기도 전부터 눈이 발개서 알곡을 까먹겠노라 염치없이 달려들 때면 그 놈의 주둥이를 응껴도 시원치 않았다.


    꼭 추녀 끝에 매달려서는 마당에 곡식 널기만 엿보고 있는 참새를 볼 때마 다 회초리에 손이 가던 참새소리가 이렇게도 다정하니 가슴을 파고들 줄을 몰랐다.


    “영감, 그만 일납시다. 일나서 일 해야지 ─ 응, 영감!” 이렇게 속삭여주던 것만 같다.


    “어디 뭐 붙은 게 있어야 말이지! 광에서 인심 난다구 참새들 얻어먹을 게 있어야 추녀를 찾지! 어디 발붙일 데나 있던가?” 새벽잠이 깨어 무료하니 누웠으려면 이런 생각만이 떠오른다. 일어나야 할 일도 없었다. 뜰이라야 온통 시멘 바닥이었다. 애꿎은 담배만 피우다가 자 리를 털고 밖으로 나가본다. 아래윗집이건만 개가 닭 보듯 하고 보니 말도 붙여볼 도리가 없다. 한번 하도 따분해서 아랫집에 사는 영감을 문턱에서 만나,


    “아랫댁에 사시지유?”


    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렇소? 왜 그러오?”


    이렇게 따지려 드니 더 말을 붙여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윗집 중년도 그랬고, 건너집 젊은 사람도 근접을 못하게 했다.


    “아니, 이렇게 서루 이웃간에 척을 짓구서 살아야만 할 까닭이 없지 않은 가. 이웃 사촌이란 옛말은 개한테 물려보냈단 말이냐.” 만만한 것은 오직 담배뿐이었다. 분해도 담배, 괘씸해도 담배, 무료해도 담배였다. 새벽 네시경 채 밝기도 전에 깨어가지고는 자정이 지나도록 손 잡아매고 가만히 앉았기만 했어야 했다. 입도 봉한 채였다.


    “입에서 군내가 나서 못견디겠다!” 하고 노인은 아들을 붙들고 하소연이었다.


    “구경이나 슬슬 다니시지요!”


    아들도 인제는 상대를 않으려 든다. 할멈도 그랬다.


    “천생 호밋자루나 찰 팔자라니까! 평생 못 먹던 고깃국에, 생선에, 질질 흐르는 쌀밥에 해다 바치거든 먹구 누웠지, 뭔 잔소리가 그리두 많수? 그래 새벽부터 개똥망태나 지구 다니는 게 그렇게두 소원이어유?” 외로워서 할멈이랍시고 좀 위로나 받자고 하면 덮어놓고 쏘아붙이기만 한 다.


    “압따, 이눔의 늙은이가! 뺑득 할멈처럼 쏘아붙이긴 왜 이리 쏘아붙여?” “그럼 뭐요! 뭐가 부족해서 그저 등창 앓는 사람처럼 꿍얼거리는 거여 유?”


    할멈까지 이러니 며느리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망령이시라니까요!”


    이렇게 망령으로 돌려버린다.


    손녀년도 그랬다. 뭐라고 하면 제 어미한테 들은 대로, “할아버진 망령이야!”


    해버리는 것이다.


    “그 늙은이 왜 그리 주책이 없어? 분수 적기란 ─ 아니 아침부터 냄새나 맡은 개처럼 지싯지싯 붙어볼려구 그러지 않아? 남이 싫어하는지두 모르거 든!”


    이웃은 그만두고 곧잘 말벗이 되어주던 담배장수 늙은이까지도 샌님을 따 돌리려 든다.


    “자리 좀 내주시오. 영감은 눈치도 없소? 손님이 와서 비좁건 자리를 좀 내줄 께지 제삿집 장이나 대듯 버티구 앉았으면 어쩌란 거요?” 복덕방에서도 지청구를 댄다. 손님이 와서 북적댈 때라면 또 몰랐다. 저희 들 한둘이 있으면서 하는 소리였다.


