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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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 강경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23:11
1935년作 母子 강경애 1935년 개벽 1 민현기 편, 일제강점기 항일독립투쟁소설 선집, 1989, 2월25일 계명대 출판부 눈이 펄펄 나리는 오늘 아침에 승호의 어머니는 백일 기침에 신음하는 어린 승호를 둘러 업고 문밖을 나섰다. 그가 중국인 상점 앞을 지나칠때 며칠 전에 어멈을 그만두고 쫓기어 나오듯이 친가로 정신없이 가던 자신을 굽어보며 오늘 또 친가에서 외모와 싸움을 하고 이렇게 나오게 되니 이젠 갈 곳이 없는 듯하였다. 그나마 그의 외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만 쳐다보고 그대로 딸자식이니 몇 해는 그만두고라도 몇 달은 보아주려니보다도 승호 의 백일 기침이 낫기까지는 있게 되려니 하였다가 그 역시 남인 애희네 보다도 못하지 않 음을 그는 눈물 겹게 생각하였다. 어디로 가나? 그는 우뚝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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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전 | 강경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18:58
채전(菜田) 어렴풋이 잠이 들었을 때 중얼중얼하는 소리에 수방이는 가만히 정신을 차려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안 살림에 대한 걱정인 듯 싶었다. 그래서 그는 포로로 눈이 감기다가 푸루룽하는 바람소리에 그는 또 다시 눈을 번쩍 떠서 문켠을 바라보았다. ‘아이 저 바람 저것을 어쩌나!’ 무의식간에 이렇게 중얼거리며 밤사이에 많이 떨어졌을 사과와 복숭아를 생각하였다. 이 생각을 하니 웬일인지 기뻤다. 무엇보다도 덜 익은 것이나마 배껏 먹을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번 바람에 저 실과가 다 떨어질 터이니……” “그러니 내 말이 그 말이얘요. 실과도 돈 값어치가 못 되고 채마니 뭐 변 변하오. 그러니까 일꾼을 줄여야 하지 않겠수.” “글쎄 나도 그런 생각이여. 그러나 지금 배추밭 부침 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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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이백원 | 강경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27. 18:35
원고료 이백원(原稿料 二百圓) 친애하는 동생 K야. 간번 너의 편지는 반갑게 받아 읽었다. 그러고 약해졌던 너의 몸도 다소 튼튼해짐을 알았다. 기쁘다. 무어니 무어니해야 건강밖에 더 있느냐. K야, 졸업기를 앞둔 너는 기쁨보다도 괴롬이 앞서고 희망보다도 낙망을 하게 된다고? 오냐 네 환경이 그러하니 만큼 응당 그러하리라. 그러나 너는 그 괴롬과 낙망 가운데서 단연히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쁘고 희 망에 불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 K야, 네가 물은 바 이 언니의 연애관과 내지 결혼관은 간단하게 문장으로 표현할 만한 지식이 아직도 나는 부족하구나. 그러니 나는 요새 내가 지내는 생활 전부와 그 생활로부터 일어나는 나의 감정 전부를 아무 꾸밀 줄 모르는 서투른 문장으로 적어놓을 터이니 현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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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 강경애한국문학/한국소설 2019. 2. 7. 21:26
동정(同情) “아침마다 냉수 한 컵씩을 자시고 산보를 하십시오.”하는 의사의 말을 들은 나는 다음날부터 해란강변에 나가게 되었으며 그곳에 있는 우물에서 냉수 한 컵씩 먹는 것이 일과로 되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타월, 비누갑, 컵 등만 가지고 나갔으나 부인네들이 물 길러 오는 것이 하도 부럽게 생각되어서 어느덧 나도 조그만 물동이를 사서 이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번번이 우물가에는 부인으로 꼭 채여서 미처 자리 얻기 가 대단히 힘듭니다. 아마도 이 우물의 물맛이 용정에서는 제일 가는 탓으 로 부인들이 이렇게 모여드는 모양입니다. 내가 물동이를 이고, 가지가 조롱조롱 맺힌 가지밭을 지날 때마다 혹은 그 앞에 이슬이 뚝뚝 듣는 수수밭 옆을 지날 때마다 꼭 만나는 여인이 있으니, 언제나 우리 사이는 모른 체하고 ..