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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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 이익상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0. 23:32
경부선 아침 열차가 부평평야의 안개를 가슴으로 헤치고 영등포역에 닿을 때다. 경숙(敬淑)이는 아직도 슬슬 구르는 차바퀴 소리를 들으면서 차창을 열고 윗몸이 차 밑으로 쏠릴 것같이 내놓고 플랫폼 위를 일일이 점검하려는 것같이 살폈다. 그러나 영등포 역까지쯤이야 맞아줌 직한 기호(基浩)의 얼 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집을 떠날 때에 전보로 통지를 하였었다. 만일 그 전보를 받아보고도 맞아주지 않았다면, 경숙이 금번 경성 오는 것이 근본적으로 틀린 생각에서 나온 일이었다. 응당 맞으러 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만큼 실망도 컸다. 그의 안색은 비가 쏟아질 듯한 가을 하늘 빛같이 변하고 말았다. ‘본래부터 여자에게 달게 굴 줄이란 바늘끝만치도 모르는 그 사람이지만, 오늘 내가 경성을 오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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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가을밤 | 이익상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1:14
지평선 위에 걸린 해와 창공에 오른 달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나의 옛날에 들은 바 해와 달 이야기를 아니 생각할수 없습니다. 새빨갛게 이 글이글하게 달은 해와 얼음덩이처럼 싸늘하고도 맑은 달이 나의 어린 마 음에 깊이깊이 뿌리박았던 것이 오늘까지에도 오히려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가 합니다. 이것은 내가 칠팔 세 되었을 때 어느 가을밤 일이었습니다.그러니 이 일처럼 나의 어렸을 때의 모든 기억 가운데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다시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언제와 마찬가지로 등잔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 니다. 그때는 가을이라 겨울옷 준비에 매우 바쁜 것이 어린 나에게도 알 려줄 만하였습니다. 등잔불이라 하여도 오늘 같은 전기등 같은 것은 물 론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내 집은 시골이었으므로,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