    이제는 완전히 주위에서 따돌림을 받고 보니 정말 발길 갈 데가 없다. 어 쩌다 지나다가 당구장에 맛을 들여서 공 맞추는 구경을 몇 번 갔더니만 이 제는 숫제 근접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누워 담배나 피울밖에는 없었다.


    시골 같았으면 이럴 때 짚단을 들여다 신이나 푸슬푸슬 삼고 앉았으면 시 간 가는 줄 몰랐다. 그래서 그런 궁리도 해보았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보아도 짚단 파는 집은 없었다. 물역상을 두세 집 이나 둘러 보았으나 큰 붓푼수나 되게 짚오리 몇 개 묶어놓고는 십오환씩을 달라던 것이다.


    두 단은 가져야만 짚신 한짝거리가 될까말까 하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몇 단밖에는 없다. 밤새도록 궁리한 짚신 타령도 꿈이 되고 말았다.


    ‘자리를 매면…’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자리틀이야 세치각 한 개만 사면 우그려 만들 수가 있었지만 왕골과 청올치를 구하는 재간도 없었고 자릿돌도 만만치가 않았 다. 판로도 없다는 것이다.


    “서울서 왕골자리가 팔리오? 강화 돗자리가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영감, 그러지 말구 멍석을 트시오!”


    “멍석? 멍석은 뭣에들 쓰오?”


    “아따, 이 영감 보게. 영감 살던 시골장에 갖다 팔면 안 되오?” 이런 조롱만 받고 집에 돌아와버렸다.


    역시 무료했다. 몸이 비비 뒤틀린다. 정말 못할 노릇이었다.


    6


    그래도 겨울 동안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워낙 날이 추워노니까 엄두가


    나지 않더니 한식절이 되어 뜰잔디가 뾰족뾰족 싹을 내어밀기 시작하자 샌 님은 생리부터가 완전히 농군으로 돌아가던 것이다.


    온몸이 봄기운이 풍기었다. 살에서도 잔디가 싹을 트는 성싶어진다. 봄기 운이 소물거리면서부터는 온 전신이 근지러워 견딜 수가 없다. 노고지리 소 리가 곧 들려오는 성싶어도 진다. 샌님 ─ 아니 완전히 권 서방으로 돌아간 그는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졌다.


    “이런 이 소! 낄낄!”


    하는 농부의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물론 착각이었다. 그러나 이 착각에 서 온 여음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권 서방의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농부의 소 모는 소리는 신기할 만큼 대지를 흔드는 듯싶은 우렁찬 황소의 울음소리를 빚어주던 것이다.


    그 소의 울음소리는 농부한테는 더없이 흥겨운 음악이었었다. 청각을 통한 음악뿐이 아니었다. 그 음악 속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푹 익은 외양간 거 름의 훈기를 풍겨주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굶주린 사람 코에 스며드는 검 은 밤콩은 듬성듬성 논 시루떡의 그 구수한 냄새와도 같았다.


    농부에게 있어서는 두엄내가 곧 흙내요, 흙내가 구수한 된장국 냄새였다.


    울적하다가는 이 냄새만 맡으면 속이 후련해지던 것이다. 도시 사람들한테 는 숨막히는 악취였지만 샌님 ─ 아니 권 서방한테는 신선한 공기와도 같았 다. 그러기에 그는 변소에만 들어가면 마음이 푸근해졌다. 한 달에 몇 번씩 거름을 쳐갈 때마다 온 집안이 문을 첩첩이 닫아걸고 숨도 안 쉬고 틀어박 혔을 때도 혼자 신바람이 나서 거름통 주변을 빙빙 돌기도 했다.


