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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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 나도향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0. 23:50
청춘(靑春) 1 안동(安東)이다. 태백(太白)의 영산(靈山)이 고개를 흔들고 꼬리를 쳐 굼 실 굼실 기어 내리다가 머리를 쳐들은 영남산(嶺南山)이 푸른 하늘 바깥에 떨어진 듯하고, 동으로는 일월산(日月山)이 이리 기고 저리 뒤쳐 무협산(巫 峽山)에 공중을 바라보는 곳에 허공중천이 끊긴 듯한데, 남에는 동대(東臺) 의 줄기 갈라산(葛蘿山)이 펴다 남은 병풍을 드리운 듯하다. 유유히 흐르는 물이 동에서 남으로 남에서 동으로 구부렸다 펼쳤다 영남과 무협을 반 가름하여 흐르니 낙동강(洛東江) 웃물이요, 주왕산(周王山) 검은 바위를 귀찮다는 듯이 뒤흔들며 갈라 앞을 스쳐 낙동강과 합수(合水)치니 남강(南江)이다. 옛말을 할 듯한 입 없는 영호루(暎湖樓)는 기름을 흘리는 듯한 정적 고요 한 공기를 꿰뚫어 구름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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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찾기 전 | 나도향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0. 23:40
어떤 장질부사 많이 돌아다니던 겨울이었다. 방앗간에 가서 쌀을 고르고 일급(日給)을 받아서 겨우 그날 그날을 지내 가는 수님(守任)이는 오늘도 전과 같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자기 집에 돌아왔다. 자기 집이란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안방은 주인인 철도 직공의 식구가 들어 있고, 건넌방에는 재깜장사(野荣行商) 식구가 들어 있고, 수님의 어머니와 수님이가 난 지 몇 일 안 되는 사내 갓난아이와 세 식구는 그 아랫방에 쟁 개비를 걸고서 밥을 해 먹으면서 살아간다. 수님이는 몇 달 전까지는 삼대 같은 머리를 층층 땋고서 후리후리한 키에 환하게 생긴 얼굴로 아침저녁 돈벌이를 하러 방앗간에를 다니는, 바닷가에 나와서 뛰어다니는 해녀(海女) 같은 처녀였다. 그런데 몇 달 전에 그는 소문도 없이 머리를 쪽지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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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 | 나도향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1:53
거안 위에 피곤한 손을 한가히 쉬이시는 만하 누님에게 한 구절 애닯은 울음의 노래를 드려 볼까 하나이다. 1 저는 이글을 쓰기 전에 우선 누님 누님 누님 하고 눈물이 날 만치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누님을 불러 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한낱 꿈일까요? 꿈이나 같으면 오히려 허무로 돌리어 보내일 얼마간의 위로가 있겠지만 그러나 그러나 그것도 꿈이 아닌가 하나이다. 시간을 타고 뒷걸음질친 또렷하고 분명한 현실이었나이다. 저의 일생의 짧은 경로의 한마디를 꾸미고 스러진 또다시 있기 어려운 과거이었나이다. 그러나 꿈도 슬픈 꿈을 꾸고 나면 못 견딜 울음이 복받쳐 올라오는데, 더구나 그 저의 작은 가슴에 쓰리고 아픈 전상(前傷)을 주고 푸른 비애로 물들여 주고 빼지 못할 애달픈 인상을 박아 준 그 몽롱한 과거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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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1:50
1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 한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사오 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곳을 청엽정(靑葉町)이라 부르지만 그때는 연화봉(蓮花峰)이라고 이름하였다. 즉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보면은 오정포(午正砲)가 놓여 있는 산등성이가 있으니 그 산등성이 이쪽이 연화봉이요, 그 새에 있는 동네가 역시 연화봉이다. 지금은 그곳에 빈민굴이라고 할 수밖에 없이 지저분한 촌락이 생기고 노동자들밖에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으나 그때에는 자기네 딴은 행세한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이라고는 십여 호밖에 있지 않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과목밭을 하고, 또는 채소를 심거나, 아니면 콩나물을 길러서 생활을 하여 갔었다. 여기에 그중 큰 과목밭을 갖고 그중 여유 있는 생활을 하여 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