    “거 그래서 쓰나. 그러면 멀건 물만 뜨이지. 자, 비키오, 비켜!” 이렇게 거름 인부를 떠밀치고는 신이 나서 자신의 거름을 퍼내기도 하는 권 서방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침에 나간 사람이 저녁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집안이 발칵 뒤집힌 일도 있다. 혹시 길이나 잃지 않았나 해서 파출소에까지 연락 을 하고 법석을 하고 있는데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었다.


    “아니, 어디 가서 여태 계셨어요?” 하고 못마땅해하는 며느리한테 샌님은 신바람이 나서 이야기를 하던 것이었 다.


    “얘, 말 말어라! 나 오늘 참 잘 지냈다. 저 뒤에 산등성이에 방을 한 칸 우거리는데 보자니까, 아 글쎄 욀 얽는데 그야말루 거미줄루 방귀 얽듯이 하는구나, 그게 수수깡 같아두 또 모르겠는데 새끼손꾸락만큼씩 아카시아 호초릴 글쎄 큰 닭장 얽듯기 하니 거기 흙이 붙어 있을 께 뭐냐? 그저 눈속 임이지. 겉에 흙만 발라노면 겉보기엔 번지르르하지! 허지만 말라노면 애들 이 기대어두 벌렁벌렁 자빠지구 마느니라! 그래 내 덤벼서 다 새루 해줬다!


    여물을 많이 섞어야 한데 짚이 없으니까 잔디풀을 뜯어다 하니 그게 무슨 힘을 쓰겠나!”


    목판장사라도 하겠노라 영감이 애를 먹인 것도 그날부터였다.


    정말 미치겠다던 것이다.


    한식이 지나자 샌님은 더욱 못견디어했다. 눈만 뜨면 걱정이, “이 사람이 벱씨나 담구었는가, 원! 벱씨 답답이 일쯔감치 담구어 이른 못자릴 해야 할 법인데 ─ ”


    이런 걱정부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못자리판 물은 답답이 더워야 하는데 물길을 좀 돌려대는지 모르겠꾼!


    두엄을 미리 좀 푹 질르지 않구서 암모니아 쓸 생각만 하지 않나? 그 사람 농사엔 이력이 있다지만 땅의 성질을 잘 몰라노니까?” 그 사람이란 말할 것도 없이 땅을 맡기고 온 성춘식이다. 사람됨으로나 농 사 이력으로나 자기만 못지않은 농군임을 권 서방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성춘식은 권 서방과 달라 눈뜬 장님이 아닌지라 신문이고 잡지에서 얻어들 은 새 지식도 권 서방보다는 나았다. 그것이 권 서방한테는 또 걱정이었다.


    “사람두 성두 각각, 이름도 각각이듯이 땅이면 다 같은 땅인가. 땅에두 성 각각, 이름 각각 있으니. 거 신식 사람들 말이 옳긴 옳지! 허지만 땅에 따라 다 달른 법이니! 사토에 암만 금빌 질러보지! 모래 썩히는 건 두엄밖 에 없느니!”


    무엇이고 새 농사법을 따라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 성춘식의 흠이니라 했 다. 작년에는 한식 전 못자리를 해서 보름이나 일찍 추수를 했고, 거기에 또 이백열두 평짜리 한 다랑이에서 정조 열한 가마까지 낸 터라 자기도 한 번 성춘식의 지시대로 해보겠노라 벼르기까지 한 권 서방이면서도 마치 어 린애한테 칼 쥐어 내보낸 것 같은 불안을 느끼는 것이었다.


    “가지씬 2월 중순에 묻어두 좋은데 ─ ” 벼농사뿐이 아니다. 이런 걱정까지 해주고 있는 권 서방이었다.


    그러나 걱정은 성춘식에 그치지 않았다.


    “그 게름벵이 녀석이 아직도 꾸물거리구 있을 께라…밤을 패서 돌아댕기 니 제눔이 천성 해가 꽁무니를 쑤실 때까지 자빠져 잤지 벨수가 있나! 남들 은 몰 낸다구서 들어야 못자리 타령이나 하구 다니구 ─ ” 김달수 이야기다. 노름꾼으로 유명한 곰보였다.


    이렇게 시작하면 온 동리 걱정은 혼자 하고 누웠던 것이다. 그러다가는, “에이! 망할 자식들!”


    하고 벌떡 일어난다.


    맘이 안 드는 녀석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면 참지를 못하는 성미였다. 언 제나 그랬었다. 아무리 바쁜 길을 가다가도 밭에 풀이 우거진 것을 보고는 그대로는 못 지나가는 성미다. 밭머리에 서서 주인 욕을 혼자 퍼붓다가는 와르르 밭으로 뛰어들어가서 콩이고 팥이고 곡식을 뽑아던지고야 견딘다.


    “너 같은 건 애전에 죽어버려야 한다! 애전에! 여북 팔자가 기구했기에 그런 녀석한테 태어났겠느냐…”


    마치 아이들 데리고 하는 소리다. 그중에서 가장 혼돌림을 당한 것이 김달 수였다. 김달수의 밭 한 뙈기는 공교롭게도 권 서방네 밭과 붙어 있었다.


    불행, 아니 김달수한테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권 서방은 나이도 십여 년 차이가 있어 죽일 놈 잡도리 하듯 하면서도 보다보다 못하면 곧 잘 매는 길에 훔쳐주었으니까 ─ 깨밭을 매다가였다. 점심을 날라온 할멈이, “달순지 뭔지 그 사람, 그래 밭을 저꼴을 만들어놓구서 지금은 어느 때라 구 천렵을 하구 있어?”


    무심코 하는 말을 듣더니만 영감은 눈을 까뒤집어쓰고서, “아니 그래, 그 자식이 고길 잡구 있던가?” “윤보네랑 모두들 물을 돌리구 푸구 있습니다!” “아니, 저런 죽일 눔이 있더란 말야!” 영감이 하도 서두르는 바람에 할멈도 질겁을 하고서, “내버려둬요… 제 땅 제가 안 가꾸는 걸 뭘 참견여유!” “아, 뭣이 어쩌구 어째? 어째서 제 땅이야! 어째서 제 땅이야!” “아주 샀대유!”


    “샀으면 제 땅이란 말야! 그래 제 땅이면 곡식을 심어놓구서 저 꼴을 만 들어놔두 괜찮단 말야? 이눔의 자식 버릇을 알켜놔야지! 동리서 아주 내쫓 아버리던지 ─ 어디야, 어디서 물을 푸던가? 구렛보겠군!” 하기가 무섭게 말리는 할멈을 밭머리에다 내동댕이를 치고서 단숨에 달려 가서는 다짜고짜 목덜미를 잡아나꾸었던 것이다.


    “네 이 날도둑눔! 네눔의 심보가 그러구서 이 동리서 살아!” “아니 아저씨, 왜 이러세요!”


    모두 영문을 몰라 쩔쩔매고만 있었다.


    “이 날도둑눔들! 풀 키가 곡식 키보다 크게 만들어놓고서 고기잡일 해?” 여기까지도 좋았지만 한나절을 퍼서 물이 자작해진 물꼬를 왈칵 터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눈을 감고 더듬어도 손뼉 같은 붕어가 잡히도록 고기가 시 글시글했었다.


    이런 물꼬를 터놨으니 젊은 놈들이 그대로 있을 리가 만무다. 불량하기로 이름난 윤보가 영감을 물에다 틀어박고는 달아났었다.


    그래도 나이 먹은 달수가 나았다. 영감을 물에서 붙들어 일으키는 달수의 목덜미를 잡아끌고서 밭에까지 와서는 기어코 그날 해전에 밭을 말끔히 매 게 했던 것이다. 권 서방도 같이 매준 것은 물론이다. 그런 후로는 무슨 일 이 있어도 권 서방네 옆밭만은 김달수도 묵히지 않았었고, 달수가 이 세상 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권 서방이었었다.


    “달수! 숨어라! 숨어! 호랑이 온다!” 친구들이 권 서방만 번득해도 이렇게 귀띔을 했다. 숨으라면 벌써 권 서방 인 줄 알고 곱이 끼어 숨는 김달수이기도 했다.


    “그 녀석, 요샌 신바람이 나서 노름이나 하구 돌아다니겠지…천렵이나 하 구!”


    이것저것 달수가 하던 짓을 회상하다가도 금방 뛰어가기나 할 것처럼 벌떡 일어나 앉는 샌님이었다.


    그러나 그래보았자 도리가 없는 지금의 샌님이었다.


    그는 벌써 권 서방이 아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며느리가 손수 만들어논 화단 이 판판히 되어버렸다. 카네이션, 제라늄, 마카레트, 도라스나, 다알리아 등 며느리가 얻어다 가꾼 서양 화초를 말끔히 뽑아내고는 무씨를 뿌렸다는 것이다. 톱도 얻어다 놓았었다. 웬만한 나무는 잘라버리고 채소를 심을 생 각이었던 것이다. 며느리는 홀짝홀짝 울고 있었다.


    “얘야, 그래 꽃 먹구 사느냐! 푸성귀라두 뜯어먹으면 작히나 좋아서 그러 느냐?”


    “이눔의 집 다 헐어버리구서 보리밭이나 하세요!” 며느리가 하도 악을 쓰고 나대니까 영감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어슬렁어슬 렁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들도 집에 없던 날이었고 보니 첫째 며느리의 눈총이 살에 들어 박히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아들도 요새 하는 일이 잘 안 되는지 전축도 들고 나갔고 찾아오는 사람마다가 싫은 소 리를 하고 가더니 벌써 사흘째 집을 비우고 있던 것이다.


    할멈은 할멈대로 날뛰었다.


    이렇게 업 나가듯 한 영감은 그날 밤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샌님은 종무소식이었다.


    “시굴루 되내려간 게다. 내버려둬라!” 하고 할멈은 남의 말 하듯 하고 있었다.


    “천생 팔자가 호미나 차구 지게나 질 팔잔걸 고깃국에 쌀밥이 당한 게냐.


    인저 진탕 쌀밥을 먹다가 그 꽁보리밥 덩이를 먹어봐야 서울 생각이 나겠 지! 웬걸, 요새야 꽁보리밥이나 있다더냐? 질경이나 뜯구 해서 보리알이나 둥둥 띄운 죽국물이나 차지가 가면 다행이지!” 할멈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늦도록 대문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 이튿날도 영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인제는 시골로 간 것에 틀림이 없다 고 고부가 거의 단념하고 있던 사흘째 되던 날 점심때나 되어서야 나갈 때 처럼 풀이 죽어 들어왔다. 두루마기고 옷이고가 말이 아니었다.


    “아니, 또 어딜 갔다 지금서야 와유?” 할멈이 묻는 말에도 못 들은 체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만 자기 입던 옷가 지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다.


    “왜 그러셔요, 아버님?”


    며느리가 물어도 대꾸가 없다.


    “그건 뭘할려구 싸유?”


    그래도 말이 없다.


    영감은 반침에 쓸어두었던 헌 버선짝까지를 깡똥하니 동그려놓고서야 며느 리를 보고,


    “나 낮차루 시골 가련다…”


    “네? 시골은 왜요?”


    “나 시골루 내려갈 테야. 더러운 눔의 고장!” 침을 퉤 뱉는다.


    “아니, 왜 그래유! 서울이 뭘 또 잘못했시유?” “잘못이면 이만저만 잘못이어?”


    하더니만 며느리 쪽으로 홱 돌아앉으며 막 퍼부어댄다.


    “그래, 너 좀 들어봐라! 아니 그래, 사람이 길 가는 데두 간섭을 해? 남 이사 왼쪽으로 가건, 바른쪽으로 가건, 제눔들이 상관할 께 뭐냐 말이야!


    건너가거라, 돌아가거라, 서라, 어째라, 무슨 상관이냐 말여! 그래, 제 나 라 백성이 제 나라 길 다니는데두 무슨 법이 그렇게 많으냐 말이다! 왜 남 의 제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느냐 말여! 응, 그래, 제눔들이 순경이면 순경이었지 남이야 걸어가건, 기어가건, 상관할 것이 없잖으냐 말이다! 그 래 늙은일 잡아다놓구서 뭐 어쩌구 어째라?” 그제야 며느리도 짐작이 갔다. 필시 횡당도로 아닌 데로 건너가다가 교통 순경한테 꾸지람을 들은 모양이었다.


    “자동차가 하두 많이 다니니까 아버님 다치실까봐 그런 거죠.” 며느리가 설명을 해도,


    “뭐가 어떻구 어때? 그래, 이눔의 서울선 제 맘대루 죽지두 못한다더냐?


    내가 치여 죽으면 제눔이 거상을 입어줄 테니 걱정이냐, 장사를 치러줄 테 니 걱정이냐? 어째서 잔말이 그리두 많으냐 말여? 뭐, 어째구 어째? 무슨 재판? 그래, 제눔이 가란 길루 안 갔다구 재판을 한단 말이지? 이눔들, 백 성들이 갖다 바치는 세금으루 국록을 먹거든 할일을 해야지! 수수미꾸라지 처럼 말쑥하니들 차리구선, 찻집으루, 공치기 아니면 바둑이나 두구. 뭐 년 눔들끼리 부둥켜안구서 춤을 춘다구? 농군들이 그 피땀을 흘려서 농살 지어 다 바치면 처먹구선 그래 그런 지랄만 해? 남 길가는 것 참견 말구서 그런 눔들이나 한 두름에 엮어서 시굴루 보내주면 농사나 지어먹잖아? 젊은눔들 은 모조리 수대루 잡아가구, 늙은이들보구 저런 눔들 바둑 두라고 농살 짓 구 있어? 그래 우리 농군들은 사람이 아니냐 말여! 우리가 밥 처먹구서 피 둥피둥 노는 눔들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단 말여? 난 간다! 난 가! 그런 눔들의 꼴 더는 못 보구 살겠어!”


    며느리가 서울이기나 한 것처럼 이렇게 바가지로 막 퍼붓더니만 그대로 벌 떡 일어선다.


    “또 분수 떠네!”


    하고 할멈이 혀를 끌끌 차차 영감은, “에이, 숙맥! 그래두 서울이 좋다구?” 하더니 할멈의 턱을 본때있게 한 번 추키고서, “난 간다! 가! 내가 너 같은 걸 예편네라구 사십 년이나 더리구 살았 지!”


    정말 문을 젖히고 퇴로 나선다.


    “아니, 가시더라두 즈 아범이나 오건 가세요! 그냥 가시면 저의가 뭐 잘 못이나 한 줄 알구 야단나지 않겠어요?” 하고 붙드는 며느리한테도 턱이나 추킬 듯싶은 태세다.


    “그래, 잘한 건 또 뭐냐? 뭘 잘했어! 시아비가 그렇게 심심해하니 네가 자리틀을 하나 마련해줬단 말이냐, 짚 한 단을 구해다줬단 말이냐, 뭘 잘했 어!”


    이쯤 되면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가시더라도 점심이나 자시고 가시라고 붙들어도 보았으나 홱 뿌리치고서,


    “안방마님처럼 살이 부등부등 쪄라! 네 시굴로 다시 내려온다구만 해봐 라!”


    대문간 까지 나가다가 다시 홱 돌아서면서 이렇게 소리를 친다.


    “뒈져서두 오지 말아!”


    샌님, 아니 완전히 옛날의 권 서방이 되어버린 영감이 버스에서 내린 것은 다섯시가 지나서였다. 버스 정거장에서 인절미 백환어치를 사서 먹은 것뿐 이어서 시장기가 들었지만 여기서도 삼십리 길인지라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는 휭하니 동구 밖으로 나섰다.


    우선 퍼어런 들만 보아도 답답하던 속이 툭 트인다. 농군들은 벌써 여기저 기 흩어져 있었다. 초경을 하는 농부도 있었고, 무엇인지 씨앗을 뿌리는 사 람도 눈에 뜨이었다. 먼지 하나만 묻어도 혹혹 불고, 잘못 보고 발등을 좀 밟았다고 눈깔이 멀었느냐고 눈을 울부리던 서울 사람에 기가 질렸던 권 서 방은 농군의 옷만 보아도 사람 사는 고장에 온 것만 같았다. 길도 그랬다.


    돌부리에 울멍줄멍한 좁다란 길이었어도 앞뒤 좌우를 몸이 달게 돌아다볼 필요도 없었다. 돌아가라, 건너가라, 서라 마라 할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 다도 그 돼지 목 따는 소리 같은 자동차 소리만 안 들어도 살 것만 같다.


    동구 밖 마차길로 나오자마자 권 서방은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텁텁하 던 내장 속이 말끔히 씻어지는 성싶다. 또 한번 호흡에도 한겨울 동안 내장 에 배었던 구공탄 독기가 빠지는 것 같다.


    “이게 사람 사는 데지!”


    영감은 놀이 들기 시작한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팔로 허공을 안아보는 것 이었다.


    “사람 사는 데가 이래야말구!”


    길이라기보다도 보료 위를 맨발로 거니는 것 같다. 딱딱한 민판길만 걸을 때는 도시 감각이 없던 발바닥을 통하여 흙의 포근함을 감촉할 수 있었다.


    춘경을 마친 논의 시커먼 흙덩이에는 아직도 보습날 자위가 남아 있어 비낀 햇볕이 거울처럼 반사가 된다.


    “그렇지! 사람 사는 맛이 이래야말구…” 영감은 또 한번 외치듯 한다.


    네 시간이나 버스에 흔들림을 했건만 피로한 줄도 몰랐다. 시장기도 몰랐 다. 오직 기뻤다. 즐거웠다. 안 먹어도 살 것 같았다.


    “너희만 논이 있더냐? 나두 있어! 엿 마지기와 또 세 다랑이야!” 영감은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보고 외치고 싶었다.


    “이 사람이 춘경은 했을까?”


    했기를 바랐다. 성춘식이 제일 먼저 했을 것만 같다. 또 그렇기를 바랐다.


    춘경은 답답이 이를수록 좋으니라 했다. 두엄을 푹 질러놓고 한번 깊이 뒤 집어만 놓으면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푹 썩는다. 보습날 자위가 번쩍이는 논을 눈앞에 그려만 보아도 신바람이 난다.


    “그러면! 춘식이 그 사람이야 빈틈없지…” 이렇게 흐뭇해하는 영감이면서도 또 춘식이가 무슨 일이 있어서 아직 춘경 을 미리 안했으면 하고도 바라는 것이었다.


    “그랬으면 한번 신바람이 나게 갈아붙여 보지!” 이런 권 영감이기도 했다.


    마치 달이 있기는 했었지만 역시 밤길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발이 재우쳐졌다. 한시라도 빨리 그립던 동리에 들어가고 싶었다. 삼십리 밤길을 어떻게 왔는지 몰랐다. 무너미 고개 마루턱에 썩 올 라서니 눈물이 피잉 돈다. 여기서는 담배 한 대 참이었다. 대개 이 고개 마 루턱에서는 오다가다 한 대 붙이는 것이 보통이건만 권 영감은 내친 걸음에 봇둑 갈림길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곧장 들어가면 장앳말이다.


    갈림길까지 온 영감은 발을 뚝 멈추었다. 무슨 생각인지 한참 궁리를 하더 니만 오른쪽 길로 휙 빠진다.


    “암! 예까지 와서 그대루 과문불입을 했다간 그 녀석이 노엽다구말구! 그 럴 순 없지!”


    그 녀석이란 영감의 논이었다. 여기서는 그렇게 멀지도 않다. 조금만 돌아 가면 그만이던 것이다.


    논이 저만큼 보이자 영감은 뛰고 있었다. 그립던 녀석이었다. 꿈에도 잊혀 지지 않던 녀석이었다.


    “잘 있었느냐? 내가 왔다! 내가!”


    영감은 커다랗게 소리를 쳤다.


    “널 그눔들한테나 대? 그 까투리처럼 입만 깐 서울눔들한테나?” 달밤에 보니 더 의젓해 보인다. 보습날을 금방 뗀 것 같았다.


    “허, 그 사람이 신명풀이를 못하게 했군그랴!” 그러면서도 영감은 만족이었다.


    “품은 곱 쳐서 줘야지! 암, 그러구말구…겨울 동안 봐준 공두 있잖나!” 숫제 콧노래다.


    이렇게 흥겨워 돌아온 권 영감이 춘식이네 사랑방에 썩 들어서자,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기겁을 하고 놀랐다.


    이야기를 벌어졌다. 적의까지 보이며 그동안의 서울 이야기를 한 끝에 영 감은,


    “춘식이! 일년 농사두 못 지어보게 돼서 염치가 없네나!” 하고 말문을 돌리어 자신이 농사를 지으러 왔다는 말을 하자 방안은 물 친 듯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아니, 거 무슨 말씸이세유, 형님?” “나 혼자라두 농살 짓구 고향엘 살러 왔네. 맷돌이구 뭐구 그런 건 자네 다 그냥 쓰게나. 할멈은 죽어두 안 내려온다니까.” “그렇지만 전 끝전꺼정 다 치른걸유, 형님!” “뭐? 끝전이라니?”


    “모르시나유, 형님은? 자, 이걸 보셔요. 이게 그 문서예유!” 아들이 내려와서 일체를 백삼십만환에 팔고 갔다는 것이다.


    “끝전을 보리 때까지만 참아달래두 안 된다구 그래서 팔부변을 얻어서 다 줬어유.”


    청천에 벽력 같은 일이었다.


    “전 형님이 보내셨다기에 그런 줄만 알구 있었어유!” “음 ─ ”


    그것은 그대로 동물 ─ 그것도 맹수의 신음 소리였다.


    잠이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영감은 춘식이를 보고 이렇게 말 하고 있었다.


    “나 자네한테 청이 하나 있네!”


    “청이라니유?”


    “나두 이면은 있는 사람이어, 한번 판 걸 되물러 달란 말은 않겠네! 그럴 처지두 못 되구. 그 자식이 아마 실팰 했나보이. 그러니 날 자네 집에 좀 두어주게나!”


    “네?”


    “어 이 사람, 뭐 내가 거저 둬달란 말은 아닐세. 나 아직 어느 젊은 눔한 테두 지잖을 셈일세! 안 져! 새경두 자네 주는 대루 받을 테여! 난 그눔하 구만 살면 그만이니까.”


    “허지만 그렇게야 어떻게…”


    가슴이 뻐근해서 하는 말에 영감은 춘식의 손을 덥석 잡고서 눈물을 좌르 르 쏟으며 숫제 애원을 하는 것이다.


    “아니 이 사람! 자네 어차피 그만큼 농사가 늘었으니까 사람 하나 둬야 하잖겠는가? 늙었다구 자네 날 타박하는 건가! 엉? 내가 늙었어두 지잖네, 지잖아! 어느 젊은 눔보다두 그 녀석만은 내가 더 잘 다룰 걸세! 안 그런 가? 나 그 녀석 딴사람한테 손대게 하구 싶지가 않네! 자네야 땅 임자니까 도리가 없지만! 이래두 내 맘 못 알아주겠는가, 어, 이사람!” 〈「사상계」75호, 195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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